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물저금통과 시원한 물놀이 마당 빗물저금통에서 손자와 함께 물을 받았다. 작은 물자리가 큰 열을 식힌다.
한무영
젖은 수건 하나가 시원한 이유
열이 나서 머리가 지끈거릴 때, 머리에 젖은 수건을 얹으면 금세 시원해진다. 열이 난 아이에게 엄마가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것도 같다. 젖은 수건에 묻은 물이 증발하면서 몸의 열을 데리고 떠나기 때문이다. 가을에 산에 갔다가 비를 맞으면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다. 몸이 젖고, 그 물이 증발하면서 몸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원리는 모두가 아는 상식이지만, 과학으로 보면 '잠열(潛熱)' 덕분이다.
숫자로 보면 더 분명해진다
몸에서 땀이 나는 것도, 젖은 수건이 마르는 것도, 비에 젖은 옷 때문에 몸이 떨리는 것도 모두 같다.
바로 물이 기체로 변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는 '증발산(evapotranspiration)' 덕분이다. 액체인 물이 수증기로 바뀔 때, 물은 주변의 열을 흡수해 기화된다. 이 덕분에 열이 사라진 듯 느껴진다. 숫자로 따져보면, 물 1리터가 증발할 때 약 700Wh의 열을 빼앗는다. 이는 가정용 에어컨 700W를 한 시간 (1hr) 켠 것과 같다. 머리에 얹는 젖은 수건 하나에도 작은 에어컨 하나가 숨어 있는 셈이다.
밥 냄비가 가르쳐주는 원리
같은 원리는 밥을 지을 때도 볼 수 있다. 같은 세기의 불판 위에 물이 가득한 냄비와 물이 적은 냄비를 올려두면, 물이 적은 냄비는 금세 밥이 탄다. 불은 같아도 물이 열을 붙잡고, 잠열로 잡아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태양은 도시 위에 놓인 커다란 불판과 같다. 호숫가나 강변은 물이 가득한 냄비, 도시는 물이 거의 없는 냄비다. 어느 쪽이 먼저 달궈지고 탈까? 답은 뻔하다.
골목길에 물을 뿌려보자
이 원리를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일본에는 '우찌미즈(打ち水)'라는 전통이 있다. 여름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골목과 도로에 물을 뿌리면, 기온이 순식간에 3~4℃ 내려간다. 물이 증발하면서 열을 데리고 떠나기 때문이다. 만약 마을 주민 100명이 한 사람당 물 10리터씩 뿌린다면 물 1톤이 된다. 이 물이 증발하면서 빼앗아가는 열은 700kWh, 에어컨 100대를 10시간 켠 것과 맞먹는다.
도시 전체로 키워보자
우리 도시에 내린 비를 그냥 하수도로 흘려보내지 않고, 빗물저금통에 모아두었다가 가장 더울 때 골목길과 지붕, 공원에 뿌려준다면 어떨까? 만약 광진구 스타시티 빗물저장조에 있는 물 1000톤을 뿌린다면, 열 700MWh를 빼앗는다. 에어컨 10만 대를 동시에 10시간 돌린 것과 같은 효과다. 서울 청계천에는 여름이면 발을 담그는 사람들이 몰린다. 작은 수로 하나가 도시의 열을 식히는 젖은 수건과 같다. 하늘에서 내린 물이 골목과 도심을 식히는 장면은 이미 사람들이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젖은 수건 하나가 도시를 식힌다
마당 한켠의 빗물저금통, 손자와 함께한 물장난 한 바가지, 골목길에 뿌리는 물 한 바가지. 모두 같은 원리다. 작은 물자리가 열의 흐름을 터주고, 도시에 숨 쉴 길을 만든다. 하늘에서 내린 빗물을 모아두었다가 다시 쓰는 것,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냉방 방법이다. 젖은 수건의 시원함을 도시에도 적용해보자. 답은 이미 우리 곁에 있다. 누구나 아는 상식과 과학, 그리고 작은 실천이 더위를 이기는 가장 현실적인 시작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