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내란사태 이후 5.18민주광장에서 농성장 운영하는 중 가장 일찍 광장에 나와 농성장 청소를 시작하고 참여하는 사람이 있든 없든 선전전을 빠트리지 않고 진행, 가장 늦게까지, 가장 부지런히 농성장을 관리한 덕분에 농성장은 늘 깨끗하고 질서있게 운영될 수 있었다.
홍성칠 제공
- 광장을 꾸려온 기간이 무려 123일이나 되는데 꽤 긴 시간이었죠?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광주 금남로에서 극우단체들이 몰려와 집회를 열었던 2월 15일이 하나의 분수령이 아닐까 싶어요. 광주만의 집회가 아니라 전 국민의 관심을 받기도 했으니까요. 그날의 광장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상계엄이 해제된 4일 저녁 5·18민주광장에서 첫 '광주시민총궐기대회'가 열렸고 그날 이후 총 20차례의 주말 총궐기대회가 있었어요.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가 있기 전과 윤 전 대통령이 석방됐을 때는 평일에도 집회가 이어졌습니다. 총 21회의 광주시민대회가 저녁마다 진행됐고 이밖에 상경 투쟁과 각계의 집회 및 시위, 기자회견 등 광주비상행동이 주관한 집회는 50여 회, 연인원 10만 5000여 명이 참가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123일이라는 기간 광장에서의 집회, 농성, 선전전 뿐만 아니라 도심 행진도 하고 젊은 세대와 함께 하기 위해 EDM(Electronic Dance Music) 파티도 해 보고 노래자랑대회, 검찰·법원 항의 퍼포먼스, 삼보일배, 천막농성 등 정말 안 해본 것이 없었네요.
123일을 돌아보면 국회에서 탄핵을 의결하는 과정, 첫 의결에 실패하고 그 다음 의결이 이뤄지기까지 일주일 동안이 첫 번째 고비였던 것 같아요. 두 번째 표결에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통과됐을 때 금남로에는 4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모여 함께 표결 결과를 지켜봤고 승리의 기쁨을 함께 누렸습니다. 그리고 세이브코리아를 비롯한 극우 보수세력이 광주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었을 때와 윤 전 대통령이 석방돼서 웃으며 걸어나왔을 때 등이 분수령이 된 순간이었죠.
그 중에서도 2월 15일, 14차 대회는 그 의미와 무게가 남다를 수밖에 없죠. 그들이 오월 시민군들이 피를 뿌렸던 광주의 금남로에서 집회를 연다는 것은 단순히 공간의 문제가 아니고 오월을 침탈한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니까요. 비상계엄에 맞서 국회로 달려가 계엄군의 장갑차와 총칼을 온몸으로 막아낸 시민들이 하나같이 1980년 광주가 우리를 행동하게 했다고 말했잖아요. 민주주의 역사에서 오월 광주가 갖고 있는 묵직한 상징성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던 거죠.
광주시민들 뿐만 아니라 전국의 민주시민들이 연대와 응원의 발길로 금남로를 가득 메웠고 응원의 댓글로 온라인 공간을 메아리치게 했고 선 결제와 자원봉사, 나눔과 후원으로 광장을 따뜻하게 채웠습니다. 그날 금남로는 1980년의 해방 광주, 절대 공동체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다만 45년 전 광주가 고립된 채로 싸웠다면 이번에는 전 국민이 함께 멀리에서, 가까이에서 함께 힘을 모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또한 광주시, 광주시의회, 5개 자치구, 시민사회단체, 종교계, 학계, 오월 단체 등 민관이 하나로 똘똘 뭉쳐서 함께 대응하였기에 더더욱 힘을 발휘했고 빛이 났던 거죠. 견해와 형편의 차이를 뛰어넘어 민관을 막론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호소하고 힘 보탤 수 있는 곳을 찾아 누구나 힘을 보탰고 '너'와 '나'의 구분없이 80년의 광주처럼 모두가 한마음으로 함께 했어요. 보수집회의 구체적 내용이 드러난 후 단 이틀만에 광주 시민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결집, 성숙한 대응은 광주의 힘과 저력 그 자체였던 거죠.
보수 세력의 광주 침탈을 광주시민들이 압도적 결집으로 막아냈던 게 지역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었지만 지루하게 길어지고 있던 내란 정국에서 전국적으로 우리가 이긴다는 믿음과 희망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활동 여건 만들지 못해 후배 활동가들에게 늘 미안"

▲ 옛전남도청 복원투쟁 중 1000일 맞이 행사
홍성칠 제공
- 파면 광장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지요. 박근혜 탄핵 촛불 때도 광장을 만드는 역할을 하셨는데 단순비교는 어렵겠지만 그때와 지금의 광장이 어떻게 다르게 느껴지는지 말씀해주세요~ ( 비슷한 질문입니다만 ) 오늘날 (광주의) '광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시나요?
"먼저 가장 큰 차이는 광장의 열기와 온도가 달랐습니다. 촛불이 훨씬 뜨겁고 역동적이었어요. 참여 수도 많았고, 자유발언, 공연자도 넘쳐 났어요. 집회 프로그램이나 사전 사후, 보조프로그램도 더 다양했죠. 촛불에 비하면 오히려 이번 광장이 단조로왔어요. 긴장감도 떨어졌던 것 같구요.
광주 '광장'의 변화는 좀더 사색하고 연구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퇴진광장에서는 남태령의 2030여성들, 케이팝을 부르는 응원봉세대, 달라진 시위문화 등이 두드러졌고 언론 등을 통해 회자도 많이 되었지만 광주는 사실 생동감이 높지 않아서 늘 고민이었거든요."
- 선배 세대로서 사회 운동에 진입하는 후배 활동가에게 어떤 지지와 격려를 하시겠나요?
"뭐든지 닥치는대로 가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지지와 격려를 하고 싶네요. 새로운 후배 활동가들이 워낙 귀해서요. 사회운동의 환경이 바뀐 만큼 후배 활동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을 선배들이 만들어주지 못했습니다. 또 지금도 못하고 있습니다. 늘 미안하죠."
- 광주에서 누구보다 오랫동안 그리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만약 한 가지 분야로 활동을 좁혀야 한다면 이것만은 남기고 집중하고 싶은 분야나 활동이 있나요?
"제가 20년 진보당 평당원인데 정당운동을 제대로 해보고 싶습니다. 정책분야에서요. 사회운동의 결실은 진보적 의제와 정책을 법과 제도로 안착하는 데에 있다고 봅니다. 좋은 정치는 좋은 정당에 의해 담보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정치를 잘하는 것이고, 좋은 정치의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 '2025 공익활동가주간'은 공익활동가들에 대한 존중과 지지를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 문화를 만들기 위한 목적으로 6월 30일부터 7월 4일까지 열린다.
공익활동가주간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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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2학년 정도부터, 그러니까 35년 정도 활동가로 살아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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