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공원에서 만나는 이순신 장군. 높이 15미터의 동상은 1967년 제1회 진남제 때 제막됐다.
이돈삼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시대 아픔 껴안은 종포
자산공원은 자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해가 뜰 때면 산봉우리가 붉게 물든다고 '자산'(紫山)이다.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공원이다. 공원의 전형인 팔각정이 있고, 산책로도 잘 만들어져 있다.
자산공원은 일제강점 때 일본군의 고사포 터이기도 하다. 일제는 여수 신월동에 있던 비행장을 보호할 목적으로 이곳에 포대를 설치했다. 당시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에 따르면, 미 군용기의 저공비행을 막는 데 목적이 있었다고 한다. 연합군을 상대로 한 일제의 방어 기지인 셈이다.
자산공원엔 이순신 동상과 임진왜란 때 싸운 수군 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높이 15미터 동상은 1967년 제1회 진남제 때 제막됐다. 나라 지킨 유공자 기념탑, 충혼탑도 있다. 거북선 모양의 해상교통 관제센터도 눈길을 끈다. 여수항과 광양항을 드나드는 배가 안전하게 오가도록 이끌어 준다.
관제센터 전망대에 오르면 오동도 주변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기억을 단번에 떠올려 준다. 그사이 강산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오동도 풍광은 여전히 빼어나다. 탁 트인 전망도 마음속 깊은 데까지 시원하게 해준다. 물살을 가르며 오가는 작은 배도 마음 한편에 자리한 감성을 일깨운다.
관제센터 아래 일출정도 오동도 전망대다. 1998년 지어진 정자는 바다를 조망하고 해맞이를 하기에 맞춤이다. 많은 사람들의 소원도 간직하고 있다. 가족과 연인의 소망을 담은 소원패가 정자 난간과 나무에 주렁주렁 걸려 있다.

▲ 종포마을 뒤에서 만나는 충무정. 넓은 잔디밭이 바다와 어우러져 더욱 멋스럽다.
이돈삼

▲ 자산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1019번 마을버스. 여순사건을 잊지 말고 기억하자고 말하는 것 같다.
이돈삼
일제강점기 종포엔 어업을 목적으로 건너온 일본 이민단이 눌러 앉았다. 터널과 철길 만드는 일에 동원된 중국인도 살았다. 광복 뒤엔 고국으로 돌아온 징용인이 많았다. 여순사건 때엔 집을 잃은 사람들이, 한국전쟁 땐 피난민이 모여 살기도 했다. 시대의 아픔을 겪은 사람들을 다 보듬어줬다.
종포는 화려한 여수에서 가장 소외된 마을이다. 도시재생 사업으로 새뜰마을 만들기를 한 이유다. 마을 빈 터에 쌈지공원을 만들었다. 건물 지붕을 교체하고, 창문 틀을 바꿨다. 오래된 집 내부 수리도 했다.
그동안 방치된 공간과 문화, 이야기를 갖고 마을 이야기도 꾸몄다. 골목길 여행지도를 만들고, 마을기업 대여 카페도 만들었다. 태 자리를 떠난 젊은이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시나브로 마을에 활력이 돌기 시작했다.

▲ 여수항 해상교통 관제센터 전망대에서 내려다보이는 오동도 풍경. 예나 지금이나 오동도 풍경은 여전히 빼어나다.
이돈삼

▲ 여수바다의 명소로 자리잡은 종포해양공원. 낮풍경도 아름답지만, 밤에 더욱 환상경을 연출한다.
이돈삼
바닷가 종포해양공원은 여수 밤바다의 주무대다. 공원은 2001년 여수지방해양수산청이 만들었다. 젊은이는 물론 외지인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시민과 여행객 모두의 휴식 공간이다. 자연스레 여수 밤바다를 대표하는 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여수 밤바다의 활력을 '몬당'까지 끌어올리는 일이 관건이다. 쫑포몬당마을이 '천사 벽화골목'으로 알려진 고소동에 견줄만한 또 하나의 여수 명물로 자리매김할 날을 고대한다.

▲ 종포마을 골목. 두세 사람이 옆으로 나란히 걸을 수 없을만큼 좁다.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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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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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쫑포몬당'... 놀랍게도 여수에 있는 마을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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