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만대장경 장경판전(국보1995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내부 모습, 주변 조형물에서 촬영
문운주
다음으로 향한 곳은 장경판전이다. 처음엔 그냥 오래된 건물 하나쯤으로 여길 뻔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분위기가 달라졌다. 바람이 스치는 틈새, 나무로 된 기둥과 벽, 그리고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세월이 느껴졌다. 이곳은 단순한 서고가 아니라, 신앙과 과학, 장인의 손길이 모두 깃든 공간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 고려의 승려들과 백성들은 칼이 아니라 경전으로 나라를 지키고자 했다. 고종 23년, 1236년에 시작된 대장경 조판 사업은 무려 16년이라는 세월 끝에 완성되었다. 그 결과물은 총 8만1258매, 약 5200만 자에 달했다.
숫자로는 쉽게 와닿지 않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성과 믿음, 간절함은 판면마다 조용히 전해지는 듯했다. 한 자 한 자 새기며 나라의 안녕을 기원한 마음, 그것이 곧 고려가 선택한 저항이었다.
이 경판은 원래 남해에서 판각해 강화도에 보관했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인해 조선 태조 7년, 지금의 해인사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 여정 또한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이 경판들이 8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뒤틀림 하나 없이 잘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장경판전은 자연의 흐름을 그대로 활용한 구조물이다. 기계 장치 하나 없이 바람과 습도를 조절한다는 점에서,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깊었는지 새삼 놀라움이 앞선다.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은 단지 오래된 경전이 아니다. 종교와 철학, 기술과 역사, 그리고 사람들의 간절한 염원이 하나로 깃든 살아 있는 유산이다.
고요한 산길 끝 스님과 백련암을 찾다

▲백련암 가야산 암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해 조용하고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주변을 둘러싼 노송과 기암들은 마치 자연이 만든 병풍처럼 장엄하다.성철스님이 마지막까지 머문 곳.
문운주

▲백련암 불면암 바위
문운주
해인사 경내를 둘러본 뒤, 암자 순례길 3 구역인 국일암과 희랑대를 지나 백련암으로 향했다. 길은 점차 깊은 산세와 울창한 숲으로 이어진다. 낙엽과 햇살이 어우러진 오솔길은 걷는 자체로 수행 같았다.
마지막 굽이를 돌자, 숲 속에 조용히 자리한 백련암이 모습을 드러낸다. 작지만 긴 시간의 수행과 고요함이 배어 있는 곳.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성철 스님의 법어 앞에선 누구나 걸음을 멈추게 된다.
가야산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백련암은, 노송과 기암에 둘러싸여 자연이 빚은 도량처럼 느껴진다. 성철 스님이 말년을 보낸 이곳엔, 말없이 전해지는 침묵과 수행의 기운이 고요히 흐르고 있었다.
스님의 삶은 설명보다 실천이었고, 말보다 존재 자체로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정신은 지금도 암자 곳곳에 배어, 찾는 이의 마음을 조용히 감싼다. 산길을 내려올 즈음, 오히려 내면은 더 맑고 평온해졌다. 해인사에서 마주한 가장 깊은 고요, 그것은 바로 백련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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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보며 삶의 의욕을 찾습니다. 산과 환경에 대하여도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고 싶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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