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이 발생한 해에 치러진 해전에는 옥포·당포·한산도·부산포 해전이 있다. 그당시 이순신은 조정에 보고한 장계에서 임진년에 치른 전쟁을 통칭하여 "임진대첩(壬辰大捷)"이라고 하였다. 본래 첩(捷)자에는 "전쟁에서 성공하다"(『모전(毛傳)』두예(杜預)주)의 의미가 있고, 네 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고 큰 전과(戰果)를 냈기 때문에 대첩이라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이 이순신이 쓴 『난중일기』에 있다.
맑았지만 북풍이 크게 불어서 배가 고정할 수 없었다. 꿈이 예사롭지 않으니 임진년 대첩할 때와 대략 같았다. 무슨 징조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신완역 난중일기 교주본』, 1597, 9, 13
해전에서의 전과는 분멸한 왜선의 수효로 매겨진다. 임진년에 치러진 각 해전의 전과를 보면 옥포해전은 왜선 44척(옥포·합포·적진포), 당포해전은 왜선 67척(사천·당포·당항포·율포), 한산도해전은 왜선 79척(한산도·안골포), 부산포해전은 약 134척(장림포·화준구미·다대포·서평포·절영도·초량항·부산포)이다. 이 중에서 부산포 해전의 전과가 가장 크다.
1592년 9월 11일 이순신은 이대원(李大源)의 사당에 정운(鄭運)을 추가 배향하기를 청하는 장계[請鄭運追配李大源祠狀]에서 부산포의 해전을 "부산대전(釜山大戰)"이라고 기록하였다. 그후 9월 17일 이순신이 올린 「부산파왜병장(釜山破倭兵狀)」을 보면, 부산포의 해전 상황을 기록했는데, 그 요지는 아래와 같다.
전라 좌우도의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이 출동하여 … 8월 29일 동래 장림포에서 양산에서 온 적의 대선 4척, 소선 2척을 경상우수사의 수군이 분멸하였다. … 9월 1일, 화준구미(花樽龜尾)에서 왜의 대선 5척, 다대포(多大浦)에서 왜의 대선 8척, 서평포(西平浦)에서 왜의 대선 9척, 절영도(絶影島)에서 왜의 대선 2척을 삼도수군의 여러 장수와 조방장 정걸이 협력하여 격파하였다. … 선봉 왜의 대선 4척이 초량항(草梁項)에서 마주나오자, 정운, 이언량(李彦良), 이순신(李純信), 권준(權俊), 신호(申浩) 등이 먼저 격파하여 분멸하였다. … 왜선 대중소선 대략 470여척이 아군의 위세에 두려워서 나오지 못하자, 여러 전선이 진격하였다. … 종일 교전하여 적선 백여 척을 삼도의 여러 장수들이 격파하였다.
- 부산파왜병장
부산포해전은 7개의 해상지역에서 조선 전선 74척이 출동하여 왜선 470여 척 중 100여 척을 물리친 큰 해전였다. 이때의 전쟁 상황에 대해 이순신은 '결사적으로 나아가 싸우고[決死進戰]', '목숨을 바쳐 역전했다[效死力戰]'고 기록하였다. 삼도의 여러 장수들이 출동하여 격전을 벌인 비교적 큰 규모의 전쟁인만큼 치열하게 격전을 벌인 전쟁임을 알 수 있다.
당시 이순신은 「장송전곡장(裝送戰穀狀)」(1592,12,25)에서 "부산의 승첩을 아뢰는 계본(釜山奏捷啓本)"을 적으면서, 부산주첩을 언급하였다. 또한 「진왜정장(陳倭情狀)」(1593, 8,10)에서는 임진년에 승리한 해전을 "전년(임진)의 대첩[前歲大捷]"이라고 말하였다. 승첩과 대첩으로 기록된 점을 볼 때 부산해전은 보통의 해전과 다른 전쟁였다. 1597년 7월 이순신이 백의종군을 했다가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될 때 선조는 이순신을 재기용하는 기복교서(起復敎書)에서 "임진대첩 이후 공업(功業)이 재차 진작되었다[功業再振於壬辰大捷之後]"고 하여 임진년 해전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였다.
그후 1643년 택당 이식(李植)이 이순신의 시호를 건의할 때 업적을 적은 「시장(諡狀)」에서 "임진년 옥포·당포·한산도·부산에서 이공(李公)이 홀로 연속으로 대첩을 아뢰었다"고 하였고, 최시옹(崔是翁)은 정운(鄭運)의 행장에서, "매번 먼저 전쟁터에 올라 부산대첩했을 때 몸을 가벼이 여기고 죽음을 잊었다"라고 기록하였다.
요컨대 이순신은 조정에 보고한 문서에서 "임진대첩", "부산대전", "부산주첩"을 언급하고, 선조임금은 교서에서 "임진대첩"을 언급하였다. 그후 후대의 학자 이식도 시장에서 "임진년의 대첩"이라 말하고, 최시옹은 "부산대첩"을 말하였다. 임진년 대첩 중에서 전과가 가장 큰 부산해전은 "부산대첩"으로까지 명명되었다. 이는 특히 국왕 문서와 보고서에 "대첩"으로 명시된 것을 참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부산해전 관련하여 명칭의 유래와 배경은 그 당시 전쟁 상황과 이순신의 전과를 적은 문헌에 근거한 역사적 사실이므로, "부산대첩"이라고 명명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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