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날마다 만나는 인연, 오일장에 정이 붙었다

포항에는 죽도 시장도 있지만, 흥해 오일장은 또 다른 맛이 있다

등록 2025.07.13 15:25수정 2025.07.13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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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7일은 포항 흥해 오일장이 열린다. 얼마 전부터 이곳을 찾기 시작한 건 다름 아닌 어묵 집의 그 어묵 맛 때문이다. 그 맛에 길들여져 한때 어묵 썰어 볶고, 취나물 삶아 잘게 썰고, 김 가루 듬뿍 부셔 넣고, 고추장 통깨, 참기름으로 버무려 먹는 비빔밥이 날 오일장으로 유혹했다.

밭에서 나온 놈들, 그들을 야채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그림이다. 멋이 가미 되지 않았지만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밭에서 나온 놈들, 그들을 야채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그림이다. 멋이 가미 되지 않았지만 참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들이다. 최승희

그런데 웬일, 오늘은 기계가 고장 나 직접 튀기는 어묵만 판매하게 되었단다. 그래도 기다리는 줄은 족히 20~30명 정도, 기다릴까 말까 고민하다 오늘은 포기하기로 했다. 개인 당 사가는 양이 많아 중간 쯤 재료 소진되어 기다린 보람이 없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쉽지만 다음 장날에....


어묵은 못 사고, 시선이 옆집 할아버지의 자두에 갔다. 난 딱딱하고 신 자두를 좋아한다. 그래서 살짝 만져보았다. 옆에 있는 천도 복숭아도 맛나 보여 그것도 만져보니, " 빨리 사지 자꾸 만지냐" 고 한다. 그런데 전혀 짜증 내지 않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말해서 난 좀 놀랐다.

 장날이면 빠지지 않는 풍경, 어묵 줄서기. 오늘은 기계가 고장이라 튀긴 어묵만 판매 중이었다. 자두와 천도 복숭아의 색감이 나를 힘 나게 한다.
장날이면 빠지지 않는 풍경, 어묵 줄서기. 오늘은 기계가 고장이라 튀긴 어묵만 판매 중이었다. 자두와 천도 복숭아의 색감이 나를 힘 나게 한다. 최승희

강원도 출신인 내가 포항에 와서 산 지 40년, 경상도 사람들의 투박한 말투가 불편했던 적 있었다. 포항 죽도 시장에 생선을 사러 갔는데 잘 몰라 자꾸 물었더니 어떤 어르신이 "살라면 빨리 사고, 아니면 말고"라며 퉁명스럽게 역정을 내셨는데 난 그 말에 엄청 쫄았다. 그 이후로 마트나 백화점의 수산 코너에서만 생선을 구입했었다.

그래서 시장은 나에겐 약간 낯선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그걸 눈치채기라도 한 것일까, 할아버지가 시장엔 자주 안 오시죠? 한다. 뭔가 어설프면서도 익숙해 보이지 않게 보였나 보다. 그렇다고 말하곤, 까다롭게 고르는 나에게 덤으로 얹어주시기까지 한다. 이게 시장 인심인가 보다.

요즘 들어 오일장의 관심이 나에게 들어오고 나서는 시간이 무지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참 이상하다. 5일 전만 해도 전국 최고의 열기로 땀 흘리게 하더니, 오늘은 그나마 바람이 살살 불어준다.
시원한 공간 안의 마트와는 비교가 되진 않지만, 이곳에서만 느끼는 고유의 장날 맛이 있는 것 같다. 북적대는 분식 가게에서 시원한 잔치국수 먹고 나니 이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거구나 싶다.

오일장의 모습들 갓 수확한 채소부터 손수 건조한 마른 생선까지, 오일장은 삶 그 자체다. '펑' 소리에 놀라긴 했지만 옛 추억이 떠올랐다.
▲오일장의 모습들 갓 수확한 채소부터 손수 건조한 마른 생선까지, 오일장은 삶 그 자체다. '펑' 소리에 놀라긴 했지만 옛 추억이 떠올랐다. 최승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여기저기 신기한 듯 보고 있는데 갑자기 '펑'한다. 뭔 소리? 뒤돌아보는 순간 또 '펑' 한다. 난 깜짝 놀랐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지나간다. 어렸을 때 동네 빈 공터에 뻥튀기 아저씨가 오는 날이면 자루에 옥수수, 쌀 등을 담아서 줄 서서 기다리며 '펑' 하고 터지기 전에 귀부터 막고 터지는 순간엔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났다. 참으로 아련하지만 행복했던 시간들의 추억으로 떠올라 한참을 서서 그분들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날씨가 더워 오전만 작업합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뛴다.


저쪽 편에는 지난 장날 옥수수 팔던 그 분이 오늘도 여전히 옥수수를 팔고 있다. 장터는 뭔가 촌스러운 듯하지만 그래서 더 정겹고 푸근하다. 시장 바닥에서 만난 아저씨, 아줌마, 할머니, 할아버지, 젊은이들, 아이들까지. 그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삶이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지금을 마주하게 된다. 장터의 '힘'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에 있는 것 같다.

시장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아가는지,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건강함이 묻어 나온다. 새벽부터 물건을 바리바리 싸 들고 온 사람들, 하루 종일 난전 한 켠에서 땀 흘리며 물건을 파는 그들에게 오늘 나는 삶의 기운을 받았다.


하늘과 오일장, 천막 그리고 사람들 장터 이모저모, 장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조심스레 담아보다
▲하늘과 오일장, 천막 그리고 사람들 장터 이모저모, 장 보러 온 사람들의 모습을 조심스레 담아보다 최승희

최근 생기를 잃고 삶의 에너지가 고갈 된 듯했는데, 오일장의 사람들로 힘을 얻고 가는 건 아닌지. 이왕 나온 김에 필요한 무언가 사려고 가게에 들렀다. 눈에 띄는 투명 파우치, 그림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종류 별로 챙겼다. 우리 손녀가 좋아할 수준인데, 내가 맘에 드니 어쩌면 좋아. "할머니와 손녀는 같다"라는 생각이 든다. 손녀가 좋아하는 분홍색도 하나 챙겼다. 좋아하면 주어야겠다.

포항중성리신라비, 투명 파우치 시장이 서는 그곳이 중성리, 그곳에서 신라비(현존하는 신라비중 가장 오래됨, 국보)가 발견된 장소, 투명 파우치도 샀다,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포항중성리신라비, 투명 파우치 시장이 서는 그곳이 중성리, 그곳에서 신라비(현존하는 신라비중 가장 오래됨, 국보)가 발견된 장소, 투명 파우치도 샀다, 어린이 같은 마음으로. 최승희

오늘 장을 돌아보면서 마음이 밝아졌다. 골목을 돌아 가는데 철로 만든 비가 하나 서있다. '포항 중성리 신라비'가 발견된 장소다. 이곳 흥해읍 중성리에서 발견된 현존 최고의 신라비로 국보이다. 현재는 국립 경주 박물관에 가 있다 . 오일장을 찾아 왔는데 역사의 숨결까지 만나는 기분, 장보기가 뜻밖의 작은 여행이 된 셈이다.

이 더운 여름, 이열치열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까운 동네 오일장을 찾아 나서 보는 것도 작은 여행이며 즐거움 아닐까? 다음 장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직접 가서 느껴보시는 걸로.
#오일장 #흥해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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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새로운 일을 계획 중에 있으며 책을 읽으며 미술관 도슨트, 시낭송, 글쓰기로 일상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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