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 조금 망한 베란다 텃밭

'기다림의 기쁨'과 '정성의 가치'를 알려준 농사, 포기는 없다

등록 2025.07.31 16:31수정 2025.07.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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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들어 부쩍 물가가 오른다. 채솟값도 들쭉날쭉이다. 물론 생계를 위협할 만큼 절실했던 건 아니지만, 자연스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돈도 아낄 겸, 수확의 기쁨도 누릴 겸, 베란다에서 농사 한번 지어볼까?'


나는 지방의 소도시에 산다. 도시라고는 하지만 흙을 밟거나 무언가를 손으로 길러내는 일과는 거리가 먼 삶이다. 매일 반복되는 실내 생활 속에서 나는 될 수 있으면 땅을 밟고 싶어 산책을 즐긴다. 걷기를 생활화 하려고 노력하고 자동차 대신 걸어다니는 일상을 선택하려 애쓴다. 그렇게라도 땅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그래서인지 더 간절해졌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키우고, 그걸 식탁 위에 올릴 수 있는 짧지만 확실한 기쁨.

베란다 한쪽이 눈에 들어왔다. 햇살이 잘 들고 바람도 적당히 드는 자리. 특별한 화분은 없었지만, 짬뽕시켜 먹고 남은 일회용 국물 그릇, 감자탕 포장 용기 같은 것들을 깨끗이 씻어 흙을 담았다. 시장에 들러 상추 묘종을 사 와 조심스럽게 심었다. 그렇게 나만의 작은 텃밭이 시작되었다.

베란다 텃밭 상추 묘종으로 시작된 나의 첫 베란다 텃밭
▲베란다 텃밭 상추 묘종으로 시작된 나의 첫 베란다 텃밭 이효진

남편은 평소 땀 흘리는 일을 한다. 하루 고단한 일과 뒤엔 꼭 고기반찬이 올라와야 식사가 되는 사람이다. 그리고 고기엔 빠질 수 없는 게 상추다.

"그럼 상추는 베란다에서 키우자."

그 마음 하나로 시작한 작은 농사였다. 도시 안에서, 베란다 한쪽에서 다시 초록을 키우는 시간. 그 작고 소박한 시작이 내 일상에 잔잔한 변화를 불러오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잎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됐다.


"언제쯤이면 쌈 싸서 먹을 수 있을까?"
"오늘은 어제보다 얼마나 자랐을까?"

그런 질문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시간이 좋았다. 무심코 흘려보내던 하루에 작은 기대가 생겼다. 며칠이 지나자 손바닥만 한 상추 잎이 올라왔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우리가 키운 상추가 식탁에 올랐다. 고기 반찬 곁에 막 따낸 상추를 곁들어 쌈을 싸 먹는 그 순간.


"와, 이게 진짜 꿀맛이구나!"

입안 가득 퍼지는 신선한 맛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맛도 맛이지만, 그 안에 담긴 시간과 정성이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베란다 상추 베란다에서 막 딴 상추. 어느날 드디어 우리가 키운 상추가 식탁에 올랐다.
▲베란다 상추 베란다에서 막 딴 상추. 어느날 드디어 우리가 키운 상추가 식탁에 올랐다. 이효진

그 맛에 욕심이 생겼다. 파도 심고, 방울토마토도 심고, 오이도 키우기 시작했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초보였지만, 하루 한 번 물을 주고 잎을 살피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작은 생명을 정성껏 보살피는 일이 이렇게 마음을 평화롭게 해줄 줄은 몰랐다.

그러다 여름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가족 모두 오랜만에 캠핑을 다녀오기로 했다. 며칠 집을 비우는 일이 뭐 그리 대수인가 싶었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이 계속 신경 쓰였다. 매일 물을 주던 시간이 되면 베란다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괜히 마음이 걸렸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베란다부터 달려갔다.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기록적인 폭염에 상추는 축 늘어져 있고, 토마토와 오이는 기운 없이 시들어 있었다. 그동안 간신히 간신히 키워온 텃밭 농사는 거의 실패였다. 괜히 텃밭 식구들에게 미안했다. 물을 한 번 더 줬더라면, 그늘이라도 만들어 뒀더라면. 작은 플라스틱 화분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해 자라던 채소들이라 더 애틋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물을 준다. 노랗게 마른 상추 끝에서 아주 작게 초록빛이 올라오는 걸 볼 때면, 마음 한쪽이 다시 살아난다. 나는 오늘도 물을 준다. 망한 텃밭을 향해 "다시 해보자"는 마음으로. 물론 미안한 마음도 함께.

농사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거라 하지 않았던가. 텃밭은 망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기다림의 기쁨'과 '정성의 가치'를 배웠다. 다시 시작할 거다.

시장에서 묘종 구입 파도 심고, 방울토마토도 심고, 오이도 키우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묘종 구입 파도 심고, 방울토마토도 심고, 오이도 키우기 시작했다. 이효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 개인SNS에도 실립니다.
#베란다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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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제주MBC, 아리랑국제방송, 제주 TBN교통방송 등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작했으며 현재는 아동문학 작가이자 글쓰기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이자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쓰며, 유튜브 채널 '작가의식탁 이효진'을 통해 초·중등생들의 교육 콘텐츠와 작가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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