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을 지우는 정치, 삶을 되돌리는 희망

[주장] 이재명 대통령의 정책과 대희년(주빌리)의 꿈

등록 2025.07.06 10:06수정 2025.07.06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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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7.4
이재명 대통령이 4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타운홀 미팅 형식으로 열린 '국민소통 행보 2탄, 충청의 마음을 듣다'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5.7.4 연합뉴스

단테는 자신의 시 속에서 지옥과 연옥과 천국을 거닐었지만, 정작 현실에서는 끝없는 도망자였다. 플로렌스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도시에서 추방당한 그는, 고향의 돌길과 친구들, 사랑하는 언어를 뒤로한 채 먼 타국에서 유랑해야 했다. 단테에게 추방은 단순히 물리적 이별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과 명예, 삶의 목적을 동시에 빼앗긴 처절한 단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해, 그는 로마로 향하는 순례길에 몸을 싣는다.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로마 교황청이 선포한 희년(Jubilee)이었다. 희년은 빚을 탕감하고 노예를 풀어주며, 억울하게 잃은 땅과 집을 되돌려주는 해였다. 신 앞에서 죄를 씻고 새 삶을 허락받고자 하는, 단테에게는 마지막 구원의 손길 같았다. 나는 때때로 그 장면을 떠올린다. 먼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도 다시 돌아갈 고향과 이름이 있을 수 있기를 바랐던 한 사내의 절박한 모습을. 단테에게 희년은 단순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인간에게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올해는 25년만에 돌아오는 카톨릭의 희년의 해이다.

나는 단테가 걸었던 그 길 위에서 오늘의 정치와 사회가 맞닿아 있음을 본다. 단테의 시대처럼 지금 이곳에도 사람들을 옭아매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있다. 그것은 '빚'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삶을 파고들어 그들을 짓누른다. 한때 이재명이 성남시장으로 일하던 시절, 그는 그 쇠사슬을 풀고자 했다. 그의 정책 이름은 단테가 희망을 걸었던 그 단어에서 왔다. 쥬빌리(Jubilee). 빚으로 삶의 문턱에 주저앉은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허락하겠다는 약속이었다.

이재명이 착안한 것은 멀리 바다 건너 미국에서 시작된 일이기도 했다. 월가 점거 운동에서 분출된 분노 속에서 태어난 '롤링 쥬빌리(Rolling Jubilee)'는 이미 회수가 거의 불가능해진 장기 연체 채권을 시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사들여 아예 소각해 버리는 방식이었다. 금융 시스템이 무가치하다고 판단해 헐값으로 내던진 종잇조각들을 다시 인간의 존엄으로 되돌리는 시도였다. 나는 이 이야기가 늘 인상적이었다. 돈의 세계가 흘린 부스러기를 주워 모아 사람들의 무너진 마음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발상이 놀랍고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성남에서 이재명은 롤링 쥬빌리의 방식을 정교하게 옮겨왔다. 부실로 분류되어 시장에서 가치를 잃은 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아예 소각해 버린 것이다. 채권을 사들여 불살라 버린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를 없애는 일 이상의 상징적 힘을 가졌다. 그것은 빚 때문에 숨죽이고 살던 사람들에게 "네 잘못이 아니야",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고 정치가 손을 내미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행정 문서에 정책을 적는 데서 멈추지 않았다. 이재명은 '쥬빌리은행'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조금은 기발하고 대중적인 방식을 택했다. 바로 성남 FC의 유니폼에 '쥬빌리은행' 로고를 새겨 넣은 것이었다. 축구장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중계 화면은 전국 곳곳으로 생생하게 송출된다. 축구를 사랑하는 관중들의 눈길이 유니폼 문구를 스칠 때마다, '쥬빌리은행'이라는 낯선 단어는 조금씩 익숙해져 갔다. 나는 이 장면을 종종 상상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고 고개를 갸웃 했겠지만, 곧 서로 화제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수년이 흘렀다. 이재명은 더 이상 한 도시의 시장이 아니다. 이제 그는 대한민국이라는 더 거대한 무대 위에 서 있다. 그리고 대통령 후보 시절부터, 대통령이 된 지금까지도 그는 같은 화두를 붙들고 있다. "오래된 빚은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그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그의 언어 속에는 여전히 성남에서의 쥬빌리은행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이제 그가 내세운 것은 전국 단위의 채무 탕감 정책이었다. 7년 이상 갚지 못한 5천만 원 이하의 빚을 국가가 직접 소각하겠다는 약속이었다. 대상자 수만 무려 113만 명. 성남에서의 쥬빌리보다 규모로도, 범위로도 훨씬 커졌다.


요즘 7년 이상 연체된 5천만 원 이하 소액 채권을 탕감하는 그의 정책을 두고 논란이 많다. 혹자는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며 반대한다. 세금으로 무차별적으로 빚을 없애 주는 것은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7월 4일 충청 지역 타운홀 미팅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내가 갚을 능력이 되는데 빚을 탕감해 줄지 모르니 7년 신용불량으로 살아보시겠습니까? 압류·경매를 당하고, 신용불량자 등재돼 가지고 은행 거래도 안 되고, 월급·일당·보수도 못 받으니까 알바도 못 하는 삶을 7년 살아보시겠습니까? 7년을 버텨서 그 탕감을 받기 위해 일부러 안 갚고 버틸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는 정책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본질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신은 변하지 않았다. 그의 눈에 빚은 단순히 경제적 숫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존엄을 짓누르는 올가미였고, 그 올가미를 풀어주는 것이 정치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믿었다. 나는 그의 말에서 단테가 로마로 향하던 발걸음의 절박함과 같은 숨결을 느낀다. 사람들에게 두 번째 기회를 허락하려는 그 집요한 의지 말이다.

나는 이 두 시절을 종종 나란히 떠올린다. 성남에서 그는 시민과 기업의 손을 빌려 부실 채권을 사들였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서 캠코와 배드뱅크 같은 기구를 통해 채권을 매입하고 소각하려 한다. 규모와 방식은 달라졌어도, 이재명이 빚을 바라보는 눈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빚은 단순히 빌리고 갚는 돈의 문제가 아니며, 사람의 삶을 짓누르는 사회의 그늘이라는 점에서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사회적 연대를 이야기한다. 성남 쥬빌리 때도, 지금의 전국 정책에서도 그는 빚을 지운 뒤 사람들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주려 한다. 저금리 대환 대출, 재창업 지원, 이차보전 등 각종 재기 프로그램이 뒤따른다. 그에게 채무 탕감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의 시작이었다.

단테가 희년을 꿈꾸며 로마로 향했던 그 길 위에, 오늘 이재명이 말하는 쥬빌리도 함께 서 있는 것은 아닐까. 성남의 쥬빌리은행, 성남 FC 유니폼 속 그 문구, 그리고 지금 전국 단위의 채무 탕감 정책까지. 결국 이 모든 것은 같은 하나의 지향을 품고 있다. 그것은 빚이라는 어두운 굴레를 벗겨내고, 사람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숨 쉴 수 있도록 돕는 일이다.

성남에서 시작된 작은 희년의 불씨가 이제 국가적 정책으로 자라난 것을 보며, 나는 정치가 얼마나 사람들의 삶과 깊이 닿아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고 나는 빚이 더 이상 사람을 지배하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희년의 정신이다. 그리고 그것이 단테가 간절히 갈구했던 삶의 구원과도 닿아 있다고…
#이재명 #빛탕감 #쥬빌리 #대희년 #충청지역타운홀미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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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인문학, 복지, 평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글쓰기를 시작한 시민기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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