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력이 아닌 사람이 왔다', 이 단순한 명제

일상이 계엄 상황인 이주노동자의 현실

등록 2025.07.08 13:38수정 2025.07.08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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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극작가 막스 퓨리스의 희곡 <시아모 이탈리아니 (우리는 이탈리아 사람입니다)>에 나온 '노동력을 원했는데 사람이 왔다'라는 구절은 매우 유명하다. 독일이 이주노동자들을 도입하면서, 그에 따른 삶의 기반이나, 사회 통합 정책이 부재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이주노동자, 이주민 정책과 관련한 공론의 장에서 자주 언급되기도 한다. 그리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도 유효한 말이고,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에 강력하게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한국은 해외투자법인 연수생, 산업연수생 제도를 시작으로 이주노동자가 도입된 지 30년이 넘었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산업연수생 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바뀌었을 뿐 이주노동자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의 저출생과 초고령화 사회는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불러오고 있고, 규모와 업종은 계속 확대되고 있다. 이주노동자(이주민)를 도입하기 위한 비자 종류는 더 다양해지고, 인구소멸과 지역소멸을 우려하는 지자체는 경쟁적으로 이주노동자 유치에 나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경기도는 전국에서 이주노동자 수가 가장 많다. 최근 경기도가 'the first 이민사회'를 외치며 전국 지자체 중 가장 최초로 이민사회국을 신설하기도 했다. 달리 생각해보면 경기도가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아닌 '사람'으로, '노동자'로 기본권을 보장한다면 한국사회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주도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경기도에 살아가는 모든 이주노동자(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중앙 정부의 차별적, 착취적인 제도를 경기도부터 거부한다는 선언. 그에 따른 구체적인 삶의 기반 시설, 인프라의 확충.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이런 상상이 현실이 되면 좋겠다. 물론 그 변화를 주도하는 것은 경기도가 아닌 노동자, 시민들의 몫이겠지만.

지역민이자 지역노동자의 문제로의 접근

고용허가제의 착취성,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단속추방 정책을 비롯해 정부 제도와 정책이 이주노동자 문제의 핵심이기에 지자체가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역에서 노동하며 살아가고 있고, 기반 시설이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조건 등은 지자체가 어떤 정책과 역할을 하는지가 중요한 문제이다. 이주노동자 문제는 지역민, 지역노동자의 문제이고, 지역사회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업주와 지역민의 인식변화, 사업장 안전 조치 및 관리 감독의 문제, 통·번역 제공, 의료, 교육, 주거, 교통, 지원제도 등 지자체가 가진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고, 정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일례로 2020년 12월 20일, 경기도 포천, 비닐하우스에서 산재 사망한 이주여성 노동자 '속헹'씨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사업주에 종속되어 있고 착취성이 강한 고용허가제의 문제이다. 고용노동부는 '노동력' 도입으로만 제도를 운용하고 인권과 노동권이 문제는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아니 오히려 제도를 통해 반인권, 반노동을 강화해 왔다. 여기서 그러면, 왜 경기도 지자체는 농업 이주노동자들이 그 수많은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삼아 일함에도 제대로 점검 한번 없이, 난방도 되지 않은 열악한 시설에 죽음을 방치했는가. 속헹 씨 사건 발생 이전에 고용노동부와 단 한 번이라도 이 문제를 의제화하여 논의한 적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농장이나 농촌에 일손이 부족하기에 경기지역 사업주, 농장주들은 고용허가제 농업노동자들을 대거 도입했다. 그러나 '노동력이 아닌 사람'이 왔음에도 사람이 주거할 집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았고, 몸이 아파도 안정적으로 치료받을 수 있는 조건조차 마련되지 않았다.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언어적 문제를 포함하여 이주노동자가 긴급 구조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공적 체계는 없었다.


지난해 12월 3일 경기이주평등연대는 폭설과 한파에 이주노동자 숙소에 대한 긴급 대책을 요구하며 경기도 이민사회국과 면담을 진행한 바 있다. 면담에 참석한 이민사회국장은 경기도 내에 비닐하우스 숙소가 너무 많아서 당장 대책이 안 나올 정도라고 하소연했다. '속헹'씨와 같은 죽음이 반복되더라도 이상할 것 없는 매우 심각한 상황과 함께 위험한 숙소들이 경기도에 포진되어 있다.

통계조차 없는 경기도


지난해 10월 22일, 경기이주평등연대는 경기도 이민사회국 신설에 따른 간담회를 추진한 바 있다. 신설된 이민사회국의 역할과 계획에 대해 듣는 자리이기도 했으나, 경기이주평등연대는 경기지역의 긴급한 이주노동자 현안에 대한 요구도 진행했다. 구체적으로 이주노동자 숙소 건립 현황 및 대책, 미등록이주노동자 의료비 및 의료 통·번역 지원 확대, 체불임금과 산업재해 통계자료, 사업장 안전시설, 설비, 교육 등의 행정지도 및 실질적 대책 등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 관련해서는 이 토론문에서 다루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이주평등연대와 지속적인 소통과 만남을 요구했다.

경기도 지역에서 가장 많은 이주노동자가 일하며 살아가고 있고, 체불임금 및 산재 사망 발생률도 1위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경기도 내 이주노동자에 대한 통계나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다.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자체 차원의 문제에 대한 진단도, 대책도, 계획도 부재하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찌 보면 그동안 경기도는 외국인 종합지원센터 등을 통해 이주노동자 문제는 민간으로 위탁하는 방식으로 처리를 해 온 것이나 다름없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경기지역에서 하루하루가 계엄 상황이고 위험한 사회에 방치되고 있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 강제단속 문제는 심각한 상황을 낳고 있다. 지난 3월 경기도 화성의 제조업 공장에서 법무부 출입국의 강제단속을 피해 달아나던 이주노동자가 3층에서 1층 바닥으로 추락했다. 7일 동안 의식불명 상태에서 회복은 됐으나 온몸은 골절을 비롯해 부상이 심각했다. 같은 달 경기도 파주에서는 단속을 피해 기계 설비 시설로 몸을 숨겼다가 기계가 작동해 발목이 절단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법무부 출입국의 '토끼몰이식' 강제단속은 매우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에 이르는 사고가 수십 년 동안 계속 발생했다. 이에 대해 문제 제기에도 2003년도 미등록이주노동자 합법화 이후,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미등록이주노동자 비율이 높아지니 출입국 단속반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점심시간 식당에서 밥을 먹는 이주노동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기도 하고,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 공동체 축제 행사 중에, 교회 예배시간에, 결혼 피로연에 난입하여 강제단속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소식은 SNS를 비롯해 이주노동자 공동체 사회에 급속도로 퍼지고,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인 이주노동자들의 일상은 파괴되고, 몸이 아파도 병원조차 가지 않는다.

특히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은 건강보험에 가입이 안 되고, 만성 질환자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음에도 병원비에 대한 부담으로 제대로 관리조차 하지 못하며 건강권을 위협받고 있다. 몸이 아파 죽을 것 같아 병원에 갔을 때는 심각한 상태로 가게 되고, 국제수가 적용을 통해 병원비는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서 치료를 포기해야 한다. 이로 인한 지역사회의 사회적 부담은 사회적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최근 6월, 경기도 화성에 있는 산업폐기물 처리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모두가 미등록이주노동자로 고용되어 있었다. 동료의 죽음에 대한 애도도, 경찰 참고인 조사도, 자신들의 트라우마 치료도 이들은 강제추방의 위협을 느껴 지역사회와의 연락을 단절했다. 실제 체불임금으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에 진정인으로 출석해 조사받던 미등록이주노동자가 조사 후 경찰에 의해 출입국으로 인계되고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구금된 사례가 지난 4월이다.

등록이든 미등록이든 이주노동자들에게 발생하고 있는 가혹한 인권과 노동권 침해 문제는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고, 병원비가 없어 몸이 망가지고, 산재 사고는 은폐되고, 체불임금으로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사회는 모두에게 위험한 사회다. 그리고 모두에게 불행한 사회다. 차별과 혐오의 정치는 폭력이 일상화되는 사회로의 전환이듯, 그 영향력이라는 것은 특정 대상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경기도 이민 사회는 무엇을 준비할 것인가?

경기도 이민 사회종합계획을 보면 우수인력 유치가 가장 우선이다. 저출생과 초고령화 사회에서 경기도 역시 필요한 건 노동력이다. 그런데 노동력이 아닌 사람이 오는 것이고, 노동자가 살아가는 것이다.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기반 시설이나 환경에 대한 계획과 고민은 여전히 비어 있다. 기본 방향부터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

관점과 사고의 변화, 언어 사용에서부터 달라져야 한다. 공적 기관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표현은 사회적 이데올로기, 사회적 문화와도 직접 연결되고 확장력을 가지고 있다. 이주노동자, 이주민에 대한 차별과 혐오의 표현부터 사용하지 않도록 정비하고, 관련 조례, 규정, 지침 등 손을 봐야 한다.

고용허가제를 비롯한 한국 정부의 노예와 같은 이주노동자 제도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장부터, 경기도 내에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한다. 관련 정부 부처와 칸막이 행정이 아닌 통계부터 제대로 확보하고, 대책과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반인권적, 폭력적 행정에 대해 단호히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이주노동자 임시 가설물 형태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조립식 패널, 농막)의 숙소 현황을 파악하고, 숙소 기준에 대해 명확히 설정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 긴급 안전 대책 마련을 포함 중장기적으로 최소 1단계~3단계 또는 5개년 계획이 되든, 구체적 계획과 방향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경기도 이민 사회는 이주노동자, 이주민에 국한하지 않는다. 경기도에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함께 살아야 할 사회이다. 자본주의 체제를 지금 당장 극복할 수 없다면, 최소한 보편적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로의 전환은 기본 설정되어야 하지 않는가.

차별과 혐오의 정치를 일삼던 윤석열 정권은 탄핵 되었다. 그러나 구조적 차별과 폭력은 여전히 존재하고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며 최저임금 차등제, 해투 연수생 제도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썩어빠진 정치인은 싹을 잘라버려야 하듯, 경기 이민사회의 청사진에는 그런 차별과 폭력은 애초 담겨서는 안 된다.

그런데, 누가 할 것인가. 이런 문제에 관심 두고 분노를 가슴에 달고 사는 노동, 시민사회 운동진영이 끊임없이 제기하고 이주노동자와 함께 싸워 갈 수밖에 없지 않겠나.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
박희은 경기이주평등연대 집행위원장 화성시민신문
덧붙이는 글 6월 26일 경기사회대개혁 토론회 연장전, "'나중에'는 없다. 지금 당장 평등한 경기도"에 필자가 발표했던 토론문을 정리해 실었습니다.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박희은 #노동력 #사람 #이주노동자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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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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