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사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진주성을 보수하고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찰
문운주
잠시 숨을 돌린 뒤, 서장대(서쪽 지휘소)를 지나 호국사에 도착했다. 호국사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진주성을 보수하고 승병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처음엔 내성사라 불렸으나 숙종 대에 임진왜란에서 전사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며 '호국사'로 개칭되었다.
다시 발걸음을 옮겨 창렬사에 이른다. 이곳은 임진대첩 계사순의단과 함께 반드시 들러야 할 장소다. 김시민, 김천일, 황진, 최경회 등 임진왜란에서 순국한 39분의 신위가 모셔져 있는 충절의 공간이다.
탐방의 마지막은 국립진주박물관이다. 이곳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중완구, 비격진천뢰 등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무기를 비롯해 구석기 시대 주먹도끼부터 근대 형평운동 관련 유물까지 경남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는 유물이 전시돼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전시물은 '숫자로 본 임진왜란'이다. 당시 인구는 조선 약 700만, 일본 1500만, 명나라 1억 6천만 명으로 병력과 자원의 격차를 보여준다. 평균 신장은 조선 161.1cm, 일본154.7cm, 포르투갈 165.7cm로 차이가 뚜렷했다.
섬뜩한 기록도 있다. 일본 교토의 귀무덤(미미즈카)에는 조선과 명나라 사람들의 코와 귀 21만4752개가 묻혀 있다는 내용이다. 또한, 조선인이 쌀 두 가마니 값에 포르투갈 상인에게 팔려나갔다는 수치는,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 존엄이 얼마나 잔인하게 짓밟혔는지를 절감하게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영남포정사 문루를 지나 다시 공북문으로 나왔다. 진주성은 단순한 유적이 아닌, 조선의 충절과 아픔이 서린 살아 있는 역사였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그 속엔 수백 년을 관통하는 시간의 깊이와 민족의 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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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주성 석성(둘레 1,760m)으로 축조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되어 있는 평산성. 본래 토성이던 것을 고려 우왕5년 (1379)에 석성으로 수축 ⓒ 문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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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만 여개의 코와 귀무덤, 전쟁이 남긴 섬뜩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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