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발생농장을 통제하는 모습
농립축산식품부
지난 6월 27일 경남 김해의 한 토종닭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확인됐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그동안 AI의 매개체가 겨울 철새들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대개 겨울철 철새의 도래와 함께 발생하던 AI의 일반적인 양상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여름 문턱에서 AI가 발병했다는 점은 조류 인플루엔자가 더이상 계절적인 요인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내 축산 환경에 풍토병(Endemic Disease)화 되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매번 조류 인플루엔자가 발생하면 겨울철 철새만을 주된 원인으로 지목하던 풍토도 바꿔야 한다.
겨울 철새들에게 원인을 넘기면 근본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고 책임도 지지 않아도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미루는 현 방역 정책의 기조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이제 재고되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집계에 따르면, 2003년부터 최근까지 22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총 1367건의 고병원성 AI 가운데 여름철(6월~8월) 발생건수는 무려 50건에 이르고 있다. 전체 AI 발생의 3.7%에 불과한 수치지만 결코 적지 않다. 사람이 여름이 되면 감기 발생이 줄어드는 것처럼, 바이러스성 질병은 계절적 요인에 따라 발생 양상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AI가 철새가 없는 여름에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철새 매개체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다.
철새가 없는 시기에 AI가 발생하고 있는 현상이 단순한 이례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이미 우리 축산 시스템 어딘가에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명확한 증거로 인식하는 것이 옳다. 단순히 외부에서 들어오는 바이러스만 막는 방식으로는 AI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명확하다.
'풍토병' 진화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
김해에서 발생한 여름철 AI 사례는 조류인플루엔자가 이미 국내에서 '풍토병'처럼 자리 잡았을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한다. 풍토병은 특정 질병이 특정 지역에서 상시적으로 발생하거나 일정 수준의 유병률을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AI의 풍토병 주장은 여러 요인들에 의해 뒷받침 될 수 있다.
AI 바이러스는 저온에서 생존력이 강하며, 오염된 토양, 물, 분변 등 환경 내에서 장기간 생존할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철새가 떠난 이후에도 환경에 남아있던 바이러스가 다시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제는 우리나라 환경이 이미 바이러스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리 등 일부 가금류는 AI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뚜렷한 증상 없이 바이러스를 배출하는 '은닉 특성'을 가지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특성은 바이러스가 농장 내에 잠복하며 지속적으로 순환하고, 특정 시점에 다시 발현하여 확산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공장식 축산 환경에서 나타나는 높은 사육 밀도 역시 중요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높은 밀집도와 이로 인한 가금류의 스트레스 증가는 면역력을 약화시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바이러스가 일단 유입되면 밀집된 환경에서 순식간에 퍼져나가 대규모 확산을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더불어 농장 직원, 사료 운반 차량, 분뇨 처리 차량 등 사람과 물류의 이동은 계절과 관계없이 바이러스를 농장 간, 또는 농장 내부로 퍼뜨리는 주요 매개체가 되고 있다. 철저한 차단 방역 없이는 바이러스의 상시적 순환을 막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복합적인 요인들은 AI가 더 이상 외부 유입에 의해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축산 환경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하고 확산될 수 있는 '상시적인 위협'이 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AI의 풍토병화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와 방역 당국이 여전히 '겨울철 철새 유입'만을 강조하며 실질적인 대안 마련을 미루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매년 반복되는 살처분 중심의 방역 정책은 농가의 막대한 경제적 손실과 정신적 고통을 야기하며, 국가 재정에도 큰 부담을 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AI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꾸준히 관리하는 새로운 방역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살처분이라는 최후의 수단만으로는 지속 가능한 축산업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풍토병 시대, '백신'을 포함한 실질적 대안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AI를 풍토병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은 다음의 실질적인 변화가 시급하다고 보고 있다. 가장 시급하게 검토되어야 할 대안 중 하나는 바로 예방적 백신의 도입이다. 백신 접종은 살처분 정책의 강력한 보완책이 될 수 있다. 백신을 통해 가금류의 감염 시 바이러스 배출량을 현저히 줄여 확산을 억제하고, 불필요한 살처분 규모를 최소화하여 농가의 경제적 피해를 경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규모 살처분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질병 통제라는 명목 아래 수많은 생명을 단순히 도구화하고 존엄성을 침해하는 비윤리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동물권의 관점에서 깊은 비판과 함께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 역시 주지의 사실 이다.
프랑스가 오리 농장에 AI 백신 접종을 의무화하고, 홍콩, 베트남 등에서 백신 도입 후 AI 발생이 현저히 줄었다는 성공 사례들이 나오고 있다. 백신이 방역에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한 셈이다. 백신 접종 비용이 살처분 비용보다 훨씬 저렴해, 경제적 효율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바이러스 변이 가능성이나 무역 마찰 등의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도입 논의는 필요한 시점이다. 철저한 연구와 단계적인 적용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농장 단위의 상시 예방 및 관리 체계 강화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계절과 관계없이 농장 내부의 철저한 위생 관리, 소독, 외부 인원·차량의 엄격한 통제 등 기본적인 차단 방역을 상시화 할 필요가 있다. 특히 취약 농가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과 관리가 동반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고밀도 사육 환경 개선, 환기 시스템 확충, 노후 축사 현대화 등을 통해 가금류의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높여 AI 감염에 강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이다.
마지막으로 AI 바이러스의 국내 순환 양상과 변이 특성, 그리고 백신 효과 등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투자 및 정밀 감시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방역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김해에서 발생한 여름철 AI는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절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AI를 '새로운 현실'로 받아들이고, 국민과 축산 농가의 고통을 덜어줄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안 마련에 정부의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더이상 '철새 탓'이라는 구시대적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다. '선진 방역'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과감한 정책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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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조류 독감' 발생, 겨울 철새 탓 이제 그만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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