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 1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마친 전국레미콘운송노조 노동자가 뜨거운 햇볕 아래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정민
폭염은 이제 '자연 현상'이 아니라 '산업 재해'의 원인이다. 장시간 야외 작업을 하는 건설 노동자, 농축산업 종사자, 택배 기사, 이주노동자들은 폭염에 가장 취약하다.
열사병이나 탈진은 한순간의 방심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 지난해 10월, 산업안전보건법 제39조에 '폭염으로 인한 건강장해' 조항이 신설된 것도 이 때문이다. 오는 6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조항은 사업주가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를 예방할 법적 의무를 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이번에 통과된 안전보건규칙 개정안은 이러한 법의 정신을 실질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다. 개정안은 폭염을 '열경련, 열탈진, 열사병 등 건강장해를 유발할 수 있는 더운 기상현상'으로 정의하고, 체감온도 31도 이상 작업장을 '폭염작업'으로 분류했다. 그리고 폭염작업 시 사업주가 반드시 해야 할 3가지 의무를 규정했다.
① 냉방이나 통풍 등 적절한 온·습도 조절 장치를 설치·가동할 것
② 작업 시간대를 조정해 폭염 노출을 줄일 것
③ 적절한 휴식 시간을 부여할 것.
특히 체감온도 33도 이상일 때는 2시간마다 20분 이상의 휴식을 의무화했다. 이를 위반해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업주는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이제는 실행이 중요하다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폭염 속에서 제대로 된 냉방장치나 그늘막 없이 일하는 현장은 여전히 많다. 특히 이주노동자나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런 규정이 있음에도 '작업을 멈추면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 목숨을 걸고 일한다. 법의 존재만큼이나 중요한 건, 그 법이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지켜지도록 감독하고 지원하는 일이다.
유럽이나 일본처럼 폭염 경보 발령 시 강제적으로 작업을 중단시키는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사업주가 안전장비나 냉방시설 설치 비용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과 가이드라인이 뒷받침돼야 한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은 앞으로 더 잦아지고 강해질 것이다. 그럴수록 노동자들의 생명권은 더욱 위협받는다. 이번 개정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지키기 위한 '늦었지만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한 걸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현장 목소리를 반영하고, 기후위기에 맞는 종합적인 산업안전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쓰러진 젊은 이주노동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번 규칙 개정이 현장에서 살아있는 제도가 돼야 한다. 더 이상 '더위 때문에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이 들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정부와 기업, 사회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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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 속 노동자 사망, 뒤늦게 통과된 안전보건규칙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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