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표지
사회평론주니어
"죽었다가 살아난 귀신, 죽살귀신."
정설아 작가의 <이루의 세상>(2025년 7월 출간)은 아버지를 잃은 열세 살 소년 이루가 어느 날 갑자기 현실에 다시 나타난 아버지를 마주하게 되면서 자신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상실과 슬픔이라는 감정을 하나씩 꺼내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마음 속 어둠과 마주하며 죽음과 이별이라는 감정적 굴곡을 통해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이다. 판타지와 현실, 상실과 성장, 침묵과 표현이라는 상반된 개념들이 긴밀하게 얽혀 있다.
이루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세상의 중심이 송두리째 흔들렸음에도, 주변 사람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 속에서 이루 역시 그들과 보조를 맞추듯 아무렇지 않은 척, 덤덤한 척, 아무 말 없이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살아간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조용히 흘려보내던 이루의 삶에, 죽은 줄만 알았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살아 생전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파트 앞에 나타난다. 이루는 놀라고 혼란스러우면서도, 그 순간이 어딘가 당연했던 것처럼 받아들이는 스스로에게 당황한다. 이 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이 감정이 과연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아버지의 출현을 계기로 감정의 저편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다.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죽살귀신'이라고 스스로를 부르는 아버지는 이승에 머물 수 없으니, 저 바다 깊은 곳에 있다는 '죽음의 문'까지 데려다 달라고 이루에게 부탁한다. 이루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끌림과 서운함과 책임감 사이 어딘가에서 그 부탁을 수락하며 아버지와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이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나 이별이 아니라, 이루가 억눌러 온 감정을 천천히, 조금씩 꺼내어 마주하고, 비로소 말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여정이다.
특히 이루가 꾼 악몽 속에서 등장하는 핏빛 비, 아버지를 닮은 물고기, 말을 잃은 나무가 된 자신 등은 단순히 판타지 요소가 아니라, 이루가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의 파편들이 형상화된 것으로 보인다. 감정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제때 말하지 못하면 다른 방식으로라도 반드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런 상징적 장치들을 통해 독자들에게 '슬픔을 감추는 것이 곧 극복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달한다. 이루는 자신의 슬픔을 말로 꺼내 본 적이 없었고, 꺼내는 것이 곧 다른 가족을 아프게 하는 일일까 봐 침묵을 선택했다. 자신조차도 슬프지 않다고 믿으려 했지만, 여행을 거듭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마음 속에 쌓인 말들이 결국은 터져 나온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비로소 자신도, 가족도, 세상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함을 깨닫게 된다.
결국 이루는 아버지를 바다에 데려다 주고 나서야 제대로 인사하지 못했던 자신을 용서하고,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보내주는 법을 배운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그 상실을 품은 채 살아가는 법을 스스로 익혀 나가는 것이다. 그 순간 이루 앞에 펼쳐진 세상은 더 이상 어둡고 무섭기만 한 세상이 아니라 깊고 푸른 바다처럼 따뜻하고 평온한 공간으로 변화한다. 이는 슬픔을 마주할 때 비로소 보이는 새로운 세계, 즉 감정을 표현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열리는 '두 번째 삶'의 공간을 은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루의 세상>은 죽음이라는 어쩌면 아이들이 접하기엔 너무 큰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를 무겁거나 지나치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한 아이가 겪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변화와 성장을 온전히 아이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러한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청소년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 서사와 문학적 은유는 어른 독자에게도 깊은 감정의 반향을 일으킨다.
이 책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국 단순하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슬픔이든 분노든 혼란이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어 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루의 세상>은 아빠를 잃은 이루의 이야기이자, 세상 모든 이루들, 슬픔을 감추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위로의 이야기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막 감정이라는 언어를 배우는 이들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응원이라 할 수 있다.
이루의 세상 - 제1회 사회평론 어린이·청소년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
정설아 (지은이), 오승민 (그림),
사회평론주니어,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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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살 소년의 '감정 찾기' 여정, 어른도 뭉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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