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시간 남편이 아이에게 인라인스케이트를 가르쳐주고 있다
이혜란
혼자 여행을 가기도 했던 남편은 이제 가족 여행 외에는 여행을 떠나지 않는다. 혼자 떠난 여행도 좋았지만,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이 더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한 국내 여행은 물론 해외여행까지 아이가 아직 어려서 힘들었던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니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되었다. 남편과 나 둘만 떠났던 홀가분하고 편했던 여행과는 사뭇 다른 풍경들이었지만 분명 다른 행복감을 느끼게 해준 것만은 확실하다.
전시나 공연장에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시작한 것은 나의 방식이다.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갖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채워주고 싶은 나의 바람에 아이는 나를 따라 전국의 어린이 미술관을 다녔다. 여전히 아이와 함께하는 전시나 공연 관람은 힘이 든다. 그럼에도 내가 줄 수 있는 경험의 기억을 위해 나는 함께라는 시간을 반드시 끼워 넣는다. 최근에는 거금을 들여 가족 셋이 함께 볼 위키드 뮤지컬 내한 공연 R석을 예매했다.
적당한 거리에서 걷는 조용한 동행
얼마 전 결혼 20년 차 부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즈음이 되면 서로 정치 토론을 하면서도 싸우지 않는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결혼 10년 차인 우리 부부가 앞으로 10년을 더 살아내면 우리도 20년 차 부부가 된다. 10살인 아이가 성인이 되는 그날이 되면 우리 부부의 모습은 어떨까? 다시 처음처럼 각자의 섬으로 돌아가 있을까.
타고난 기질을 생각하면 다정하고 애틋한 부부는 아니겠지만, 나는 바란다. 아이가 독립하고 난 후 삶의 여백 속에서도 각자가 자신만의 삶을 여전히 꾸려가고 있기를. 취미를 함께하진 않아도 서로의 열정을 가만히 들어줄 수 있는 거리, 그만큼의 존중이 유지되기를.
최근에 나는 달리기에 빠져 격일로 트레이드밀에서 3km를 달린다. 야외에선 두 배를 뛴다. 10km 마라톤 대회에도 두 번 나갔다. 언젠가는 한 시간 안에 완주해 보겠다는 꿈도 생겼다. 신기하게도, 이건 10년간 달리기를 해온 남편이 한 번도 권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느새 길 위를 달리고 있다. 최근에는 남편이 알려준 정보로 늦지 않게 뮤지컬 위키드를 예매할 수 있었다. 실시간 정보에 약한 나를 대신해, 그는 종종 내게 전시나 공연 소식을 전해준다. 내가 좋아할 것들을 알기에 가능한 일이다.
결국, 결혼이란 누군가를 오래 지켜보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같은 곳을 향하지 않아도, 각자의 속도로 걷더라도,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일. 그 거리 안에서 우리는 더 오래, 더 깊이 서로를 알아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봐주는 일, 그게 결혼.
priscilladupreez on Unsplash
'내향인으로 살아남기'는 40대 내향인 도시 남녀가 쓰는 사는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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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더 천진난만한 어른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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