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진에 앞장서는 김혜란 활동가
김혜란 제공
- 만약 지금 돌아간다면, '이렇게 했으면 좋았겠다' 싶은 게 있을까요?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좀 더 재미있게 할 수는 없었을까?'예요. 저희가 집회를 운영하면서 시민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무겁다', '어렵다'는 말이었거든요. 사실 이해돼요. 우리가 박근혜를 탄핵시켰을 때 다들 '이제 새로운 세상이 열리겠구나' 기대했잖아요. 근데 문재인 정부 들어서고 나서도 우리가 기대했던 개혁이 전부 이루어진 건 아니었고, 오히려 후퇴한 부분도 많았죠. 그게 되게 뼈아픈 교훈이었어요.
그래서 윤석열 파면도 단순히 한 사람을 끌어내리는 문제가 아니라, '그 이후 사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됐어요. 그런 문제의식을 담으려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집회 내용도 무거워지고, 의제 중심으로 흘러간 것 같아요. 시민들 입장에서는 그냥 '윤석열 내려와' 이 얘기를 하고 싶었을 수도 있는데, 와보면 어려운 얘기 나오고 무거운 분위기고, 그러니까 거리감이 생긴 거죠.
서울은 자유발언이 되게 열려 있었고, 거기서 차별 철폐나 성소수자 권리 같은 얘기도 많이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파면 이후 사회에 대해 더 다양한 목소리가 나왔대요. 우리 지역에서는 그런 얘기들을 많이 담지 못했던 게 좀 아쉬워요. 참여한 시민들도 보면, 젊은 세대는 다 서울로 갔더라고요. '우리 딸은 서울 촛불 갔어요' 이런 말들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런 부분에서도 지역의 동력이 빠져나간 느낌이 있었고, 그러다 보니 목소리도 다양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사람을 참여시키는 건 늘 어렵죠. 이건 활동하면서도 계속 느끼는 부분이에요. SNS도 지역에서는 활용에 한계가 있죠. 커뮤니티 기반도 약하고. 그렇다고 기존 방식만 고수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더 많이 고민이 남았던 것 같아요. 집회가 끝난 뒤에 '우리가 목소리는 냈는데, 다음을 준비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했나?'라는 질문도 계속 들고요. 다음에는 그 간격을 줄이는 걸 더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시민사회는 아직 유효하다
- 앞으로 시민사회가 만들어갈 광장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요즘 '시민사회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다', '시민단체가 꼭 필요하냐?'는 질문을 많이 듣죠.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활동가들이 정당 활동이나 정치 영역으로 가기도 해요. 제도나 법을 바꾸는 건 결국 국회, 의회가 하는 거고, 실제 조례나 정책도 정치권이 주도하니까요. 그러다 보면 '그럼 시민사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지?' 하는 고민이 생겨요.
그런데 이번 광장 경험을 통해 다시 확신했어요. 여전히 정치권이나 행정이 할 수 없는 영역이 있고, 그게 시민사회의 역할이라는 걸요. 제도나 정책을 만들기 전에 문제를 발굴하고, 공론화하고, 목소리를 모으는 일. 그건 우리밖에 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아직도 우리 활동은 유효하다는 걸 느꼈어요.
다만 숙제는 있어요. 시민들과의 소통을 지금처럼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예전 방식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아요. 그럼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지, 누구와 어떻게 연결될지를 계속 고민해야 하죠. 젊은 청년들과의 소통도 중요하고, 반대로 실버 세대가 많아지는 흐름도 무시할 수 없어요. 함께할 수 있는 의제와 방식이 뭘까, 그걸 찾아야 해요.
다음 광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누구와, 어떤 말로, 어떤 방식으로. 그 질문은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야 할 숙제예요."
- 100명을 광장에 부를 수 있다면 누구를 부르고 싶으세요?
"제일 힘든 사람들과, 제일 결정권 있는 사람들. 같이 앉아서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어요. 누구는 일자리를 잃었는데, 누군가는 밤마다 축제를 열고 있어요. 이건 너무 불균형하잖아요. 도청에 오송 참사 추모 표지석 하나 세우는 데도 여론조사 먼저 한다더라고요. 왜 그런 거에 시간을 끄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자리에서 말이라도 듣는 시간, 꼭 필요해요."
참여연대 활동가로 산다는 것
- 참여연대 활동은 얼마나 되셨고,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지금 13년 차예요. 근데 여전히 막내예요. 저는 청주대학교 나왔고, 학생운동을 아주 찐하게 오래 했어요. 시민운동은 처음엔 충북여성민우회라는 여성단체에서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단체가 내부 사정으로 문을 닫게 되면서, 다음 걸음을 고민하게 됐죠.
시민운동은 계속하고 싶은데 노조는 제 체질엔 안 맞을 것 같고, 그러던 차에 주변에서 참여연대를 추천해줬어요. 사실 충북에 있는 대부분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서로 다 알고 지내는 사이거든요. 그 인연 덕에 자연스럽게 참여연대로 오게 됐어요.
그리고 여기서 제 남편도 만났어요. 결혼할 때 얘기도 재밌어요. 신랑을 소개해준 사람이 한 명이 아니었거든요. 시민사회 선배들이 다 각자 따로 소개해줬는데, 나중에 보니까 다 같은 사람이었어요. 지역 시민사회 전체가 우리 연애를 밀어준 느낌이었죠. 결혼할 때도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어요. 저희 시아버님은 일찍 돌아가셔서 뵌 적은 없는데, 지역 어른들이 정말 많이 축하해주셨어요." (*시아버님은 상생과 연대의 시민운동 정신을 실천하신 고 최병준 선생님이다.)"
- 참여연대 활동 중에 가장 의미 있었던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참여연대에 들어와서 제일 좋았던 순간이 이 단체가 진짜 '회원의 힘'으로 굴러가는 걸 눈으로 확인했을 때예요. 그걸 느낄 때마다 '내가 이래서 여기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 참여연대가 갑작스럽게 공간을 옮겨야 했는데 돈이 없었거든요. 그때 회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사에 필요한 비용을 모금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정말 많은 분들이 바로 도와주셨고, 그 덕분에 우리가 이사할 수 있었어요. 활동하면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면,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세요. 그럴 때마다 이 단체의 내공이 얼마나 단단한지 실감해요.
어디 가서 '저 참여연대에서 일합니다' 하면, '아, 참여연대! 알죠' 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강태재', '송재봉'처럼 참여연대와 연결된 이름들을 떠올리면서 친근하게 반응해주시기도 하고요. 그런 걸 보면서 '우리가 해온 일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요. 그런 순간순간이 누적되면서 제게 큰 의미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이 단체가 지금까지 온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그걸 느낄 때마다 고맙고, 저도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 연대라는 말이 참여연대에도 있고, 연대회의에도 있고 하잖아요. 광장에서의 연대는 어떤 의미였나요?
"(김혜란 활동가는 연대회의 국장을 맡고 있다) 너와 나를 단단하게 묶어주는 힘. '끈'이었어요. 내가 지칠 때 누군가가 손을 내밀고, 또 누군가 지치면 내가 그 손을 내밀어주는. 그게 연대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말로 설명하기보단 체감하는 거죠. 함께 있어서 가능한 힘, 같이 있으니까 끝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 광장에서 그걸 많이 느꼈어요."
인터뷰를 통해 우리가 기억하는 '광장'은 단지 모이는 장소가 아니라, 함께 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가능성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앞으로도 시민의 목소리가 닿는 자리에서 함께 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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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내밀고 손 잡아주는 연대의 힘을 체감한 광장에서 1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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