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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채텀하우스에서 있었던 '비밀스러운 토론'... 외교의 또 다른 방식

채텀하우스룰, "누가 말했는 지는 말하지 마세요"

등록 2025.07.05 14:20수정 2025.07.05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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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런던에 위치한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영국 런던에 위치한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위키미디어 공용

영국 현지시간 지난 2일, 런던의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에서는 '영국의 한반도 영향과 역할(Britain's impact and influence on the Korean Peninsula)'을 주제로 한 공개 패널 대담회가 개최됐다. 참석자는 사전에 신청하여야 했고 채텀하우스 행동강령(Code of Conduct)에 동의해야 한다고 적혀있었다.

이날 대담회에는 주한영국대사(2018-2022)를 역임하고 현재는 왕립국제문제연구소 러시아 유라시아팀에서 활동 중인 '사이몬 스미스(Simon Smith)'가 의장을 맡았으며, 그의 후임이자 현재 주한영국대사인 '콜린 크룩스(Colin Crooks)' 대사와 영국 외교통상개발부(FCDO) 북동아시아부 책임자인 '카렌 매덕스(Karen Maddocks)', 그리고 채텀하우스 한국재단 펠로우인 '에드워드 하웰(Edward Howell) 박사' 등이 함께했다.

이날 행사는 공개 패널 대담회 형식으로 사전 신청자는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고 실시간 스트리밍되었지만, 대담회에서 언급된 내용과 관련된 기사는 역시나 한 줄도 찾아볼 수 없었다. 참가자들은 격식있고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쌓고 있는 복합적인 국제 이슈에 대해 각자의 시각을 나누었으며, 정부의 공식 입장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진짜로 생각하는 바를 말하고 있었다.

채텀하우스 룰(Chatham House Rule) - "회의나 토론에서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지만, 발언자의 신원이나 소속이 외부에 공개되어서 안 된다.", "When a meeting, or part thereof, is held under the Chatham House Rule, participants are free to use the information received, but neither the identity nor the affiliation of the speaker(s), nor that of any other participant, may be revealed."

복잡하고 민감한 국제 현안을 놓고 다양한 입장을 허심탄회하게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것, 이것이 바로 '채텀하우스 룰'이다. 1927년부터 적용돼 온 이 규칙은 익명성을 보장함으로써 참가자들이 보다 자유롭고 진솔하게 의견을 나눌 수 있게 해준다. 정치인, 외교관 등이 정치적 외교적으로 예민한 사안에 대해서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일종의 '신뢰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넷플릭스 드라마 <외교관>에서 등장하는 채텀하우스 연설 장면을 인상깊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채텀하우스룰이 실제로 시행되는 공간에서 이를 지켜보는 것은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에도 필요한 '익명성 속 토론 공간'

한국 사회는 아직 '공식 발언'과 '책임'에 지나치게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익명성과 비공식성은 종종 불신과 동일시되곤 한다. 하지만 채텀하우스 룰은 오히려 반대다. 익명성이야말로 신뢰를 전제로 하는 약속이며, 그것이 있기에 더 진솔한 이야기가 가능하다.


외교 현장에서는 특히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섬세한 단어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런 만큼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은 더욱 절실하다. 비판이나 오해 없이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 그것이 바로 채텀하우스 룰이 존재하는 이유다.

이번 토론을 지켜보며 외교는 단순히 '국가의 입장'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익명성 뒤에서 진심을 꺼내 놓는 기술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우리 사회에도 이처럼 다양한 의견이 오가고, 비판 없이 아이디어를 실험하며,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한 문화가 점점 더 자리잡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정치든 외교든 결국 사람의 말과 진심에서 출발하니까.
#영국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 #채텀하우스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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