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에 전기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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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도중 전기가 나갔다. 교실 전등과 빔 프로젝터 화면이 순식간에 꺼졌다. 수업이 멈춰 섰고, 이내 아이들은 웅성거렸다. 옆 교실에서 수업 중이던 동료 교사가 복도를 기웃거렸다. 다른 교실도 정전이 됐는지 확인하려는 거다.
교실마다 아이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넘쳐났다. 다들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드물게 아이들끼리 싸움이 벌어졌나 싶을 만큼 큰 고함이 들리기도 했다. 교실의 창문이 모두 열렸고, 아이들이 삼삼오오 복도로 나오기 시작했다. 복도가 일약 피서지가 됐다.
교실이 어두워지고 수업 화면이 꺼진 건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에어컨과 선풍기가 멈췄다는 점이다. 전기가 나간 지 불과 10여 분도 지나지 않아 교실 안은 바깥의 폭염으로 인해 후끈해졌다. 아이들은 연신 부채질을 해댔고 소매를 걷기도 했다.
어두운 건 견뎌도 더운 건 못 참겠다는 거다. 바깥의 폭염과 아이들의 체온까지 더해져 비좁은 교실 내 온도는 금세 30도를 넘겼다. 얼굴마다 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서 시원한 물을 찾았다. 움직일수록 더 덥다는 말로 흥분한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게 고작이었다.
숨 쉬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이내 전체 교사의 단톡방에 긴급 문자가 떴다. 3교시까지 수업하고 일괄 하교 조치한다는 내용이었다. 끊긴 전기를 복구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일 테다. 바로 옆 공공기관의 배전 장비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전기가 끊기니 학교의 모든 게 '올스톱'됐다. 전기가 복구될 때까지, 조금 과장하자면, 숨 쉬는 것 말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수업은 물론, 행정 업무와 전화 통화도 불가능하고, 화장실의 물조차 사용할 수 없다. 심지어 교무실의 전동 문조차 열 수 없는 지경이 됐다.
식생활관(급식소)에서 점심을 준비할 수도 없다. 긴급히 학부모의 양해를 구한 뒤 조기 하교시킨 가장 중요한 이유다. 미리 끓여 놓은 1천여 명분의 국거리는 몽땅 버려지게 됐다. 서둘러 전기가 복구되지 않는다면 냉장고에 보관 중인 수많은 식자재도 위험하다.
전등도 에어컨도 모두 꺼진 어둡고 후텁지근한 교실에서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끈 채 오랜만에 'MBC 수업'을 진행했다. 'MBC 수업'이란, 입(Mouth)과 칠판(Blackboard), 분필(Chalk)만 활용하는 옛날 방식의 강의식 수업을 말한다. 구태의연한 수업을 조롱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도구를 기준으로 삼는 전통적 시대 구분법에 전기가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
"에어컨 사용량이 늘수록 폭염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느닷없는 정전으로 인해 급조한 주제였으나, 역사 교과에 환경 관련 내용을 뒤섞은, 이른바 '융합형 계기 수업'이었다. 연신 부채질하며 짜증을 내던 아이들도 귀를 쫑긋 세우는 매우 시의적절한 주제였다. 새삼 깨달은 거지만, 수업의 질은 첨단 기기의 활용 여부와 무관하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당대 사용한 도구를 기준으로 시대 구분을 하는 게 보편적이다. 구석기와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 등의 시대 구분법이 그것이다. 19세기 후반 덴마크의 고고학자 크리스티안 위르겐센 톰센이 처음 제시한 걸로 알려져 있다. 몇몇 아이들의 답변이 이어졌다.
"지금도 철기 시대라고 배웠는데, 교과서가 틀린 것 같습니다."
"20세기부터 '플라스틱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여겼는데, 이것도 옛말 같습니다."
"오늘부로 확신하게 됐습니다. 앞으로 현재를 '전기 시대'로 명명하겠습니다."
역사 교과서 첫 단원에서는 구석기 시대부터 '초기' 철기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굳이 철기 시대 앞에 '초기'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지금도 철기 시대의 범주에 속한다는 걸 은연중에 암시한다. 그렇다고 교과서에 '후기' 철기 시대라고 서술하진 않는다.
철이 현대의 문명을 이끌고 온 견인차였음을 부인할 순 없지만, 요즘 아이들의 생각은 사뭇 다르다. 철이 인류를 위한 도구로 사용될 수 있도록 만든 석유 등의 화석 연료가 더 중요한 도구 아니냐는 거다. 아이들은 철기 시대가 오래전에 끝났다고 입을 모은다.
그들 사이에서 그렇게 등장한 용어가 '플라스틱 시대'다. 석유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도구라는 뜻이다. 폭염 속 정전 사태를 겪은 지금, 아이들은 그마저 이젠 틀렸다고 한다. 에어컨이 없으면 단 한 시간도 버틸 수 없다고 호들갑을 떨며 지금은 '전기 시대'라고 명토 박았다.
누구 하나 반박하는 경우가 없었다. 단지 여전히 석탄이나 석유를 써서 생산하는 화력 발전소가 운영되고 있으니 아직은 이르다는 이야기가 드물게 나왔을 따름이다. 화력과 수력, 원자력과 재생 에너지 등 발전 방식은 달라도 '전기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매조졌다.
자연스럽게 에어컨의 사용이 바깥 온도를 끌어올릴 뿐더러 더 많은 전기가 필요하다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기실 에어컨이 가정과 사무실마다 필수품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기 소비량이 급증했다. 이는 애꿎게 원자력 발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활용됐다.
등교하자마자 에어컨부터 켜는데 원자력 발전에 반대하는 건 이율배반이라며 '반성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는 이들이 폭염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불공정한 현실을 성찰하기도 한다. 물론, 연일 계속되는 폭염 앞에서 '반성'은 말로 끝나기 십상이다. 다짐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뜨뜻미지근하게 내린 결론

▲ 폭염이 계속되는 지난 7월 9일 서울마포구 홍대 부근 거리에 설치된 전광판에 이날 기온이 표시되고 있
연합뉴스
"폭염이 상수가 된 현실에서 에어컨 사용을 억제하는 건 대안이 될 수 없어요. 근본적인 해법은 전기를 거의 소모하지 않은 첨단 에어컨을 개발해 모두에게 보급하는 거죠."
한 아이가 제시한 대안에 모두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풍요 속에 자란' 아이들다운 해법 같기도 했다. 에어컨 없는 여름을 상상조차 못 했고, 폭염의 원인을 궁구하는 데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아이들은 나아가 폭염이 인간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수 없는 '신의 영역'이라며 눙쳤다.
"전기를 거의 소모하지 않는 첨단 에어컨을 개발하는 것보다 폭염 발생의 주요 원인이라는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포집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게 더 쉽고 빠르지 않을까?"
그의 허황한 주장은 나의 또 다른 허황한 한마디 반문에 무너지긴 했다.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계획에 없던 계기 수업을 진행했으나, 교육적 성찰로 이어지지 못하고 뜨뜻미지근 상태로 끝났다. 굳이 소득이라면, 미래 지구온난화와 폭염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기가 여간 쉽지 않으리라는 깨달음이다.
수업이 끝날 즈음, 태반의 아이들이 마치 더위 먹은 닭처럼 만사가 귀찮다는 듯 축 늘어져 책상 위로 쓰러졌다. 엎드렸다 일어났다 반복하며 혼잣말처럼 욕설을 내뱉는 아이도 있었다. 식생활관의 점심 준비가 어려운 게 조기 하교를 결정한 직접적 계기였다지만, 어쩌면 에어컨 가동이 멈춘 게 가장 중요한 이유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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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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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폭염에 정전된 교실, 'MBC 수업' 하고 내린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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