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경루'의 홍예문
이승숙
병자호란으로 조선은 도륙을 당했다. 청군이 상륙했던 강화도의 피해는 더 컸다. 강화도로 피신 왔다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던 봉림대군(효종)은 이후 북벌(北伐)을 필생의 숙원 사업으로 삼았다. 강화 동쪽 바다는 한양으로 들어가는 중요 물길이었다. 강화가 뚫리면 한양은 목줄을 붙잡힌 거나 매한가지 신세가 된다. 때문에 강화를 요새화 하였다. 기존의 외성을 보완하고 돈대도 만들었다.
강화 외성은 동쪽 바닷가를 따라 축조 되었다. 서해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초입인 초지진에서 한강으로 들어서는 길목인 월곶리 적북돈대까지, 총 길이 23km인 외성에는 6개의 문루가 있었다. 조해루(朝海樓), 복파루(伏波樓), 진해루(鎭海樓), 참경루(斬鯨樓), 공조루(控潮樓), 안해루(按海樓)가 그것이다. 문루 이름에는 모두 '바다(海)'의 의미가 들어 있다. 그중 '참경루'는 고래를 잡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참경루'라 지은 까닭은?
참경루는 용진진의 남쪽 문으로 숙종 17년(1691)에 강화유수였던 신후재가 세웠다. 정조 7년(1783)에 보수하였는데, 당시의 강화 유수 김노진은 '중수기重修記'에서 "누각의 이름을 '참경'이라 한 것은 장차 뜻을 두려는 것이다. 뜻을 두는 것은 하늘의 질서와 사람의 규범이 세워지는 것이다.병자 정축년의 호란을 당하여 저 어리석은 자들이 교만하게 굴면서 국사를 그르친 원인은 뜻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 이 누각에 올라 '참경'이란 이름을 되돌아보니 후대에 반드시 나의 뜻과 같이 하여 기록하는 자가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 좌강돈대는 지름 35m, 둘레 102m, 잔존 성벽의 높이는 3.5m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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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강돈대의 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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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경(鯨),고래'는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병자년과 이듬 해인 정축년의 호란을 언급하는 것으로 봐서 경(鯨)은 청나라를 뜻하는 것일 듯하다. 병자호란으로 나라가 초토화 되었다. 그 기억이 뼈에 사무쳤던 조선은 이후 북벌을 꿈꾸었다. 참경루에는 청나라를 치겠다는 소망이 담겨 있다.
병자호란 이후 강화도로 들어오는 관문인 '갑곶'의 중요성을 인지한 효종은 갑곶 인근에 여러 개의 군영을 설치했다. '용진진'도 그중 하나다. 용진진은 인천시 기념물 제42호로 효종 7년(1656)에 설치돼 포좌 4개소, 총좌 26개소를 갖췄다. 용진진은 좌강돈대, 가리산돈대, 용당돈대를 관할했다. 돈대에는 돈군이 숙직했는데, 모두 합해 18명이었다. 각 돈대마다 약 6명의 군사가 숙직했을 것이다.
용진진에 바짝 붙어 있는 좌강돈대는 숙종 5년(1679)에 축조 되었다. 이 돈대는 수로를 통해 육지로 침입하려는 적을 막기 위해 만든 듯 수로 옆의 낮은 언덕에 위치해 있다. 방치되어 있던 이 돈대는 1999년 육군박물관의 조사를 거쳐 2000년 복원되었다. 발굴 조사를 할 때 아래쪽 1~2단의 기단석이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좌강돈대와 용당돈대
좌강돈대는 둥근 모양으로 둘레가 101m에 달한다. 2000년도에 용진진의 문루(참경루)와 함께 복원할 때 성벽과 4개의 포좌, 돈대 안에 고인 빗물을 빼내는 '누조' 등은 되살렸다. 그러나 성벽 위의 낮은 담장인 '여장'을 복원하지 않아 돈대 본래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 숙종 5년(1679)에 축조된 '용당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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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당돈대 안의 건물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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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강돈대가 있는 용진진에서 남쪽으로 1400미터 거리에 용당돈대가 있다. 용당돈대는 바닷가 돌출된 곶의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어 바다가 한눈에 다 내려다 보인다. 숙종 5년인 1679년에 축조된 이 돈대는 오래 방치되어서 기단석 일부만 남아 있었다.
1999년 육군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할 때 아래쪽 2~3단의 기단 석축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했다. 또 4문의 포좌와 1개의 출입문 등이 있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특이하게도 용당돈대 안에는 가로 20자, 세로 10자 남짓 규모의 건물 터도 남아 있다. 돈대에는 6명 내외의 군사가 상주하였으며 보유한 병장기들도 있었다. 따라서 그 건물은 병사들(6명)의 숙소와 무기를 넣어두는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 '좌강돈대'에서 바라본 강화와 김포 사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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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당돈대'에서 바라본 강화와 김포 사이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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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모문룡의 군대가 압록강 인근에 주둔했던 그때를 그려본다. 그들은 조선에 군량을 강요하여 식량을 징발하였다. 이 식량이 매년 10만석에 달했다. 흉년으로 조선 측의 식량 지원이 여의치 않자 황해도와 평안도에 상륙하여 약탈을 벌이기도 했다.
모문룡의 군대는 조선에게는 '계륵'과도 같았다. 그들에게 매달 쌀 1만석을 지원했으니, 말이 좋아 지원이지 강탈당한 것이나 매한가지일 듯하다. 명나라를 등에 업은 그들의 요구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응해야만 했을 약소국 조선의 설움이 느껴진다.
지금도 그와 비슷한 일을 우리나라는 감당하고 있다. 지난해 2024년 10월한국과 미국 정부가 2026~2030년 적용할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타결했다. 한국이 2026년 부담할 주한미군 방위비는 전년 대비 8.3% 늘어난 1조5192억원이다. 그 뒤로는 매년 소비자물가지수 증가율에 연동해 늘어난다.
정부는 "한·미가 상호 수용가능한 합리적 결과를 도출했다"고 자평했지만 우리나라 재정에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400년 전 평안도 가도에 주둔했던 모문룡의 군대와 그들에게 보낸 지원금이 연상되는 뉴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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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참경루에 담긴 청나라를 치겠다는 옹골찬 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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