▲ 16일 오후 서울대 인근 독립서점 '그날이 오면'에 마르크스 관련 서적이 꽂혀 있다.
정초하
서울대학교에서 마르크스 경제학 강좌 3개를 모두 폐강한 소식을 접하고 금방 떠오른 기억은 우리나라에서 마르크스의 <자본>이 겪어야 했던 기구한 역정이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이 책은 도서관에 있긴 하지만 대출이 되지 않는 책이었다. 대출 신청을 하면 어김없이 신청카드에 붉은 도장으로 "금(禁)"이라고 찍혀 반려되었다. 그래서 1987년 이 책의 출판을 감행한 출판사 이론과 실천이 재판에서 금서의 족쇄를 깨뜨리고 김수행 교수께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취임한 소식을 듣고는 이제 이 책이 우리 사회에서 그 기구한 운명을 넘어섰구나 하는 안도감을 가졌다.
그런데 그로부터 거의 40년이나 경과한 지금 새삼스럽게 서울대학교의 강좌 폐지 소식은 마치 작년 뜬금없었던 계엄선포와도 같은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마르크스 강좌의 폐지는 서울대만의 문제도, 지금 유난스러운 문제도 아니다. 단지 서울대의 성격 때문에 그것이 우리 사회 전반을 대표하는 의미를 갖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이 시대착오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까닭은 우리 사회가 어렵게 쌓아 올린 문명을 걷어차고 야만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젖힌 의미가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는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유럽은 자신의 원류를 로마로 삼고 있다. 로마는 자신들이 통치하는 문명의 세계와 구별하여 바깥세상을 야만으로 불렀는데 이때 그들이 구분한 기준은 시간의 기억이었다. 현재는 과거의 산물이며 미래의 근원이라는 개념이 바로 그것이며 그들은 이것을 야누스 신으로 형상화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잊고 미래의 전망도 포기하는 것을 야만이라고 불렀다.
계엄의 선포 그 자체도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 이후 윤석열과 그의 추종자들이 벌인 행태는 과거와 미래를 깡그리 잊은 것들이었고 그것은 로마인들이 구분한 야만과 정확하게 일치하였다. 그것은 좌우의 정치노선 문제와 전혀 무관하게 문명과 구별되는 야만이었다. 평생 30년 가까이 교수라는 직업을 보내고 은퇴한 사람으로서 나는 마르크스 강좌의 폐지가 이들 내란세력의 야만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세 가지 단서가 말해주기 때문이다.
첫째 <자본>은 2013년 유네스코가 <인류의 기록유산>으로 선정한 저술이다. 이는 이 책이 담고 있는 유산이 과거를 넘어 미래를 위한 인류의 자산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정규직 교수가 담당하던 이들 강좌가 무려 15년 이상 비정규직 교수에게만 맡겨져 왔다. 미래의 전망을 완전히 차단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셋째 부르주아 경제학은 현재 당면의 경제문제에 아무런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 보호주의 강화, 경제 양극화 등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다른 견해를 가진 경제이론에 귀를 열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요컨대 강좌의 폐지에는 과거, 미래, 그리고 현재까지 어떤 시간의 기억도 찾아보기 힘들다. 문명에 눈을 감고 야만의 문을 연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이유이다. 국립이라는 공공성과 한국 지성의 선도자라는 지위를 조금이라도 떠올린다면 서울대학교가 마땅히 정규직 교수를 임명하여 이들 강좌를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한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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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내 마르크스경제학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입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마르크스경제학 미개설에 맞서 투쟁하고 있습니다. 2025년 여름학기에는 비공식 정치경제학입문 강의를 개설해 학생들,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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