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어학자인 필자가 일상생활과 공공기관 안내문, 대중교통 안내방송 등 다양한 공공언어 사례를 직접 관찰해 작성한 글입니다.[기자말] |
"폭언이나 폭행, 성희롱 등을 하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상담자에 대해 폭언을 하지 말아 주세요."
이 문장들은 기차를 타거나 공공기관에 연락할 때 자주 들을 수 있는 안내 메시지이다. 폭언(산업안전보건법 제41조), 폭행(형법 제260조), 성희롱(고용평등법 제2조) 등은 법으로 명확히 금지된 행위들이다. 그런데도 위 안내 메시지는 마치 '부탁'처럼 들린다. 문법이 잘못된 탓이 아니다. 오히려, 불법 행위임을 경고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정중한 표현이 메시지의 경고 효과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과잉 공손성(politeness)'의 문제다.
'하지 말다'라는 금지를 나타내는 표현에, '-주다'라는 배려를 나타내는 보조동사, 높임을 뜻하는 '-시-', 그리고 완곡한 표현인 '-기 바랍니다'가 겹겹이 붙어 있다. 이로 인해 금지의 의도가 모호해진다.
즉,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막기 위한 경고가 '정중한 부탁'처럼 들리는 희한한 상황이 된 것이다. 왜 공공 안내방송에서 "폭언, 폭행, 성희롱은 명백히 금지되어 있으며, 위반할 경우 처벌받습니다"라고 정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일까?
이처럼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공손하게 말하려다 오히려 어색하거나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예를 들어, "5천원 나오셨습니다"는 금액에 높임을 적용한 것으로, 문법적인 높임법 오류에 해당한다.
반면, 글의 시작에서 살펴본 '과잉 공손' 사례는 화용적인 문제이다. 언어학적으로 높임법과 공손성은 서로 다른 개념이다. 높임법은 문법적인 범주인 반면, 공손성은 발화 상황에 따라 적절히 선택하고 조절해야 하는 화용적 요소이다. 그러나 실제 언어 사용에서는 두 요소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위계 질서가 뚜렷하고 예의를 중시하는 한국어 사회에서는 높임법과 공손성이 함께 실현되며, 이들이 과잉 사용되는 문제가 자주 발생한다.
높임과 공손성의 과잉 현상은 우리 사회의 예절 문화와 상하 관계를 중시하는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특히 공공기관에서는 민원인의 반응에 지나치게 신경 쓰거나 형식을 지나치게 따지는 관행이 영향을 준다. 공손성은 담화 전략으로서 상황에 맞게 조절되어야 한다. 고객을 배려한다는 명목 하에 무조건 정중한 표현만을 사용하면, 의사 전달이 오히려 흐려질 위험이 크다.
말은 무엇보다도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므로, 공공언어는 특히 명확하고 정확하며, 때에 따라서는 단호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오랜 세월 예의를 중시하는 언어문화를 유지해왔지만, 이제는 형식보다 내용을, 과잉보다 균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시점이다. 공손함은 분명 필요하지만 지나치면 오히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공손함과 정확함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 아니다. 공손성은 예의의 표현이지만, 단순히 말의 '포장지' 역할만 해서는 곤란하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공손함이나, 오히려 의사 전달을 방해하는 공손함은 오해를 키울 뿐이다.
진정한 말의 품격이란, 정중하면서도 명확하고 배려하면서도 정확한 언어다. 이제는 형식보다 내용을, 과잉보다 균형을 더 중요하게 여겨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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