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재난의 해법, 기술보다 철학이다

산불·가뭄·폭염·홍수… 재난의 순환을 끊을 '모두에 의한 빗물관리'

등록 2025.07.21 10:23수정 2025.07.2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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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오전 울산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태화강 주변 주차장과 산책로 등이 물에 잠겼다. 2025.7.19
19일 오전 울산에 많은 비가 내리면서 태화강 주변 주차장과 산책로 등이 물에 잠겼다. 2025.7.19 울산소방본부 제공

"또 침수입니다."

전국이 비에 잠겼습니다. 도로는 강이 되고, 지하차도는 덫이 되며, 저지대 주택은 흙탕물 속에 잠깁니다. 뉴스 속 장면은 매년, 거의 같은 장면입니다. 기상청은 비를 예보하고, 정부는 재난문자를 보내며, 지자체는 하수받이를 청소합니다.

그리고 침수.
그리고 복구.
그리고 망각.

지역에서는 정부와 의원들이 나서 재난지역 선포와 복구예산 확보에 열을 올립니다. 피해 복구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다음 재난을 막기 위한 철학과 예방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수재의연금도 '착한 일'일 수는 있겠지만, 재발 방지와는 거리가 멉니다. 왜 이렇게 반복될까요? 기술이 부족해서 일까요? 아닙니다. 기후재난의 순서를 이해하고, 그 흐름을 끊을 철학이 없기 때문입니다.

재난은 순서대로 온다… 그런데 우리는 따로따로 막는다

올해도 그랬습니다. 산불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가뭄이 왔습니다. 땅이 마르자 폭염으로 이어졌고, 그 끝에는 홍수가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재난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순환 재해입니다. 메마른 산은 불쏘시개가 되고, 가뭄은 땅을 쩍쩍 갈라 놓고, 폭염은 증발량을 높이며 지표를 바싹 말립니다. 그리고 그 끝에 쏟아지는 물벼락은, 더 이상 흙과 물을 가릴 틈 없이 모두를 덮칩니다.

우리는 이 재난을 각각의 이름으로 부르며 산불대책반, 가뭄대책반, 폭염대책반, 홍수대책반을 만듭니다. 하지만 결국 같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임시방편을 반복합니다. 예산은 매년 늘어가는데, 피해는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이 자체가 지금의 방식이 틀렸다는 증거입니다.


기술은 경고하지만, 철학은 방향을 바꾼다

AI, 위성, 드론 등 첨단기술은 위험을 감지하고, 대피를 돕고, 정보를 빠르게 전달합니다. 하지만 정작 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막는 일, 즉 예방에는 거의 관심이 없습니다. 기술은 '예보'하지만, 예방은 '철학'에서 나옵니다. 지금 우리는 재난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되풀이되는 피해에 무감각하게 적응하며, 결국은 기술로만 감시하고 복구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방향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재난을 극복하는 기술보다, 재난을 예방하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산불이 나면, 우리는 빗물을 기다립니다. 폭염이 심하면, 소나기 한 줄기에 기온이 뚝 떨어집니다.
가뭄이 닥치면, 사람들은 말합니다. "작년에 비가 너무 안 왔다"고. 그리고 지금, 바닥 드러났던 저수지가 빗물로 채워지자 "이제 좀 안심"이라는 말도 들립니다. 그런데 비가 내릴 때 우리는 무엇을 하나요? 그 빗물을 모두 버리고 있습니다. 빗물이 홍수의 원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모든 재난의 해결책이 바로 빗물 안에 있습니다.

왜 하필 '빗물'인가?

빗물은 어디에나 떨어집니다. 산, 논, 밭, 건물, 골목, 도로…지위도 소유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하늘의 물'입니다. 반면 하천은, 상류에 떨어진 물만 흘러내려옵니다. 그 전에, 우리 각자가 그 물을 잠시 붙잡을 수 있다면 모든 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붕, 정원, 논두렁, 산비탈, 도로 옆 작은 공간에 고이는 물. 그 물들이 모여 홍수를 줄이고, 산을 촉촉하게 만들며, 지하수를 채우고, 폭염을 식힙니다. 그 시작이 바로 빗물입니다.

조상들은 이 원리를 알았습니다. '물챙이'란 자기 앞을 흐르는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나뭇가지나 돌로 둑을 쌓아 조금이라도 머물게 했던 지혜입니다. 그 물은 자신의 농사에 쓰였고, 하류에는 갑작스러운 물폭탄을 막는 완충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모든 걸 국가와 제도에 맡깁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시 각자가 자기 물을 챙겨야 할 때입니다. 다시 '모두에 의한 물관리'가 필요합니다.

모두를 위한 물 관리, 모두가 이득을 본다

이런 물 관리는 누군가의 부담이 아니라, 모두의 이익입니다. 하류 사람들은 침수 피해가 줄고, 세금도 절약됩니다. 상류 사람들은 '가해자'란 오명을 벗고 인센티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자연과 동물들은 마실 물이 생겨 민가로 내려오지 않습니다. 지하수가 채워지고, 기후 회복력은 높아집니다. 우리 아이들은 촉촉한 땅을 유산으로 물려받게 됩니다. 모두를 위한 물 관리, 그것은 곧 모두의 물순환 회복입니다.

1441년, 세종대왕은 수령에게 빗물을 직접 측정하라고 명합니다(관련기사: 세종은 '수령이 친히 비를 재라'고 했다 https://omn.kr/2e7t4). 측우기를 만들어 설치하고, 보고하지 않으면 문책까지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과학이 아니라, 지도자가 물을 다루는 철학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국가가 물을 책임지고, 백성이 그 가치를 알도록 한 것. 600여 년 전 조선은 그렇게 빗물의 종주국이 되었습니다.

법과 제도부터 바꾸자: '모두에 의한 물 관리'로

지금의 하수도법은 빗물을 빠르게 버리라고 명시합니다. 그러나 기후위기의 시대, 이제는 그 빗물을 모으는 법으로 바꿔야 합니다. 국회는 다음과 같은 제도 개편에 나서야 합니다:

▲ 빗물이용시설 설치 의무화
▲ 빗물 유출부담금 제도 도입
▲ '산 촉촉 운동' 등 지역 참여형 빗물공동체 확산
▲ 빗물관리에 대한 시민 교육과정 신설
▲ 하수도법 개정: 빗물을 '오염원'이 아닌 '공공자원'으로 명시

이것이 진정한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물 관리의 출발점입니다.

세종의 철학은 과거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 정신을 이어받아 지금 유엔에 '세계 비의 날(UN Rain Day)'을 제안하고 있습니다(관련기사: 알고 있나요? 제헌절 노래가 '비'로 시작된다는 사실 https://omn.kr/2ekfw). 또한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모든 물의 관리'(MoMoMo 물 관리)를 전 지구적 철학으로 제안했습니다.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선 한국, 이제는 경험과 지혜로 세계에 해법을 제시할 때입니다.

👉 같은 내용을 카드뉴스로도 볼 수 있습니다: https://link24.kr/7QMTIYf
덧붙이는 글 홍수 피해를 겪고 계신 모든 분들께 깊은 위로를 드립니다.
하지만 이 고통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학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술보다 방향, 복구보다 예방.
그 시작은 언제나 빗물입니다.

그리고 그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특히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이제는 따로따로 식의 전문가보다,
전체를 보는 상식을 가진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때입니다.
#기후재난 #빗물관리 #세종대왕 #세계비의날 #물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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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빗물박사.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 빗물의 중요성을 알리고, 다목적 분산형 빗물관리를 통하여 기후위기를 극복할수 있다는 것을 학문적, 실증적으로 국내외에 전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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