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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25.07.21 16:52수정 2025.07.2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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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 온도가 35도를 넘나드는 요즘, 쉽게 여름의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다.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경찰관은 겨울철 한파 속 근무보다 여름철 폭염 근무가 훨씬 힘들다.
먼저 기본적으로 착용하는 장비들이 많다. 겨울엔 장비를 겉옷 위에 착용할 수 있지만, 여름엔 반팔 근무복 위에 조끼를 덧입고 권총, 삼단봉, 수갑, 무전기, 수첩, 장갑 등 기본적으로 8가지 이상의 장비를 몸에 지닌다. 그 자체의 무게만 해도 상당하다.
112신고를 접수하고 처리할 때도 무더운 여름철이 훨씬 힘들다. 가령 단순 교통사고라면 음주 여부만 확인하고 보험 접수를 안내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신고지만, 폭염 속 아스팔트 위에서 20~30분 이상 교통 정리를 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교통사고 처리 현장 경찰관이 교통사고 처리 현장에서 햇빛이 너무 강해 손으로 가리고 있다.
박승일
차량이 심하게 파손된 경우라면 두 명의 경찰관이 번갈아 근무해도 벅차다. 이상하게도 그런 신고는 꼭 한낮, 지열이 가장 높은 시간대에 몰린다. 가끔은 왜 그때 많이 발생하는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112신고 처리 현장에서 필수품으로 챙기는 물품 중 한 가지는 라텍스 장갑이다. 술에 취해 사람이 쓰러져 있다는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해도 감염 예방 등을 위해서 장갑을 껴야 한다. 특히나 지문이 남거나 증거가 훼손될 수 있는 절도 사건 현장에서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그런 장소가 실내라고 하더라도 꼭 에어컨이 없는 곳에서 자주 발생한다.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사건을 처리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순찰차에 앉아서 처리할 수 없는 신고
폭염속 가장 힘든 신고는 실종자 수색이다. 아무리 덥더라도 무조건 밖에서 걷고 눈으로 직접 살펴봐야 해결할 수 있는 신고다. 대로변 상가와 아파트 비상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할 때가 많다. 절대로 순찰차에 앉아서 해결할 수 없는 신고인 것이다.
요즘은 치매 노인을 찾는 신고가 꽤 많다. 무더위 속에서 치매 노인이 장시간 방치되면 큰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걷고 뛸 수밖에 없다. 아무리 덥더라도 대충할 수 없는 신고인 것이다. 그렇게 밖에서 무더위와 씨름을 한 뒤에 사건을 해결하고 경찰관들이 순찰차에 오른다. 그런데 정작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앞에서 대접 받는 건 따로 있다.

▲순찰차 안 폭염속 순찰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는것은 경찰관이 아니라 업무폰이다.
박승일
"열 좀 식혀줘. 너무 뜨거운 거 같은데, 귀하신 몸인데 잘 챙겨줘야지."
"맞습니다. 진짜 이 친구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
"현장에서 112신고 처리를 하는데 이게 없으면 끝이지."
"그러게요. 저보다 훨씬 귀한 대접을 잘 받는 것 같습니다."
"경찰관이 현장에서 아무리 업무를 잘 처리하고 싶어도 한계가 있지."
"이게 없으면 잘하고도 욕먹습니다."
순찰차에서 후배 경찰관과 나눈 대화다. 요즘 같은 폭염이 계속되면 일선 현장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도 힘들기는 여느 직업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날이 더워질수록 특별한 대접을 받는 건 경찰관이 아니다. 바로 '업무 폰'이다. 정식 명칭은 PDA(휴대 정보단말기)다.

▲ 업무 폰(왼쪽), 무전기(오른쪽) 입니다.
박승일
순찰차마다 두 대가 비치되어 있다. 일반 휴대전화와 같은 크기와 형태다. 단지 인터넷 사이트는 접속이 안 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적인 음성통화는 가능하고 112신고를 접수하면 신고 내용과 위치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넷 화면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현장에서 조치 내용을 입력하고 보고하는 경찰 내부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다.
과거 순찰차 안에서 경찰관이 휴대전화만 본다는 민원이 있곤 했는데 그게 바로 이 업무폰이다. 물론 경찰관도 순찰차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사용하기도 한다. 업무폰은 일반적인 인터넷이 안 되기 때문에 포털을 통해 검색할 때도 많다. 그 외에도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도 한다. 나는 그렇다.
한낮 무더위 속에서 신고 처리를 하기 위해서 순찰차에서 내릴 때 시동을 끄고 외부에서 30여 분 이상씩 있다가 다시 순찰차에 탈 때의 실내 온도는 상상 이상일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경찰관들끼리는 순찰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을 작동시키고 시원해질 때쯤이면 '이제 신고가 들어오겠구먼'이라고 자조 섞인 말을 하곤 한다. 실제로도 그런 경우가 많다. 희한하다.
현장에서 112신고를 처리하는 경찰관에게 '업무 폰'은 너무도 중요하다. 아무래도 통신기계다 보니 가끔 먹통이 될 때도 있다. 그럴 때는 무척 당황스럽다. 그러다 보니 배터리가 과열되지 않도록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그래도 한계는 있다. 24시간 365일 신고는 있고 경찰관도 그렇게 근무하기 때문에 항상 켜져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끔 순찰차 안에서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송풍구 가까이에 업무 폰을 가져가 과열되지 않도록 식혀주곤 하는 것이다.
경찰관에게 가장 큰 도움은...
112신고는 주로 노상에서 처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작은 손 선풍기 하나 휴대할 수 없다. 자칫 그게 흉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물품에 대한 제한이 철저하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는 더위를 피할 마땅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물론 경찰 자체적으로 혹서기 근무 지침이 있긴 하다. 폭염경고(체감 온도 35도 이상) 때는 도보 순찰의 경우 순찰차에 함께 타 근무하거나 단속을 중지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경찰관은 아무도 없을 듯하다. 112신고 처리에 대해서는 어떠한 별도의 지침이 없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다. 경찰관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른 수단으로 대체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름철에는 불쾌지수가 높아져 감정적인 신고 유형도 많다. 긴급한 112신고라고 생각하고 현장에 출동했다가 황당할 때도 많다. 얼마 전 주택가에 있는 어린이 공원에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신고가 있었다. 현장에 출동해 보니 아이들의 보호자들도 함께 있었다. 고함을 지르거나 소란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다. 단지 공놀이를 하면서 주고받는 소리 정도였다. 솔직히 주의를 줄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양보하지 않고 차에서 내려 다투는 현장도 있었다. 옆 빌라의 주차장 쪽으로 몇 미터만 이동해줘도 다툼은 없는 현장이었다. 유독 여름에는 이런 신고가 더 많아서 안타깝다.
그런 걸 보면, 경찰관에게 무더위를 이겨낼 특별한 방법은 없는 듯하다. 단지, 불필요한 신고가 줄어드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일 뿐이다. 경찰관을 필요로 하는 112신고 현장에서 덥다는 핑계로 업무 처리를 게을리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한 감정 싸움이나 일상 다툼과 관련된 신고는 줄었으면 한다. 현장에서 경찰 업무와 상관없는 일에도 수십 분씩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화해를 시키는 것도 출동 경찰관의 몫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남을 위한 배려와 이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럴 때 우리 마음의 온도도, 아스팔트 현장의 온도도 조금은 낮아질 것이다. 그런 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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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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