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기지의 제설작업 눈이 많이 내려 주기적으로 전 대원이 제설작업을 해야 한다
오영식
어깨가 빠졌지만 말하지 않았다
세종기지의 식재료와 연구물품은 연 1회, 보급선을 통해 한꺼번에 들어온다. 한국에서 출항한 선박은 칠레를 거쳐 남극까지 도달하며, 수십 개의 대형 컨테이너를 실은 채 기지 앞바다에 정박한다. 이후 대원들은 이를 육상으로 옮긴 뒤, 냉장·냉동·건조 창고로 나눠 분류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한다.
우리 차대의 보급선 도착을 하루 앞둔 날, 대원들은 다가올 대규모 하역작업을 앞두고 기지 주변의 빙하 지대를 탐사했다. 모처럼 찾아온 맑은 날씨 속에서, 대원들은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긴장 속의 각오를 다졌다.
그러던 중 필자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겪었다. 빙하 위를 걷다 순간적으로 얼음이 무너지며 균형을 잃었고, 반사적으로 앞에 있던 얼음을 붙잡아 머리 부딪힘은 피했지만, 그 순간 왼쪽 어깨가 빠지는 탈골 증세가 나타났다. 처음 겪는 일이었지만 몸에서 느껴지는 통증과 감각으로 직감할 수 있었다.
문제는 다음 날이었다. 하역작업에는 전 대원이 투입되며, 한 사람의 부상도 모두에게 부담이 되는 상황이었다. 탈골 사실을 알리면 의료 대원은 물론 다른 대원들에게도 추가 부담이 갈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을 스쳐 간 수많은 생각 끝에, 결국 필자는 다른 대원들이 눈치채기 전에 빠진 어깨를 스스로 끼워 넣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탐사를 마쳤다.

▲탐사활동 중 탈골된 어깨 보급선 하역 전날 해안선의 유빙을 탐사하다 어깨가 빠졌다
고용수
숙소에 돌아온 뒤 확인해보니 심각한 부상은 아니었지만, 팔을 위로 뻗을 때마다 근육통과 염좌 증상이 있었다. 필자는 조용히 의료대원에게 파스를 받아 붙이고, 다음 날 하역 작업에도 정상적으로 참여했다.
사고 직후에는 큰 문제가 없는 듯 보였지만, 팔을 위로 뻗을 때마다 염좌와 같은 통증이 남았다. 의료 대원에게는 근육통이라며 둘러대고는 조용히 파스를 받아 붙이고, 예정대로 하역작업을 모두 마쳤다.
남극의 조용한 연대... 그리고 라면 걱정
그로부터 벌써 여섯 달이 지났다. 여전히 하늘로 팔을 들 때면 어깨 통증이 느껴지지만, 일상생활에는 큰 지장이 없어 그냥 그렇게 버티고 있다. 남극에서는 누군가 한 명이 빠지면, 그 빈자리를 다른 대원이 메워야 한다. 그렇기에 자신의 몸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쉽게 내색하지 않는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고, 모두가 그런 불편함을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세종기지 보급선 하역 1년치 생활할 식량과 연구 물품을 한번에 보급받는다
오영식
한 사람 편하자고 자리를 비우는 순간, 다른 누군가가 더 힘들어진다는 걸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자신의 고통을 특별하게 여기지도, 누군가의 동정을 바라지도 않는다. 또한, 이곳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최근 들어 과학기술 분야 예산이 줄어들면서 기지 운영에도 여파가 미치고 있다. 유통기한이 지난 라면조차 연말 전에 바닥나는 건 아닐까, 걱정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세종기지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이곳, 남극에서도 태극기를 펄럭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역할을 다하는 월동연구대 덕분에 이 깃발은 38년째 멈추지 않고 바람을 견디고 있다.
-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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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극세종과학기지 대기과학 연구원, 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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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기지에서 확인한 온난화 징후...빙하 위를 걷다가 어깨가 탈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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