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로맨스스캠에 대한 경고 보도자료 금감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로맨스스캠에 대한 경고 보도자료. 요즘 로맨스스캠 피해자가 늘고 있다고 한다. SNS에서 모르는 이성이 번역체의 말투로 접근해 온다면 주의해야 한다.
우현주
다행히 나는 문제가 커지기 전에 빠져나올 수 있었다. 분명히 처음에는 SNS상에서 댓글이 왔다 갔다 하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상대편과 톡까지 하고 있었다. 사실 이쯤 되자 겁이 나기도 했다. 생전 처음 보는 상대에게 이렇게 개인적인 공간을 오픈해도 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상대방은 대화를 끊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아무리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 해도 알겠다고 하고선 곧 다시 말을 걸었다.
자식과 남편이 딸린 기혼자라고 내 신분을 밝혔는데도 그랬다. 이런 막무가내식은 어떻게 끊어내야 할지 몰라 쩔쩔매고 있는데 결정적인 카톡이 날아왔다. 헬스장을 다녀와서 샐러드로 저녁을 한다는 글과 함께 샐러드 사진이 날아 왔다. 누가 봐도 너무 개인적인 내용이었고 도대체 이런 걸 왜 보내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게 무슨 한심한 짓인지, 내가 얼마나 바보짓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SNS와 카톡에서 상대편 계정을 차단하고 창을 삭제해 버렸다. 그래도 창을 닫기 전 마지막 인사말을 남겼다. 혹시나 상대편이 멀쩡한 사람일 가능성을 대비한 마지막 예의였다.
이런 나의 배려는 며칠 후 산산조각났다. 평소 잘 듣던 경제 유튜브 방송을 듣고 있는데 '로맨스스캠'이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무심결에 듣고 있자니 어째 내가 겪은 일과 너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깨달았다. 내가 겪었던 것은 내 사진이나 나, 한국에 대한 관심도 뭣도 아닌 '로맨스스캠'이었고 나와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은 사기꾼이었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수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일이 커지기 전에 빠져나온 게 천운이라면 천운이었다.
예전에는 이런 사기 보도를 들을 때마다 '누가 저런 거에 당하나' 싶었는데 내가 그 당사자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래서 사람은 함부로 남 말을 하면 안 되나 보다. 하지만 덕분에 이런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들의 심정에 대해 조금은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관건은 관심이다. 나를 포함한 이런 사기에 걸려드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평범하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팔로워가 수천 명, 수만 명에 달하는 인플루언서이거나 인기인이었다면 애초 그런 수상한 댓글에 반응하지도 않았을 거다. 하지만 평소 내가 얼마나 평범한 지 잘 알고 있기에 누군가의 나를 보아준다는 사실이 기뻤다.
현실의 나는 남편과 다 큰 자식이 딸린 50이 넘은 아줌마에, 외모도 별 볼 일 없고 그렇다고 재산이 아주 많거나 특별히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마디로 평범 그 자체다. 예전에는 남들과 달라지려고 노력하기도 했지만 지금의 생활은 간단히 말해 그런 평범함에 익숙해져 버린 나날이다. 하지만 어느 날 낯선 이의 갑작스러운 관심은 이런 일상에 파문을 일으켰다.
그 사기꾼이 나한테 수작을 거는 동안, 나는 잠시나마 꿈을 꾸었다. 그 속에서는 나는 매력 있는 사람이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우연히 내 계정의 사진을 보고 댓글을 남길 정도로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건 꿈이 아닐 지도 몰랐다. 현실의 나 역시 내가 여태 깨닫지 못했을 뿐 진짜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내가 당한 게 로맨스 스캠이란 걸 안 순간 그 환상은 순식간에 깨어졌다. 솔직히 나는 내가 사기를 당할 뻔했다는 사실보다 그 환상이 부서진 충격이 더 컸다. 차라리 꿈을 꾸지 않았을 때가 더 나았다. 꿈을 꾸었다가 다시 돌아온 현실은 더 잔인했다. 거울 앞에 선 나는 더 평범하고 더 보잘 것 없었다. '그럼 그렇지 50 넘은 아줌마한테 말을 걸 젊은 남자가 있을까?' 자괴감과 함께 창피함까지 몰려왔다.
말할 것도 없이 사기는 나쁘다. 금전적인 면만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잠시 환상을 불어 넣은 다음 종국에는 그것을 가차 없이 깨뜨려 버린다는 면에서 악질적이다. 이런 사기에 대한 경고는 꾸준히 나오지만 피해자는 계속 발생한다. 한편으로는 서글프다. 인간이 외로움을 느끼는 한 이렇게 감정을 파고드는 사기를 근절하기는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관건은 다시 관심이다. 이웃, 친구, 아니 함께 사는 가족에 대한 작은 관심이 작지만 가장 확실한 해결책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고 당연히 여기지 말고 함께 사는 사람의 얼굴을 한 번 더 보아주고 마음을 표현하자. 그러면 언젠가 내가 느끼는 외로움은 옅어지고 사람 사이의 따뜻함은 더해진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명심하자. 금감원의 경고는 뼈 아프지만 사실이다.
"멋진 이성이 나한테 SNS에서 메시지를 보낼 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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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랫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있습니다. 내 몸과 정신을 적시는 모든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이런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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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로맨스스캠'을 내가 당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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