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중해의 끝, 파랑> 표지
바람북스
최근 이폴리트의 <지중해의 끝, 파랑>(2025년 7월 출간)을 카페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읽었다. 책 표지는 짙은 파랑 바다에 커다란 배 한 척과 작은 보트 하나가 놓여 있다. 사전정보 없이 책을 읽기 전에는 표지만 보고 동시대의 가장 뜨거운 '여름' 담론을 떠올렸다. 이와 관련된 텍스트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을 펼쳐보니 즐겁고 유쾌한 '여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처절한 난민에 관한 이야기였다.
이 책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기자인 이폴리트가 오션바이킹 호에 올라타 동료들과 난민을 구하는 여정을 다룬다. 저자는 르포 기자이기도 하지만 글과 그림을 그리는 만화가이기도 하다. 영상이나 언어가 아닌, 만화의 형식으로 정성껏 난민 구조 과정을 담아낸다. 이 여정 속에서 일어났던 매 순간의 절박함과 혼란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만화의 형식으로 애틋하게 녹여낸다.
하지만 이 텍스트는 이런 선한 의도만을 연출하지 않는다. 절박한 상황이 주어졌을 때를 고려해 우리가 '난민'을 대하는 자세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절박한 상황은 '코로나'라는 무서운(?) 바이러스와 연관이 있다. 이 바이러스가 어디서 발생 되었는지, 기원을 따져 묻는 것보다도 이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가 흔들렸던 기억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감기의 한 종류로 치부될 만큼 평범한 바이러스로 간주되고 있지만, 낯선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확장되던 시기에 감염자들은 혐오의 대상이 되거나 위험한 존재로 각인되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기에 목숨을 걸고 지중해를 횡단해 국경을 넘어야 했던 '난민'들은 어떤 대우를 받았겠는가. 힘들게 상상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난민을 구하러 가는 여정을 <지중해의 끝, 파랑>은 구조자의 입장에서 무게 있게 기록한다.
구조팀 'SOS 메디테라네'의 임무는 단순하다. "바다에 나가서, 구조하고, 하선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법적인 절차도 까다롭지만, 첫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임무가 끝난 후, "감정적으로 회복하는 데 거의 6개월"이 걸린다고 고백한다. 그만큼 난민을 구하는 과정은 힘겨울 뿐만 아니라, 정서적으로도 혹독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SOS 메디테라네에서 4년 동안 근무한 '바티스트'는 "현실을 제대로 목격하고 나면, 이전으로 돌아가는 게 불가능해요"라고 말한다. 직선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이전'과 '이후'의 시간으로 바뀐다는 것은 예술적 사건을 경험할 때 사용되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경험과 마주했을 때 쓰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서 충격적인 경험은 "삶을 향해 발버둥 치는 그들"을 구조하는 것이다. 'SOS 메디테라네'에서 가장 오래 근무한 '탕기 루프'는 또 이런 말을 남긴다.
2018년 1월, 구조 작업의 지휘권이 이탈리아에서 리비아 해안경비대로 넘어간 적이 있어요… 리비아 쪽이랑 조율해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우리는 리비아 경비대가 도착할 때가지 개입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두 시간,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는데… 상황이 복잡했어요.
아직 캄캄한 새벽 다섯 시였는데, 배 하나가 우리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더군요.
정말이지, 가까스로 충돌을 피할 정도였어요. 하지만 그 배의 누구도 구조할 수 없었죠. 리비아 경비대는 도착하자마자, 우리더러 이 구역을 벗어나지 않으면
발포하겠다고 위협했어요.
조금 뒤 해가 떴을 때, 다시 그 지점으로 돌아갔습니다. 난파선이 한두 척 보였어요. 이탈리아 순찰선 하나도 우리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그냥 방향을 돌려 가버리더라고요.
우리는 구조보트를 내리고 가까이 접근했어요. 정말이지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았어요. 파도는 1.5, 2미터 가까이 높게 몰아쳤고 바람도 초속 30노트는 됐을 거예요. 악천후였습니다. 반쯤 파손되고 이미 물이 가득 찬 배에 가까이 갔는데 사람 형체가… 둥둥 떠다녔어요. 누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불간할 수 없었어요.
아수라장이었어요. 말도 안 되는…
그래도 좋은 기억은, 우리가 아이들과 아기 여섯 명을 구했다는 거예요. 살려냈다고 하는 게 맞겠어요. 어쨌든 그 아이들은 전부 살아남았습니다. 좋은 하루였어요. 더럽고 지랄맞았지만, 좋은 하루였죠. - 〈지중해의 끝, 파랑〉, 99~100쪽.
SOS 메디테라네 대원들은 악천후의 환경 속에서 바다 위를 배회하는 아이들과 아기 여섯 명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한다. 하지만 이렇게 발견되지 않는 난민들은 어떤 운명에 놓이게 되는 것일까. 감히 상상하기 어렵다.
이처럼 이폴리트의 <지중해의 끝, 파랑>은 구조대원들의 심리를 쫓아가며 대원들의 사적인 음성과 사적인 흔들림을 선한 그림체로 담아낸다.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난민을 향한 인간의 부조리를 조금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그곳의 비참함은 나와는 어떤 관련도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반도의 역사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방식이든지 나의 서사가 될 수도 있다. 이 풍경은 남의 일이 아니다.

▲ 〈지중해의 끝, 파랑〉 170~171쪽. 난민들에게 머무를 수 있는 안전한 항구가 확보되었다는 소식이 전달되자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장면이다.
바람북스
<인간 섬>(갈라파고스, 2020)을 묶은 장 지글러는 자신의 책 마지막 글인 '부끄러움의 힘'에서 인간에게는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이 세상은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고 강조한다. 이런 힘을 믿기에 이폴리트 역시 <지중해의 끝, 파랑>을 연출했는지 모른다.
이 '부끄러움'이 단단한 법의 형태로 난민들을 구할 수 있다면 예술가로서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 무엇보다도 난민들이 낯선 이국땅에 정착해 안전하게 그들의 꿈을 포기하지 않는 시대가 도래했으면 좋겠다. '부끄러움'이 무모함을 가능한 것으로 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독자들에게 이 텍스트를 추천한다.
지중해의 끝, 파랑
이폴리트 (지은이), 안의진 (옮긴이),
바람북스,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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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필은 평론가이며 지은 책으로 문학평론집 〈싸움〉(2022)이 있습니다. 이 평론집으로 2023년 5회 [죽비 문화 多 평론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밖에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주최하는 대한민국만화평론 공모전 수상집에 「그래픽 노블의 역습」(2021)과 「좋은 곳」(2022)과 「무제」(2023)를 발표하면서 만화평론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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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을 구하는 지중해 구조대, 그 처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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