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복즉자조복(無福則自造福) 복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복이 없거든, 스스로 짓는다. 작은 손길로 쓰레기를 줍고, 한 줄의 글을 다듬으며,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는 순간 내 안의 운이 조용히 싹튼다. 그 사소한 선택이 세상과 나를 잇는다.
이명수
나는 배고픔을 감수해야 하는 길인 줄 알면서도 작가가 되기를 택했다. 상위 몇 퍼센트를 제외하면 이 길은 늘 경제적 불안과 외로움이 따른다. 전업 작가를 꿈꿨지만, 생계를 위해 편집자로 일하며 글을 썼다. 지금도 여전히 고치고, 퇴고하고, 다시 쓰는 삶이다. 일터의 책상 앞에는 찰스 부코스키의 시가 붙어 있다.
"망할 놈의 예술을 한답시고 / 배를 곯을 때는 / 지옥은 닫힌 문이다."
절망 속에서도 문을 두드리라는 말이다. 작가로서의 삶은 끝없는 두드림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운을 조금씩 쌓아갔다. 문장을 다듬고, 한 번 더 퇴고하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소한 순간들로. 그래서 오래전에 한자 표현을 만들어 서재 한쪽 벽에 붙여두고, 자주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無福則自造福(무복즉자조복) ― 복이 없거든, 스스로 지어라.
하늘이 주지 않거든, 그 터를 닦아라.
젊을 땐 늘 하늘을 원망했다. 왜 내 글은 더 많은 사람에게 닿지 않느냐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복은 거창한 성공이나 위대한 선행이 아니라, 내키지 않아도 감행한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날 지하철에서 쓰레기를 치우지 않았다면,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치웠기에 내 하루는 한결 가벼웠고, 마음속에서 '잘했어'라는 작은 속삭임이 들렸다. 그리고 그 뒤로 나는 동료에게 더 따뜻한 말을 건네고, 글 한 문장을 더 정성스럽게 다듬는 나를 발견했다. 그것이 복의 시작이었다.
운은 연결에서 자란다
운은 혼자만의 노력이 아니다. 지하철에서 쓰레기를 줍던 날, 옆에 있던 여고생들이 잠깐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놀람과 호기심이 비쳤고,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따라 할지도 모른다는 기척이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도 작은 행동으로 하루를 바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내가 쓴 문장은 누군가에게 닿는다. 단 한 사람일지라도, 그에게 작은 위로나 깨달음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내가 쌓아온 운이 세상으로 퍼지는 순간이다. 운은 결국 나와 타인을 잇는 다리가 된다.
운은 기다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바닥의 쓰레기를 줍는 일, 한 문장을 더 다듬는 일,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는 일,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모여 운이 된다. 작은 선택들이 쌓여 나를 단단하게 만들고, 세상과 이어 준다.
오늘도 나는 바닥을 살핀다. 아직도 망설이지만, 몸을 숙인다. 작은 선택이 쌓이는 그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주워 올린다. 그리고 언젠가, 이 길 끝에서 만날 누군가를 위해, 그 복을 지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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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문학 21』 3,000만 원 고료 장편소설 공모에 『어둠 속으로 흐르는 강』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고, 한국희곡작가협회 신춘문예를 통해 희곡작가로도 데뷔하였다.
40년이 넘도록 출판사, 신문사, 잡지사의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철학하는 바보』『깨달음을 얻은 바보』『동방우화』『불교우화』『한국인과 에로스』『중국인과 에로스』 등의 저서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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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쓰레기를 줍던 날, 여고생이 나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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