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양자유학교 들살이, 해변을 달리는 우정의 기차
고양자유학교
몇 주 전 아이는 바닷가 캠핑장으로 일주일간 '들살이'를 다녀왔다. 들살이란 부모 없이 교사, 친구들과 함께하는 캠핑의 형식인데, 자연 속에서의 생활·공동체 교육이라고 하면 맞는 표현일까. 아이끼리 텐트를 치고 취사와 조리, 설거지를 하고, 자신의 빨래는 직접 하는 등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한다.
요리 대결 같은 조별 활동을 통해 협력을, 각자 주어진 역할 속에서 책임감을 배운다. 공동체 구성원, 언젠가는 자립해야 할 한 사람으로서 필요한 경험을 들살이에서 채우고 돌아왔다. 부모 도움 없이 일주일간 모든 일을 자력으로 수행한 아이는, 집에 돌아와 무척 힘들었다며, 한 가지 깨달음을 내게 말해주었다.
"아빠, 이제 빨래를 뒤집어 벗지 않을 거야. 내가 빨래를 직접 해보니까 너무너무 힘들더라."
그리고 오늘. 평소라면 분리수거장에 가자는 말에 "싫어"하며 못 본 척하던 아이였다. 오늘도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했는데, 현관으로 달려 나와 짐을 가득 든 내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밖에 모기 많아!" 그러고는 달려가서 모기 기피제 스프레이를 갖고 와 팔다리에 듬뿍 뿌려주었다. 처음 있는 상황이어서 무척 놀랍고 신기했다.
자기중심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순간으로 읽혔다. 학교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수많은 배려와 존중들이 아이 안에서 자라나, 순간적으로 행동으로 튀어나온 듯했다. 나는 눈을 꼭 감고 숨을 참으며 스프레이 세례를 맞았다. 칙칙 소리가 너무 듣기 좋고 사랑스러웠다.
고양자유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겨우 반년, 앞으로 어떤 경험을 더 하게 될지 궁금하다.
[아내와 아들의 편입 소감] 유튜브와 욕이 없는 학교, 오길 잘했네
그동안 우리 가족들은 어떤 것을 느꼈을까. 아내와 아이에게 물었다.
"자 여러분들! 이 학교에 와서 가장 좋은 점이 뭐야?"
아내는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유튜브 가지고 실랑이할 일이 없어졌잖아. 그거 하나만으로도 정말 대만족이야!"
나도 동의한다. 그건 우리 가족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다. 이 학교는 스마트폰과 유튜브 등 미디어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점차 자율성이 생김). 우리는 미디어 사용이 일상생활과 가족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직접 체감했다. 틈만 보이면 일상생활의 우선순위가 뒷전이 되고, 잠자리 전 유튜브 끄기를 둘러싼 실랑이가 이어지고, 시청을 중단했을 때의 삐져나오는 짜증 등. 가족 간 다정한 대화 대신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적게 보는 거야"라는 아이의 항변에 수많은 대화를 주고받으며 지쳐갔다.
저녁까지 여러 학원에 다니던 아이의 동선 파악을 목적으로 스마트폰을 마련해줬던 것이 화근이었다. 아이가 미디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니, 친구들과 함께 유튜브와 모바일 게임에 급속도로 빠져들었다. 친구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또래 문화였기에 이를 전면적으로 막기란 더욱 어려웠다. 방학이면 더욱 통제력을 잃어갔다.
방류를 시작한 물을 다시 끌어 올려 담는 것만큼, 미디어 사용 교육이 버겁게 느껴지기 시작하던 차, 고양자유학교의 '미디어 제한' 원칙은 우리 가족에게 찾아온 기회였다. 반 친구들 모두가 그 규칙을 집에서도 이어간다고 하니, 아이도 억울해하지 않고 생각보다 순순히 받아들였다. '학교'라는 제3의 권위(?)가 미디어 사용의 기준을 제시해 준 덕분에, 큰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일상이 정돈된 것이다.

▲ 입학 전 학교살이(학교에서 자는 날)를 구경 갔다가 금세 친해졌던 날. 서로를 배려하며 귤과 떡을 구워먹는 아이들이 무척 귀여웠다.
살구
아내는 덧붙여 말했다.
"예전엔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와도 제대로 놀지 못했어. 모여도 10분도 안 되어서 '심심해요'만 반복했거든. 그 말은 결국 '게임이나 영상 틀어주세요'라는 뜻이었지. 화면이 없으면 뭘 해도 금방 지루해했어. 그런데 지금은 다르잖아. 학교 친구들끼리 몇 시간씩 붙어 있어도 정말 잘 놀아. 어른을 찾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아. 얼마 전엔 방과 후 우리 집에 모였던 아이들이, '숙제 먼저 하고 놀자'며 리코더를 꺼내 화음도 넣으며 합주 연습을 하는데, 너무 예뻐서 진짜 절로 미소가 지어지더라."
편입 당사자인 아이가 이어서 말했다.
"그리고 이 학교에는 욕하는 애들이 없어서 좋아."
아이 말대로 이곳 언어의 공기는 달랐다. 이전에는 SNS 밈이나 유행을 좇아가다 거친 표현에 노출되어, 뜻도 모르고 모방하는 아이들을 종종 보았다. 실은 우리 아이도 예외는 아니었기에 우려했었다. 그런데 이 학교에 와서는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아이들이 아름답고 고운 말로 지어진 시와 노래를 배우며, 서로에 대한 공감과 배려를 수업 안팎으로 배우는 분위기가 큰 영향을 주는 듯했다.
내가 이 학교를 선택한 게 잘한 일일까, 가끔 자문하곤 했다. 눈에 보이는 아이의 변화와 성장이 그 답이 되었다. 아내와 아들의 짧은 소감을 듣고선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 오길 잘했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의 행복을 위해 더 나은 길을 고민하는 가족들이 있을 것이다. 완벽한 학교도, 완벽한 선택도 없지만, 아이가 존중받으며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을 찾고자 애쓰는 이들에게 우리의 이야기가 참고가 되면 좋겠다. 단 한 번뿐인 어린 시절, 그 소중한 시간을 지켜내려 애쓰는 모든 부모를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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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출근』 저자.
아이가 행복하게 자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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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달 만에 집 팔고 학교 근처로 이사... 11살 아들에게 찾아온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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