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새벽에 떡 써는 모습.
장시춘
그는 예산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고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서울에서 마쳤으니 전형적인 서울 사람이다. 그가 예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강제 퇴직을 권고받고 새 직장을 알아보면서부터다.
가장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지만 그를 받아 주는 곳은 없었다. 기대치를 확 낮춰 연봉 2천만 원 정도 되는 문화센터 관리직이나 영업 경력직에 지원했는데도 떨어졌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한 유통회사 점장을 한 이력이 오히려 걸림돌이 된 것이다. 그는 "그때는 내가 왜 떨어졌는지 알지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 경력 때문이었다"며 " 재취업을 하려면 화려한 경력은 빼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취업을 포기하고 창업을 결심하면서 눈에 들어온 게 방앗간이다. '전망 좋다'는 후배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다 방앗간으로 전업한 후배였다. '(기술)다 가르쳐 줄게요'라는 그의 장담은 참으로 믿음직스러웠다. 그런데 정말로 방앗간을 하기로 마음먹고 후배에게 만나자고 하자 그때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 면전에서는 다 가르쳐준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럴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후배에 대한 서운함에 다리 힘이 풀렸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가족들 생계를 책임 져야 하는 가장이었다. '궁하면 길이 보인다'고, 수소문해 보니 대전에서 점장을 할 때 스포츠 골프 용품점을 운영하던 이가 예산 옆 청양이란 곳에서 방앗간을 하고 있었다. 문제는 점장 시절 그와 업무적으로 자주 부딪쳤다는 것. 그 뒤 화해를 위한 거듭된 노력으로 서로 앙금은 풀었지만, 그는 '친구 하자'는 제안에는 끝까지 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장시춘이 내민 손을 기꺼이 잡았다. 그가 운영하는 방앗간에서 3개월간 실습을 한 뒤 방앗간을 차리기에 적당한 곳을 물색해 찾은 게 예산시장이었다.
"인간관계란 게 참 오묘합니다. 과거에 좋은 사이였다고 미래에도 좋은 사이가 된다는 보장은 없는 거예요. 반대로 적대적인 관계가 미래로 쭉 이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와 업무적으로는 부딪쳤지만 인간적인 미움은 없었어요. 아마 그도 내 마음과 같았던 것 같아요. 헤어질 때도 역시 나쁜 감정 없이 잘 마무리했고요. 그 뒤에도 인연의 끈은 놓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래서 관계란 게 참 중요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거든요."
절친한 후배가 장시춘 대표 전화를 피하면서까지 방앗간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서운한 마음에 험담을 할 만도 한데 장 대표는 "알고 보니 가르쳐주지 않는 게 이 업계 불문율이라고, 알려 달라고 한 게 오히려 잘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장 대표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골프 용품점 점주는 어째서 아낌없이 방앗간 기술을 전수해 준 것일까?
"기술을 가르치는 자체가 경쟁업체를 양산하게 되는 것이니까 가르치지 않는 건데 그분은 생각이 달랐어요. 물을 길어내야 샘에서 물이 더 잘 나온다는, 기술도 공개하고 개발해야 더 나은 기술이 나와 발전할 수 있다는 철학을 갖고 있었던 거죠. 내게 기술을 전수해도 자기는 새롭게 할 수 있는 것을 더 많이 개발할 수 있다며 흔쾌히 알려 줬어요."
직장생활하며 잃었던 춤, 다시 찾았다

▲ 봄봄 방앗간 장시춘 대표. 경상남도 고성오광대 전수관에서.
장시춘
그는 지금의 삶이 인생 2막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1막의 연장'이라 말했다. 이 말이 내 귀에는 직장생활 하던 1막처럼 열심히 살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지금 그의 삶은 분명 인생 2막이다. 그것도 1막보다 더 화려한 2막.
"지금 수입이 월급 받을 때보다 적어서 아내 행복지수는 떨어졌지만 제 행복지수는 높아졌어요. 일단 마음이 편해요. 말도 안 되는 무리한 지시도 없고 또 그 지시에 대한 결과를 바라는 이도 없어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노력을 하고 합당한 결과를 바라면 되거든요. 또 직장생활 할 때 늘 따라다니던, 언제 잘릴지 모르는 두려움과 내 능력에 대한 불안감이 없어서 정말 좋아요. 회사가 원하는 만큼 내가 할 수 있을지 늘 불안했거든요. 지금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되는 것이고 평가도 스스로 내리면 그만이니 마음이 편하죠."
직장을 그만두고 봄봄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잃었던 취미를 되찾게 됐는데. 이 또한 인생 2막이 준 선물이다.
"저는 우리의 전통 춤이나 꽹과리 북 같은 전통 악기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대학 시절 '탈춤 동아리'에서 활동했고요. 직장생활 할 때는 너무 바빠서 못했는데 지금은 여유가 생겨서 다시 하고 있어요. 혼자 운동 삼아 하기도 하고 지역 아동센터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치기도 합니다. 2019년 이후 매년 고성오광대 전수관에 가서 2박3일 정도 일반인 전수 과정에 참여하고 있고요. 이번 여름휴가 때 아들, 조카와 함께 경상도 고성으로 춤 배우러 갑니다. 기회가 된다면 학생들에게 제 춤을 가르치고 싶습니다."
봄봄 방앗간으로 화려한 인생 2막을 펼치는 장시춘 대표. 그는 퇴직을 앞두거나 기타 여러 가지 이유로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본인은 준비가 안 됐어도 우리 사회는 이미 당신을 받아 줄 준비가 돼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도전하라"는 말을 전했다. "재취업이든 창업이든 교육이나 지원 프로그램이 잘 갖춰져 있다"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자신감만 있으면 할 일은 많다"라고 덧붙였다.
인생 2막을 살아가는 그의 미래 계획은 소박하다. 일할 만큼, 춤을 출 만큼 체력이 될 때까지, 일하면서 춤추는 것이다. 바라는 게 있다면 자식들이 사회에 나가서 지치고 힘들 때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품이 되는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그 보금자리는 봄봄 방앗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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