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서 발언하는 참전군인 류진성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김영만 참전군인은 베트남으로 떠나기 전 받았던 군사훈련에 "민간인을, 어린 아이와 여자와 노인을 죽이지 마라, 여자를 강간하지 마라" 등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런 교육을 받거나 그런 명령이 내려졌다면 상황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고도 했다. 옛날 군인과는 달리, 지금의 군인들은 최소한 말도 안 되는 명령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저항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12.3 계엄이 성공하지 못했던 이유들 중 하나로 병사들의 인식과 태도가 예전과는 달라진 점을 꼽았다.
두 참전군인은 자신들의 가해 경험을 말하기까지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 전우들을 등져야 하는 배신자의 자리에 내동댕이쳐지는 아픔 또한 겪었다고 했다. 그러나 때때로 전우회에서나 할 법한 무용담이 피해생존자와 청중 앞에서 가감 없이 쏟아졌다. 피해생존자들도 법정에서 가해 목격담을 증언해준 참전군인 류진성과 참전 이후 귀국하여 평화활동을 하며 성찰적인 행보를 이어온 참전군인 김영만에게 몇 번이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청중들은 여러 차례 큰 박수를 보냈다. 청자들은 어떤 마음으로 박수를 쳤을까?
전후책임을 함께 진다는 것
피해자들을 지원하며 베트남전쟁 민간인학살의 진상을 규명하는 운동에 이어, 참전군인의 전쟁 경험을 듣고 기록하는 운동 또한 시작되었다. 월남참전전우회에서는 참전자들이 자체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물을 동영상으로 기록하여 공유하기도 한다. 때로는 명령에 따르는 일개 사병이었다거나, 가난 때문에 전쟁에 동원되었다는 참전군인들의 말이 들려온다. 참전경험을, 특히 가해 경험을 이야기했다고 해서 그들이 곧장 평화의 주체가 되지는 않는다. 청자들이 가해자의 자리에 그들을 가두지 않으려는 의지만큼, 그들의 가해 경험이 어떻게 발화되고 공유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화자와 청자 공동의 모색이 절실하다.
'전후책임'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러한 공동의 모색 속에서 가까스로 생겨나는 물음들을 붙잡고 저지르고 말았던 일들에 대해, 수행하고 말았던 폭력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폭력이 작동했던 구조에 대해 화자와 청자가 함께 살피며, 말하고-듣기를 반복하여 기록하고-전달하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만 시작될 수 있는 것 아닐까. 고립된 개인이 홀로 가해 경험을 직면하고 성찰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경험을 말하고 듣는 자리에서
가해병사의 증언이 무용담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말의 자리를 만드는 이들과 청자들이 참전군인의 말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듣기'는 매우 능동적인 행위다. 청자들의 개입은 '검열'과는 다른 층위에 있다. 피해생존자 앞에서 서로를 용맹한 군인이었다고 치켜세우는 말들이 더 이상 모셔지지 않도록, 그러한 말들이 그 상황에서 왜 부적절한지 적극적으로 이의를 제기하며 중단할 수 있는 관계의 설정이 필요하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러한 관계는 신뢰를 전제로 한다.

▲베트남전쟁과 평화 이야기에서 두 참전군인이 발언을 앞두고 맞잡은 손 2025년 6월 21일 영등포구 사랑의 힘
한베평화재단 박상환
가해자의 자리에 선다는 것, 그리고 그 가해 증언을 듣는다는 것은 자칫 화자와 청자를 동시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화자가 권력을 휘두를 수도, 청자가 그 권력을 역전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피해 경험을 듣는 일에는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이 가해 경험을 듣는 일에는 분투하고 갈등하며 분열증적으로 흔들리는 것을 본다. 이야기에 공감하기보다 압도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세대와 젠더에 따라 말하고 듣는 자리는 위계적인 순간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서로에게 권력을 휘두르고 휘둘리지 않는 말하기와 듣기의 자리를 어떻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운동의 차원에서도 필요하다.
"평화란 무엇인가"
사회자가 퐁니 탄에게 "평화란 무엇인지"를 물었다. "하고 싶은 말이 가슴 속에 많이 쌓여 있는데, 어렸을 때 많이 배우지 못해서 그 질문에 대해 충분히 표현할 길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충분히 표현할 길 없는 평화라니. 청자들은 숙연해졌다. 어쩌면 평화를 향한 행보는 충분히 표현할 수 없었던 탄의 평화를 청자들이 함께 찾아나서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의 자리에 놓였던 참전군인의 말 또한 곁의 존재, 청자를 필요로 한다. 준비된 자기서사로 말을 이어나가는 참전군인도 있지만, 말문이 막힌 채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자신이 겪은 전쟁경험을 자신의 말로 언어화하지 못한 참전군인도 있다. 미처 말해지지 못한 참전군인의 가해경험은 '모셔지는' 말들이 아니라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서로에게 휘둘리거나 휘두르지 않는 관계 속에서 비로소 말해질 수 있고 들릴 수 있다. 이제, 청자들의 시간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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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연구활동가. 동물, 난민, 여성, 가해자성을 키워드로 트랜스보더링랩(Trans-boder-ing Lab),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마중', 번역공동체'잇다', 국제법X위안부세미나팀에서 활동한다. 공저 『폭력에 대항하는 법-일본군 '위안부'문제와 언어, 기억, 그리고 연대』, 『수용 격리 박탈-동아시아의 수용소와 난민 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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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무대에... 우리는 어떻게 말을 '주고받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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