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독서실이 되는 차안 차 안은 독서에 집중하기 좋은 공간이다.
송유정
무엇을 하건 나를 위해 하는 시간, 무엇을 안 해도 아무렇지 않은 공간, 방해도 없고 눈치도 안 보고 의무도 없고 책임도 없는 곳. 완전한 자유를 위해 자발적 고립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들어갈 집이 없거나 심각한 가정불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는 집 역시 사회생활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눈 닿는 곳에 온갖 집안일이 포진해 있다. 가족들이 재활용품 분리배출이나 설거지 등을 도와준다고 해도 가사의 대부분은 내 몫이다.
일단 집에 들어서는 순간 내 눈에 보이는 건 모두 일감이다. 독서를 해볼까 싶어 책을 펼치면 세탁 종료음이 흐름을 끊는다. 그러니 온전히 쉬거나 취미생활에 몰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집을 또 다른 사회생활로 느끼게 하는 것은 집안일뿐만이 아니다. 가족들의 면면을 살피고 챙기는 일, 함께 있을 때 대화의 적절한 주제와 타이밍을 포착하는 일 등 상대의 기분을 파악하고 가정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조성하는 것도 나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밖에서와는 다른 결의 사회생활과 인간관계가 가정에서도 펼쳐지는 것이다.
이렇듯 공간이 주는 책임과 역할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다. 집에 들어서기 전에 잠시 숨을 고를 틈이 필요한 이유다.
점점 침범 당하는 공간... 다른 대안 없을까
차 안은 두 사회생활 사이에서 나를 보호해 주는 완충지대이자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경계 공간이며 완벽한 휴식을 보장하는 쉼터이다. 공간이 주는 역할의 무게가 없어지는 진공상태이며 어떤 중압감에서도 자유로워질 수 있는 비무장지대가 된다.
물론 인적 드문 주차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두려움 때문에 멈칫할 때도 있다. 갑자기 누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어쩌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으려고 택한 이곳에서 어떤 이의 관심도 받지 못한 채 범죄에 노출이 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주차장에 도착해 시동을 끄고 나면 자동으로 열려버리는 문을, 신경 써서 잠근다. 심리적인 안정감은 물리적인 안전함이 보장되어야 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가끔 나처럼 주차장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들을 마주치곤 한다. 시동을 끈 지 한참 됐는데도 좀처럼 차에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차에서 음악 감상하는 걸 너무 좋아해서 성능 좋은 오디오를 따로 설치하고는 차를 제 집처럼 드나든다는 아랫집 남편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좋아하는 것에 파묻힐 공간과 시간의 갈급함이 내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앤서니 스토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고독할 줄 모르는 데서 온다"고 했다. 자발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택하는 사람은 자신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가꿀 줄 알고 삶의 진정한 행복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서 찾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차 안에서 보내는 나만의 시간이 더없이 귀하고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내 차가 가족 공유 자동차가 되는 날이 많아지면서, 서서히 다른 장소를 물색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를 몇 대씩 장만할 여유는 없으니 말이다. 집앞 카페는 어떨까? 주변 사람들을 자꾸 의식하게 된다. 아파트 계단? 이건 진짜 청승이다. 자발적 고립이 가능한 장소를 갖는 것도 가진 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가 아닐까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렸다. 한낮의 해는 뜨겁고, 버스정류장은 한적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여남은 사람들 모두 자기 휴대폰만 들여다보느라 나에게는 관심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도 나에게 어떤 책임과 의무를 짊어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고립의 장소로는 부족해 보였다. 어디 마땅한 장소가 없을까.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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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꺼진 차에서 나 혼자...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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