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산업의 무한속도경쟁, 어디까지 갈 것인가?'라는 제목의 토론회 지난 7월 10일 택배 속도 경쟁으로 확산되는 야간노동, 과노동 등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국회 토론회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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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완의 역설(Cowan's Paradox)'이라는 말이 있다. 기계산업의 발전으로 세탁기 등 가전제품이 보급되었지만 가사노동시간은 오히려 늘어난 현상을 말한다. 예를 들어 세탁기가 발명되어 한 번의 세탁 시간 자체는 줄어들었으나, 사람들이 그 편리함에 옷을 더 자주 갈아입는 탓에 세탁 횟수가 늘어 전체적인 가사노동의 양은 늘어났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어떤가? 디지털 기술의 발전 등으로 편리함이 크게 증진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빠르게 쏟아져 나오는 신제품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새로 배워야 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최신 기술, 문화 등에 적응해야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여가시간의 영역에도 노동시간이 침투해 간다. 기술발전의 속도, 사회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며 나의 생활 속도도 빨라진다.
더군다나 자본주의 시스템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것을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남겨둔다. 거의 모든 것을 상품이라는 형태로 거래되도록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시간도 하나의 상품이 된다. 곧 '시간은 돈이다'. 시간은 개인의 관리와 투자에 따라 개발되고 축적이 가능한 하나의 자본(인적자본)으로도 인식된다(김학선, 2020, "가속화 사회의 시간 테크놀로지 – 1980년대를 중심으로", <사회와역사> 통권128호). 시간이 상품이므로 시간 관리는 더욱 중요해지고, 시간을 아껴서 나에게 속한 인적자본에 부단히 투자해야 한다. 유유자적 보내는 시간은 낭비로 인식되고, 한 시간 안에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늘어난다. 시간은 부족해 진다.
한편 자본은 디지털 기술의 힘을 등에 업고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자본의 회전속도를 극도로 높여가며 각종 소비 행위를 부추긴다. 자본의 생산, 회전속도에 사회적 삶의 속도가 맞춰지고(우리는 언젠가부터 핸드폰을 2년 주기로 교체하고 있다) 사회는 가속화된다.
더불어 신자유주의 시스템 속에서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유연화되었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놓인 노동자들은 대체로 임금이 낮은 일을 하고 있다. 그로 인해 노동시간을 늘리거나 가족 구성원 모두가 일터로 향해야지만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시간 압박을 느끼고 시간 빈곤에 빠져든다.
가속화 사회와 소외
문제는 시간 빈곤에 시달리고 사회적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좋은 삶'을 살아가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가속화 사회를 따라가려 해도 인간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제한이 있으므로 가속화 사회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로 인해 시간 압박, 시간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그리고 그 속도에 뒤처지는 사람이 생겨나고 소외의 문제가 발생한다.
독일 예나대학교 사회학 교수인 하르트무트 로자는 사회의 가속(기술의 가속, 사회변화의 가속, 생활속도의 가속)에 대해 이야기하며, 가속화 사회는 인간의 소외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소외는 '외부 행위자나 요인에 의해 강제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진정 원하는 것도 아닌 목표나 실천을 따르는 상태'로 정의될 수 있는데, 잠들기 전에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보는 행위가 누가 강제로 시킨 것은 아니지만 과연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일인가 하는 것이다.
로자에 따르면, 가속화되는 사회 속에서 나의 친숙한 공간은 없어지고, 물건들은 나와 정이 든 '내 것'이라기보다는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여겨진다. 자신이 무엇을 하기를 정말 원했는지를 잃어버린 채 '할 일 목록'의 처리에 압도되고, 즉각적 보상이 주어지는 소비활동에 압도되어 자신에게 소중한 일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 맺기는 어려워지고, 경쟁사회에서 성과만을 위한 피상적 관계 설정만이 남는다. 결국 가속화된 세계에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행동양식이 분리되고, 남에게 인정받지 않고 남과 소통하지 않는 삶이 확산된다. 이는 자아의 소진, 우울증으로 이어진다(하르트무트 로자, 2020, <소외와 가속>, 김태희 역, 엘피).
이렇게 보면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사회의 가속화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만은 아니다.
다시 택배 배송 속도 경쟁으로 돌아와 보자. 빠른 배송은 단지 물건을 빨리 받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삶의 속도를 더욱 빠르게 하고,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다. 기술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자본이 만들어가고 있는 가속화 된 새로운 시간 체계로 편입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사회적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 속도 경쟁을 제어하는 것은 노동자의 건강을 위한 일인 것과 동시에 소비자이기도 한 우리 자신이 자신의 생활 리듬과 시간을 되찾아오는 과정이다.
시간 빈곤 사회 속에서는 결국 누군가의 시간을 빌리거나 구매하거나 혹은 빼앗아서 내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다. 우리는 누군가의 주말 시간, 가족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할 시간, 내일을 위해 잠을 자야 하는 시간을 빼앗고 빠른 배송에 의지해야지만 내 생활이 영위되는 사회로 나가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시간 빈곤의 근원적 문제를 돌아보고 모두가 자신만을 위한 여유시간을 늘려갈 수 있는, 빠른 배송이 필요 없는 사회로 나가야 하는 것인가.
앞서 언급한 '코완의 역설'을 푸는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은 가사 분담 등 가족들이 함께 힘을 모으지 않으면 해결책이 없다고 말한다. 빠른 배송 문제는 단순히 택배노동자 건강권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가 과연 오늘 주문하면 내일 아침에 도착하는, 365일 24시간 배송이 필요한 사회인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진지한 성찰을 해 나갈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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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을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태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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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배송은 정말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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