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傷痕之詩_상처는 곧 시다. 언젠가 전시장에서 마주한 몽환적인 동양화풍 먹감나무 무늬의 신비함처럼, 상처는 조용히 시가 되어 삶의 결 속에 스며든다.
이명수
주홍빛 아래 머문 기억
전남 강진 도암면 신덕마을. 깊은 산골의 가장 안쪽, 담장 곁에는 감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가을 햇살 속, 주홍빛 감이 가지마다 매달린 모습은 어린 내게 세상의 모든 풍요가 응축된 장면처럼 다가왔다.
할머니는 그 감을 하나하나 따 광에 저장하셨다. 큰방 옆, 열쇠 하나로 여닫는 광은 단순한 저장 공간이 아니었다. 그 열쇠는 집안의 질서를 지키고, 사랑을 조율하는 조용한 중심이었다. 손주들이 광 앞을 서성이면 할머니는 "하나만 먹어" 하시며 홍시를 건네셨다. 하지만 그 말에는 늘 '두 개쯤은 괜찮다'는 눈빛이 스며 있었다.
할머니는 머슴 둘과 함께 농사를 지으셨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는 훗날 들었다. 마른 체구에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이고 사셨지만, 할머니는 언제나 단단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감나무에 오르다 다리를 다친 머슴 이야기를 꺼내신 뒤였다.
"감나무엔 절대 올라가지 마라."
그 말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오래도록 삭여진 마음에서 길어 올린, 사랑의 경계였다.
할머니 방 벽에는 감나무 널빤지로 만든 옷걸이가 걸려 있었다. 수묵화처럼 깊은 나뭇결이 새겨진, 묵직하고 고요한 물건. "이건 누가 만든 거예요?" 하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잠시 숨을 고르시다 조용히 말씀하셨다.
"느그 애비가 만든 거다."
그땐 아직 국민학교에도 들어가기 전이었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할머니 눈빛에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읽었다. 강제징용을 피해 섬으로 흘러들어 가며 죽공예로 생계를 잇던 아버지. 그의 얼굴조차 몰랐지만, 인물 좋고 손재주가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남았다. 할머니는 옷고름으로 눈가를 훔치며, 오래 만지던 그 옷걸이를 다시 한 번 쓰다듬으셨다. "왜 우세요?" 내가 묻자, 대답 없이 나를 껴안으셨다.
먹감나무 앞에 멈추다
한국문화원연합회 기자로 일하던 어느 날, 전시장에서 먹감나무 가구를 보았다. 검은 무늬가 퍼진 나뭇결은 한 장의 수묵화처럼 정적이었다. 병들거나 부러진 자리로 스며든 빗물이 만든 무늬. 그 자국 위로 시간이 흘러 결이 생겼다.
그 순간, 잊고 있던 옷걸이와 아버지의 얼굴이 섬광처럼 스쳤다. 오랫동안 나는 그를 원망하며 살았다. 어머니를 지치게 했고, 가족을 멀게 했으며, 결국 외롭게 떠난 사람. 장례를 치르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빈자리를 모른 척하며 살았다.
그러나 그 나뭇결 앞에서, 깨달음은 스며들듯 찾아왔다. 그림과 글씨에 손끝이 끌렸던 내 안에, 아버지의 결이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언어가 아니라 촉감으로 전해지는 기억, 유산 같은 것이었다.
먹감나무는 상처 입은 나무다. 부러지거나 병든 곳에 빗물이 들고, 시간이 그 자리에 무늬를 만든다. 상처는 감춰지지 않고 드러나며, 오히려 고유한 아름다움이 된다. 먹감나무는 아픔을 안고 다시 태어난다.
사람도 그렇다. 누구나 한 번쯤 무너지고, 부서지고, 잃는다. 중요한 건 그것을 지우려 애쓰기보다, 그 자리에 결을 새기며 살아가는 일이다.
화해라는 이름의 들꽃

▲개망초꽃 일제강점기, 철길을 따라 들어온 낯선 씨앗은 들판 가득 번져 ‘개망초’라 불렸다. 밭을 망칠 만큼 번성해 미움도 샀지만, 고향에선 ‘계란꽃’이라 불렀다. 어린 순을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 먹던 맛이 아직도 입안에 어른거린다. 잡초였던 그 꽃이, 이제는 ‘화해’란 꽃말을 품고 조용히 피어난다.
이명수
B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하던 시절, 영업부 직원 한 명이 며칠째 어두운 기색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편집부 사무실로 불러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어머니를 자주 때렸어요. 지금 병원에 계신데… 자식 노릇을 하라고 하시네요."
그는 눈을 떨구며 말했다.
"피를 빨리는 심정으로 도왔지만, 마음은 도무지 따라가지 않아요."
나는 그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도 아버지를 오랫동안 미워했어요. 장례를 치르며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알게 됐어요. 그 사람이 남긴 결이 내 안에 있다는 걸요."
말이 끝나고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햇살이 창밖을 스치고, 커피잔 위로 김이 피어올랐다. 나는 덧붙였다.
"누군가를 오래 미워하는 건, 그 사람보다 내 마음을 더 다치게 하더라고요. 때로는 용서가, 나를 위한 일이 되기도 해요."
며칠 뒤, 그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켰다고 전해왔다. 오래 잠겨 있던 말과 마음을 내려놓은 얼굴엔, 바람을 닮은 평온이 번지고 있었다.
들길을 걷다, 아무렇지 않게 무리지어 피어 있는 개망초를 바라본다. 오래도록 맺혔던 마음 끝에 피는 작고 고운 화해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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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4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철학하는 바보』『깨달음을 얻은 바보』『동방우화』『불교우화』『한국인과 에로스』『중국인과 에로스』 등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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