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빨갱이구먼" 동료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정영자의 과거사 진실규명 운동

등록 2025.07.21 13:17수정 2025.07.21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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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으로 3년 넘게 서울에 있는 동안 막둥이가 연애로 임신을 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려와서 상견례를 하고 번개불에 콩 구워먹듯 결혼식도 올려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서울로 통원치료를 받으러 다니면서 집에 와서도 2~3년을 쉬고 있으려니 몸과 마음이 답답했다.

그러던 중 이웃 아줌마들이 시니어에라도 가면 일자리가 있다는 말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찾아간 곳이 시니어가 아닌 생전 처음 알게 된 복지관이라는 곳이었다.

직원이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해서 시니어로 알고 잘못 찾아왔다고 하니, 여기서도 일자리를 준다고 했다. 한 우물만 파고 주방일만 하다가 말만 듣던 복지관을 와보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아버지가 빨갱이구먼!"

그때 마침 복지관에서 학생들 안 입는 교복을 수거해다가 고치고 빨고 다려서 70% 싸게 파는 일을 3년간 하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된 동료 한 분이 발이 넓어 보이고 아는 것도 많아서 나는 마당발 여사님이라고 호칭을 붙여 불렀다.

이분은 사감 선생님 같은 성격이어서 누구든 조금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교통질서를 잘 잡아주는 동료이다. 특히 나를 많이 챙겨주고 바른말도 잘하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여러 명이 모여 일을 하다 보니 자연히 서로 자기 자랑, 자식 자랑, 부자로 자란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도 그때까지 말 못 하고 참아온 전쟁 당시 아버지 죽음과 피난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내 이야기를 듣던 한 동료가 하는 말이 "그럼 아버지가 빨갱이었구먼" 했다.

나는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마당발 호칭을 가진 동료 희선씨가 나섰다. "지금 달나라를 오가는 세월에 무슨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냐!"며 "내가 아는 분이 언니 같은 사람들 진상규명 해주는 분이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말에 귀가 번쩍 뛰어 그 사람 좀 만나게 해달라고 했더니 희선씨는 곧바로 통화해서 나를 그분과 만나게 해준 분이 바로 지금 충북역사문화연대 박만순 대표님이셨다.

나를 만난 대표님은 내 말을 듣고 이해가 안 간다며 내가 살던 곳에 가서 어르신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대표님은 일주일 후 복지관 앞에서 나를 만나 차에 태우고 내가 6살 때 떠나온 고향길을 물어물어 찾아갔다. 70년 만의 일이었다.

초가지붕에서 함석지붕으로

그날따라 억수같이 쏟아지는 소낙비를 뚫고 개명된 마을을 물어물어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내가 알던 가나문 중뜰이 아니라 문경 갈평 증평리였다.

마을에 당도하니 내가 생각했던 집 뒤에 논과 텃밭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이 좀 변하기는 했지만 워낙 오지 산골이어서인지 아직도 옛날 모습이 많이 남아있었다. 변한 것은 초가지붕이 함석지붕으로 바뀌고 돌다리가 시멘트 다리로 바뀐 것 뿐이었다.

마을 어귀 옛날 공회당 마당가에 서 있던 나무가 추자나무였는지 몰랐었는데, 아름드리로 커서 썩어 내린 옆구리에서 다시 세 가지가 자라서 추자가 많이 열려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도착한 낮 선 마을 길을 돌아보니, 옛날 우리 집 같은 텃밭 뒤에 논을 기준으로 옛날이나 지금이나 대문도 삽짝도 없는 마당에 들어섰다. 그 자리에서 생각을 해보니 분명 내가 먹고 비우던 잿간도 아직 송판 문 그대로였다.

한참을 돌아보며 기억하고 살펴보니 옛날집을 뜨락 아래로 앞을 막아서 현관문을 달은 것 같았다. 그래서 조용한 집 현관문을 두드리니, 들어오라는 할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르는 사람이 어찌 내 집에 왔냐?"며 몸을 다쳐서 마음대로 못 움직인다며 할머니는 휠체어에 앉아계셨다.

"아지매가 영자가?"

그래서 나는 어릴 때 이 마을에 살다 전쟁으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할머니랑 이사 간 이야기를 했다. "그럼 아지매가 영자가" 하시며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계셨다. 나는 천만금을 얻은 기분이었
고, 할머니는 외할머니 엄마 안부를 묻고 서로 눈시울을 적셨다.

그렇게 나는 박만순 대표님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다. 할머니는 "마을 일은 남자가 더 잘 안다"며 최고령 할아버지 한 분도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해서 두 분에게 몰랐던 지난날 이야기를 들었다. 더군다나 박인순 할머니와 주용회 할아버지는 인우보증인까지 서 주셨다.

텃밭 일 인우보증 서 준 할아버지 텃밭 일을 돕는 정영자
▲텃밭 일 인우보증 서 준 할아버지 텃밭 일을 돕는 정영자 정영자

이래서 고향이 좋다고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오랜 세월에도 아직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시는 할머님이 계시었으니 나는 정말 복 받은 한 사람으로 친정 부모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 이후 동생을 데리고 찾아와서 밭일도 도와드리고 옛날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며 고구마, 땅콩, 산나물도 챙겨주셔서 친정 왔다 가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박만순 대표님과 함께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과 세워진 위령비를 찾아갔다. 위령비를 둘러보고 마을 회관으로 출타한 위원장(유족회장)을 찾아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발이 부르트도록 고향길을 찾았다. 그런 노력으로 위령비에 아버지 이름을 올렸다. 7년 만에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기도 했다. 이제 보상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매년 위령제에도 참석했다.

할머님은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못 찾아뵌 것이 가슴에 얹혔다. 할아버지 첫 제사 때 가서 자제분들과도 좋은 인연을 맺고 매년 갈 때마다 들려서 혼자 계신 할머님께 인사를 나누고 온다.

전쟁없는 세상

위령제 문경시 갈평리 사건 합동위령제
▲위령제 문경시 갈평리 사건 합동위령제 정영자

청주에서도 매년 충북유족회가 위령제를 지낸다. 살풀이로 상처를 보듬어주시는 이 행사에도 매년 참석한다. 올해는 박만순 대표님의 <기억전쟁>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그곳에서 전쟁 당시 참혹하게 학살되고 땅속에 묻혀계신 영령님들의 유골발굴 작업 사진을 보면서 마음에 전율이 들었다. 반면 살아있는 나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를 잠에서 깨워준 '교육 도시의 꿈, 청주', 나의 꿈을 이루어준 지인과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하루속히 역사의 정의가 밝혀지길 바란다.

#빨갱이 #과거사진실규명운동 #위령제 #진실규명 #인우보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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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도에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전 아버지가 빨치산을 도왔다는 혐의로 대한민국 군경에게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 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애기업개, 식모살이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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