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 가게에 남긴 부모의 편지 그는 그렇게 기다리다 돌아가면서, 손편지 한 통을 놓고 갔다. 그 편지를 나는 아직도 갖고 있다.
이효진
그게 끝인 줄 알았다. 진짜 이야기는 그 다음에 시작됐다. 가게에 없던 날 녹화된 CCTV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아이와 그 아버지가 가게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정자세로 앉아 있었다. 시간을 보니 대략 오후 5시에서 8시까지 였다.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전화를 걸지도 않고 안내 문구에 있는 번호로 연락도, 문자도 남기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 사정을 알게 됐다.
"잘못은 아들이 했는데 오라 가라 하는 것도 민폐일 것 같아 혹시 가게 정리하러 오실까 싶어서 그날은 그냥 기다렸습니다."
아이 아버지는 그렇게 나를 기다리다 그냥 돌아가면서 손편지 한 통을 놓고 갔다. 그 편지를 나는 아직도 갖고 있다. 정갈한 글씨, 담담하지만 진심이 묻어나는 문장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이랬다.
"저는 못난 자식을 둔 아버지입니다. 남의 물건에 손대지 말라고 가르쳤지만, 그 가르침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자식에 대한 배신감과 자괴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자식이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길 두 손 모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나는 그 편지를 읽고, 멍하니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책임을 회피하지도, 억울함을 호소하지도, 사정을 늘어놓으며 아이를 감싸지도 않았다. 그저 부모로서 속죄하려는 깊고 담담한 진심이 느껴졌다. 아버지가 보여준 그 모습에서 아이가 배울 수 있는 게 있으리라는 믿음이 생겼다. 결국 나와 다시 연락이 닿은 아버지는 직접 사과하고 변상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 되었다.
요즘 아동문학에 관심을 갖고 집필을 하던 나는 이 이야기를 동화로 썼다. 이 이야기가 요즘 아이들에게 정직함과 책임감을 생각해보게 하는 좋은 에피소드일 것 같다는 마음에서였다. 그렇게 지난 7월 중순에 투고한 원고에 대해 한 출판사에서 답변이 왔다. 하지만 돌아온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기획은 좋은데... 너무 비현실적이에요. 누가 그렇게 절절한 손편지를 써요? 요즘 부모들은 아이 잘못이라고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요. 동화는 현실을 바탕으로 써야지, 이건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이야기예요."
멍했다. 이건 내가 직접 겪은 실제 이야기인데... 하지만 그들은 말했다.
"이건 현실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현실의 사람들이 믿지 않는 현실. 요즘 우리는 뉴스를 통해 비정상을 너무 자주 접한다. 늘 극단적인 이야기가 중심이다. '정상적인 일'은 뉴스에 실리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그 비정상이 마치 '보통'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도리어 평범하고 상식적인 이야기는 별다른 가치가 없는 듯 치부되기도 한다. 그게 무서운 일이다.
내가 겪은 부모의 모습은 이제 동화 속에서도 보기 어렵다고 했다. 그렇게 진심을 다한 편지는 우습게 여겨졌고, 출판사 직원들끼리 한 회의에서 조차 "요즘 그런 부모는 없다"는 말이 당연한 결론처럼 정리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놓치는 현실
나는 잠시 동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비현실을 그려내는 장르일까. 아니면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잊고 지낸 가능성을 다시 보여주는 틀일까. 동화는 현실에서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게 그 사이 어딘가에서 따뜻함을 전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계속 쓰고 싶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진짜 어른'의 이야기를. 뉴스에 나오지 않아 잊힌 정상적인 책임감과 따뜻한 태도를. 우리 아이들이 동화 속에서라도 다시 배울 수 있도록. 나는 믿고 싶다. 여전히 진짜 어른들이 있고, 그런 어른을 닮아가고 싶어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동화가 그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이야기이기를.
어쩌면 지금 우리가 가장 많이 잃고 있는 것은 이런 '아무도 뉴스에 올리지 않는 평범한 진심' 아닐까.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현실을 다시 떠올려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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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제주MBC, 아리랑국제방송, 제주 TBN교통방송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아동문학 작가이자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며, 유튜브 채널 '작가의식탁TV'를 통해 초·중등생의 글쓰기와 학습 성장을 돕는 교육 콘텐츠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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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도둑질 CCTV로 확인한 아빠가 가게 사장에게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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