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일 인우보증 서 준 할아버지 텃밭 일을 돕는 정영자
정영자
이래서 고향이 좋다고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오랜 세월에도 아직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시는 할머님이 계시었으니 나는 정말 복 받은 한 사람으로 친정 부모님을 만난 기분이었다.
그 이후 동생을 데리고 찾아와서 밭일도 도와드리고 옛날 살아온 이야기도 나누며 고구마, 땅콩, 산나물도 챙겨주셔서 친정 왔다 가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박만순 대표님과 함께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규명 결과 세워진 위령비를 찾아갔다. 위령비를 둘러보고 마을 회관으로 출타한 위원장(유족회장)을 찾아가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후 나는 동생을 데리고 발이 부르트도록 고향길을 찾았다. 그런 노력으로 위령비에 아버지 이름을 올렸다. 7년 만에 진실화해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기도 했다. 이제 보상문제만 남았다.
그리고 매년 위령제에도 참석했다.
할머님은 모두 하늘나라로 가셨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서 못 찾아뵌 것이 가슴에 얹혔다. 할아버지 첫 제사 때 가서 자제분들과도 좋은 인연을 맺고 매년 갈 때마다 들려서 혼자 계신 할머님께 인사를 나누고 온다.
전쟁없는 세상

▲위령제 문경시 갈평리 사건 합동위령제
정영자
청주에서도 매년 충북유족회가 위령제를 지낸다. 살풀이로 상처를 보듬어주시는 이 행사에도 매년 참석한다. 올해는 박만순 대표님의 <기억전쟁>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했다.
그곳에서 전쟁 당시 참혹하게 학살되고 땅속에 묻혀계신 영령님들의 유골발굴 작업 사진을 보면서 마음에 전율이 들었다. 반면 살아있는 나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지를 생각해보았다. 나를 잠에서 깨워준 '교육 도시의 꿈, 청주', 나의 꿈을 이루어준 지인과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님께 감사드린다. 또한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피해자와 유가족들의 상처에 공감하고 하루속히 역사의 정의가 밝혀지길 바란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1944년도에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한국전쟁 전 아버지가 빨치산을 도왔다는 혐의로 대한민국 군경에게 불법적인 죽임을 당했다. 초등학교를 3학년까지 다니고 애기업개, 식모살이를 했다.
공유하기
"아버지가 빨갱이구먼" 동료 때문에 말문이 막혔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