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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형식적 통과? 수명을 다한 원전, 계속 사용해도 되나

[기후의 시간] 고리원전 2·3·4호기 수명 연장과 노후 원전 계속운전의 구조적 문제

등록 2025.07.31 06:51수정 2025.07.31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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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경고가 아닌 현재의 재난입니다. 전례 없는 폭염과 가뭄, 태풍이 일상이 되었고 에너지 위기와 환경 불평등은 우리 사회 곳곳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기후위기가 지금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원전과 석탄 대신 어떤 에너지를 선택해야 하는지, 에너지 정책과 정의로운 전환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합니다.[편집자말]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 있는 고리원자력발전소 1호기, 2호기, 3호기, 4호기. 김보성

오는 8월 6일, 고리원전 4호기의 설계수명이 만료된다. 1986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이 원전이 멈추면, 앞서 수명이 종료된 고리 2·3호기와 함께 고리 2~4호기는 모두 가동을 중단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이 원전들의 '계속운전'을 추진하고 있으며,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이에 대한 심사를 진행 중이다.

이 상황은 단순히 노후 원전의 연장을 넘어 대한민국 원전 정책의 방향성과 원자력 규제 시스템의 근본적 신뢰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수명을 다한 원전을 다시 가동해도 되는가? 그 절차는 정당하고 안전하게 진행되고 있는가? 주민은 이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가?

설계 수명이란 원전을 설계할 때 정해진 안정적 운전 기간을 뜻한다. 대부분 원전 설계 수명은 30~40년이다. 설계 수명이 만료된 원전의 가장 큰 문제는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속의 응력 부식 균열, 열화, 방사선 손상 등으로 주요 설비(압력용기, 증기발생기, 배관 등)가 약화된다. 노후화로 인한 재료의 열화는 내부 구조물(격납건물 등)의 부식 문제도 일으킨다.

노후 설비는 예기치 못한 고장 가능성의 위험성을 증가시키고, 이는 중대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수명 연장을 준비하던 시점에 발생했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수십 년 전에 설계된 원전은 현재의 안전 규제 기준, 지진 설계 기준, 테러 대비책 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제적으로도 수명 만료 후에는 폐로가 원칙이며 계속운전을 하려면 철저한 안전성 검토와 설비 개선이 필수다.

한국에서는 설계수명이 끝난 원전을 계속 운전하기 위해선 운영변경허가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이를 위해 주기적 안전성 평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 사고관리계획서 등이 요구된다. 운영자는 설계수명 종료 3~5년 전 원안위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이후 기술 심사와 주민 의견 수렴, 원안위의 심의를 통해 결정된다.

하지만 이 절차는 법적으로 존재할 뿐, 실질적으로는 '형식적인 통과 의례'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고리 2호기 수명연장 과정은 그 대표적인 사례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가동을 시작해 2023년 4월 설계 수명이 만료되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원전을 영구 정지하기로 방향을 잡았지만, 윤석열 정부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선언하며 수명연장을 추진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법적·절차적 요건이 무시되었다는 점이다.


수명연장 심사의 근거가 되는 주기적안전성평가 보고서조차 법령에서 정한 기한을 넘겨 제출되었음에도, 원안위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 조치'와 '고발'을 제외하고는 한수원의 위법 행위에 아무런 제재도 없이 심사를 용인했다. 사고관리계획서의 경우 2019년 제출하고 3년의 심사 기간을 목표로 했었으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다. 원안위는 이를 제외한 채 수명연장 심사를 강행하려다 시민 사회의 비판을 받자 뒤늦게 병행 심사로 방침을 밝히고 있다.

안전의 최후 보루인 규제기관이 법령 위반 사업자를 제대로 제재하지 않고, 오히려 일정에 맞춰주는 모습을 보여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닌 '원자력면죄위원회'"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이다.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아

한수원이 제출한 주기적안전성평가에 따르면 고리 2호기의 노심손상빈도(CDF)는 '1.58×10^(-5)/년', 즉 1000만 년에 158번이다. 이는 과거 기준(1.0×10^(-4)/년)에는 충족하지만, 2016년 이후 적용되는 강화된 기준(1.0×10^(-5)/년)에는 미치지 못한다. 신고리 3호기 같은 최신 원전은 이 강화된 기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한수원은 "고리 2호기는 예전 설계이므로 적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주기적안전성평가 보고서는 노후 원전 수명 연장 문제의 당사자인 주민들에게는 공개조차 되지 않는다. 전문가 카르텔이 주도하는 폐쇄적 의사결정 구조가 여전히 공고히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산업계의 전문가 집단의 허상이 드러났고, 그로 인해 투명한 정보 공개가 요구되고 있다.

또한 노후 원전일수록 오히려 더 높은 수준의 정보 공개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요구받는 게 상식이다. 한수원의 태도는 과거의 기준에 안주한 채 새로운 기술 발전과 안전 강화를 외면하는 것으로,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의미밖에 되지 않는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안위는 원자력 안전법을 개정하여 모든 원전에 대해 사고관리계획서 작성 및 제출을 요구하며 안전 기준을 강화했다. 사고관리계획서는 원자력발전소에서 설계 기준 사고를 넘어서는 중대사고 상황에 대비하여, 원자로 손상을 방지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기술적·조직적 대응 절차를 담은 문서로 후쿠시마 같은 참사를 방지하기 위한 안전성을 강화한 것이다.

 한수원에서 공개한 '고리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는 내용 일부가 가려진 채 공개되었다.
한수원에서 공개한 '고리 2호기 사고관리계획서'는 내용 일부가 가려진 채 공개되었다. 한수원

하지만 고리 2호기의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는 2019년 제출 후 3년의 심사 기간을 목표로 했었으나 6년이 지난 현재까지 마무리되지 않았다. 원안위는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를 뺀 채 수명연장 여부를 논의하려 했고, 이는 '중대사고에 대한 대비 없이 계속운전을 허용하겠다'는 것으로 비쳐 지역과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불안에 시달리던 고리 2호기 방사선비상계획 구역 인접 지역 주민 548명은 6월 11일 중대사고를 포함한 사고관리계획서 심사를 제대로 해달라는 서명을 원안위에 제출했다. 원안위는 비난이 거세지자 병행 심사로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원자력 규제기관으로서의 신뢰는 크게 훼손되었다.

주민 참여는 형식, 정보는 비공개

고리 원전은 부산과 울산, 양산 등 인구 밀집 지역에 인접해 있다. 만에 하나 사고가 발생하면 수백만 명의 생명과 생계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그럼에도 정작 방사선환경영향평가나 주기적안전성평가, 사고관리계획서 등 핵심 자료는 주민에게 제대로 공개되지 않으며, 공청회도 형식에 불과하다.

2022년 열린 고리 2호기 공청회에서 시민들은 중대사고 시나리오 누락, 테러 대응 부족, 최신 기술 미적용 등을 지적했지만, 원안위와 한수원은 대부분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회피했다. 주민 의견 수렴이 아닌 주민 '기만'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고리 3호기는 2024년 9월 수명 만료되었고, 4호기는 2025년 8월 6일 수명 만료를 앞두고 있으며 이들에 대한 수명연장도 추진되고 있다. 고리 2호기에서 드러난 절차적 부실과 정보 비공개, 형식적 의견 수렴, 주민 참여 배제 등이 반복된다면, 고리 원전 단지는 위험한 '노후 원전의 집합소'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한빛 1·2호기, 한울 1·2호기, 월성 2·3·4호기 등 2025년부터 2029년 사이 수명 만료를 앞둔 7기 원전도 계속운전 대상으로 모두 원안위 심사에 올라 있다. 고리 2호기에서 무너진 기준은 곧 전국 모든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과정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10기의 노후 원전 수명 연장에 앞서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원안위의 기능 회복이다. 규제기관은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어야 하며, 정부 정책에 편승해 면죄부를 주는 기관이 되어선 안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한 단순한 설비 교체가 아니라 제도와 사회의 책임 강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 공개의 투명성이다. 사고관리계획서와 주기적안전성평가, 방사선환경영향평가의 전면 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해당 지역의 주민이 아니더라도 원전 안전에 관심 있는 시민이면 누구나 공개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이 공학적, 경제적 문제를 넘어서는 사회적 의사결정임을 인정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의사 결정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주민 참여 기반의 감시 체계가 작동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주민 공청회에 법적 강제성을 부여하며, 독일과 스위스는 사회적 합의로 탈원전을 선택했고 흔들림 없이 정책을 추진했다. 반면 한국은 정권에 따라 원전 정책이 오락가락하고 주민 의견은 무시된다. 언제까지 주민이 배제된 비민주적 절차를 용인할 것인가?

고리 2호기의 수명연장 절차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원전은 무엇을 위해 가동하는가? 원전 안전, 과연 누가 책임지는가? 원전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는가?

원전은 우리 모두가 지속가능한 삶을 살기 위한 기반 시설일 뿐이다. 위험을 반복하고, 주민을 배제하며, 미래를 위협하는 원전은 우리에게 필요 없다. 노후 원전 수명 연장은 위험의 연장일 뿐이다. 고리 2호기를 비롯한 모든 노후 원전의 계속운전은 멈추어야 한다.
#고리원전 #수명연장 #노후핵발전소 #사고관리계획서 #주기적안전성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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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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