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7.07 11:46수정 2025.07.07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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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폭양이 내리쬐는 혹서의 계절이다. 이런 더위에는 움직임을 줄이는 것이 상책이라 낮에는 가능하면 야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농사일도 딱히 바쁠 게 없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틈을 타 텃밭에 발 도장을 찍는 정도다.
농촌에서 슬기로운 여름 생활
7월 들어 매일 '폭염 주의'를 알리는 재난 문자에 깜짝깜짝 놀라긴 하지만, 그래도 산과 신록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쾌적하고 시원한 편이다. 조금 덥다 싶으면 언제든 가까운 계곡으로 들어가 발을 담그면 되고, 매미 소리 정겨운 숲에서 쉼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어서 좋다.
지난해 열섬이나 다름없는 도심의 아파트에서 헉헉거리며 여름을 나던 일을 생각하면 여긴 정말 천국과도 같다. 폭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들거리며 키 재기 하듯 커가는 옥수수들의 싱그러운 녹음이 지리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바람에 실려와 더위를 식혀준다. 그 옆에는 고추가 주렁주렁 빨간 가을을 예비하고 있다. 덩굴을 뻗어나가는 고구마도 두둑 안에서는 덩이뿌리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 텃밭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들깻잎과 적양배추
임경욱
우리가 날씨나 주변 환경, 외부 자극에 민감하듯 식물들도 그러할 것이다. 다만 그들의 몸짓이나 표정을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다. 식물은 수분 부족이나 영양 결핍과 병해충의 침입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개화와 결실을 조절해 한해살이를 슬기롭게 갈무리할 줄 안다.
오후 7시가 넘어서도 해가 지지 않은 서시천 뚝방을 따라 걷는다. 길 양쪽으로 노란 원추리가 줄지어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반긴다.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개망초의 조그맣고 하얀 꽃이 곳곳에 무리 지어 피어 있다. 흔하고 보잘것없는 꽃이지만, 우리 삶의 애환이 서린 듯 애잔하고 애처롭게 곱다.
가족들의 농촌 나들이
벌써 한해의 절반이 훌쩍 지났다. 자연 속에서 지내는 시간은 여유롭고 한가하긴 하지만, 도심에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빠르게 흐른다. 우리 사회가 지난 6개월간 12·3 내란 사태로 인한 반목과 질시, 고성과 폭력, 광란의 악다구니가 설치는 터널을 지나왔다. 그런 속에서도 촛불로서 민주주의를 꿋꿋이 지켜낸 이들의 숭고한 정신이 있었기에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라는 걸 안다.
6월 연휴에는 두 아이 가족네가 이곳을 방문해 1박2일을 함께 보내고 갔다. 내가 이곳에 이주할 때부터 방문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짬이 나 함께 모일 수 있었다. 마냥 즐거워하는 가족들을 데리고 텃밭에 들러 방울토마토와 풋고추, 상추 등을 저녁 찬거리로 챙겼다.

▲ 지리산 정원에서 손녀와 손자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임경욱
점심은 산동면에서 산닭 코스요리로 미식을 즐기고 본격적인 구례 탐방에 나섰다. 구례수목원은 어린 손자·손녀가 놀기에는 조금 버거운 곳이었지만, 지리산 역사문화관은 카페와 함께 어린아이들이 놀 수 있는 쾌적한 놀이시설이 갖춰져 신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녁은 지리산 정원에 숙소를 예약했다.
지리산 정원은 2008년부터 구례군이 지리산 자락에 조성 중인 산림휴양단지이다. 지초봉을 중심으로 남서쪽, 지리산 호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다. 야생화 테마랜드, 숲속 수목 가옥, 생명 치유 가옥, 구례 생태숲, 지리산 자생식물원, 숲속 휴랜드, 유아 숲 체험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압화 체험원, 음악 분수, 생태연못, 소나무 숲 등이 잘 조성된 수목원이다. 구례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자연에서 쉬고, 배우는 색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지리산 정원 내 생명 치유 가옥을 예약해 바비큐를 즐겼다. 별빛 내리는 고요한 숲속에서 서로를 다독이며 가족의 소중함을 함께 배웠다.
감자를 캐 아이들에게 보내다
지난달 말에는 감자를 수확했다. 춘분에 심은 감자를 100일이 채 되지 않아서 캔 것이다. 별로 해 준 것도 없는데, 그동안 들인 노력과 정성보다 훨씬 많은 수확량을 얻을 수 있어서 참으로 고마웠다. 우리만 먹을 수 없는 양이라 도시에 사는 두 아이들에게 조금씩 나눠 보냈다.
포장과 배송료 등을 고려하면 별거 아니지만, 아이들은 내가 직접 농사지은 감자를 받아보고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른다. 감자로 할 수 있는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인증샷을 공유하며 온 가족이 수확의 기쁨과 나눔의 소중함을 함께 즐겼다.

▲ 손자가 텃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 들어 보이고 있다.
임경욱
이곳에서 30여 평의 텃밭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재배하고 있지만, 실제 혼자서 소비할 수 있는 양은 많지 않다. 상추와 고추, 들깻잎, 적양배추, 비트, 가지, 애호박 등 텃밭에서 자라는 다양한 채소들을 수확해 주말마다 아내에게 가져다 주지만, 그보다는 그냥 버리는 양이 훨씬 많다. 소비량을 감안하지 않고 너무 많이 심은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채소들이 잘 자라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감자를 수확하고 난 텃밭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농사의 반은 풀과의 싸움이라고 하는데, 요즘은 그다지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모든 작물을 심을 때는 비닐 멀칭을 하고 잡초방제용 매트까지 깔아줘 잡초가 용을 쓸 수가 없다. 그러다가 작물을 수확하고 나니 뙤약볕 아래서도 이내 풀들이 번성한다.
8월에는 이곳을 갈아엎어 김장용 배추와 무를 심을 요량이다. 가을이면 다시 아이들 가족과 손자·손녀를 이곳에 불러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심은 만큼 거둘 수 있다는 땅의 가르침과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즐거움을 그들도 몸으로 체득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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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물처럼, 바람처럼, 시(詩)처럼 / essayist, reader, trave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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