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케 할머니 기자가 2010년 8월 15일, 찾아갔던 치바현 나기노하라마을 조선인 학살현장에서 증언하는 오다케 할머니, 할머니 뒤 목련나무 아래에 구덩이를 파고 학살된 조선인들을 묻었다고 증언했다.
이윤옥
그러나 이러한 사실은 1970년대 후반까지 발설하면 안 되는 공공연한 금기였다. 그러다가 지역의 한 중학교 교사가 학생들과 조사하여 학살 사실을 증언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1998년에는 75년 만에 유골 발굴이 이뤄져 6구의 유해를 발굴하여 화장한 뒤 근처 관음사에 모시게 되었다. 관음사(觀音寺)는 바로 억울하게 숨져간 조선인의 영혼을 위로하는 곳으로 이곳에 한국식 종각인 보화종루(普化鍾樓)가 건립된 것은 1985년의 일이다.
그러나 이 종루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단청이 벗겨지고 기와가 새는 등 개보수가 필요한 상황에 이르자 2021년 겨울, 전 한국영상대학교 최유진 학장은 관동조선인학살과 관련한 다큐영화를 만들었던 재일동포 영화감독 오충공(吳充功) 감독으로부터 제안을 받게 된다. 2023년 관동대학살 100주기를 앞두고, 1985년 한국의 문화예술인들이 모금운동을 전개하여 한국 시민들이 최초로 건립했던 관동조선인학살 위령 건축물 '보화종루'의 단청보수와 100주년 추모문화제를 한일 양국 시민들이 같이 힘을 모아 추진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1985년 보화종루 최초 건립 때도, 2003년 종루 단청보수 때도 참여했던 최유진 교수는 100주기를 맞아 이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관련 단체를 찾기 위해 노력하다가, 2022년 4월 사단법인 유라시아문화연대(이사장 신이영)가 추진하겠다고 나서면서 2022년 5월 16일부터 모금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2022년 5월에 신이영 이사장과 최유진 기획위원장을 필두로 출범한 추진위원회는 '관동대학살 100년에 대한 기억'의 환기와 모금 운동 활성화를 위해 2022년 5월 27일 도봉문화원 소공연장에서 오충공 감독의 <감춰진 손톱자국-관동대진재와 조선인 학살> 영화상영과 관동대학살 사진전시회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간토대학살 영화 시사회 홍보물 1923년 간토대학살 영화 시사회(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 2024년 5월 7일)와 진상규명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홍보물
국회
그때만 해도 종루 단청 개보수 일은 관동대학살 100년을 맞아 완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다. 추진위원회는 이에 드는 경비를 한국과 일본 쪽 시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하고자 부지런히 모금에 들어갔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문화재 수리 전문업체인 (주)한울한옥의 이일호 도편수와 함께 2023년 5월 2일부터 5월 4일까지 현지 답사를 한 결과, 기와 부분만이 아니라 종루 상부 구조가 들떠 있고 기둥이 삭거나 벌레가 먹는 등 추가 문제점이 제기된 것이다. 그동안 이 지역의 간헐적인 지진에 의한 충격으로 4개의 기둥 모두가 밀려있는 등 종루의 목구조가 자칫 붕괴할지도 몰랐다. 결론은 종루의 기와와 목구조를 전면적으로 해체해 재조립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원래 계획했던 대로 보화종루의 단청보수와 100주년 추모문화제만을 고려했던 공사였다면 2023년 7월 말부터 공사에 들어가 9월 초에 공사를 끝내려 했었다. 그런데 종합적인 종루 개보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보수 비용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일을 시작한 이상 끝을 보기 위해 한국 쪽에서는 새로운 개보수 계획서를 일본 쪽에 제시했으나 일본 쪽 추진위원회에서 난색을 표명하며 지지부진 시간이 길어지는 바람에 2023년 9월,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문화제 계획까지도 무산되는 난항이 이어졌다.

▲보화종루 2 한국 고유의 단청이 선명한 보화종루 모습
오충공 감독, 관음사, (사)유라시아문화연대
그러다가 끝없는 교섭 끝에 2024년 1월 6일, 마침내 일본 관음사 쪽과 합의를 이뤄 일본 쪽에서 목구조 공사를 담당하고, 한국 쪽에서는 개수공사에 필요한 기와 제공과 단청 보수를 맡기로 한다는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게 되었다.
여기까지의 경과를 말하고 보니 일부 독자들은 한 가지 의문이 생길 것이다. 왜, 애초 "종루의 전반적인 종합진단을 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 말이다.
이 점에 대해 추진위원회 쪽은 "추진위원들이 2022년 11월 14일 단청 장인(匠人) 한 분과 함께 일본 현지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답사를 갔었다. 그러나 당시는 단청 견적과 추모문화제 장소 점검 등을 위해서 잠깐 살펴본 탓에, 종루 건물에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단청 장인은 단청 부분만을 볼 것이기에 처음부터 문화재전문위원이 함께 갔어야 했겠지만 그런 판단은 항상 나중에 문제가 불거지는 것이라서 그걸 따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문제는 단청 부분만을 위한 개보수 비용과 종루 전체 건물에 대한 개보수 비용의 차이가 엄청났다는 점이다.
추진위원회에서 이러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있을 무렵, 기자는 정종배 작가로부터 보화종루 개보수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무렵 한일 간에 대대적인 성금 모금이 다시 시작되었다. 기자도 적은 액수지만 기왓장 하나 값을 거들었고, 주변에 널리 알린 적이 있다.

▲보화종루 성금 낸 사람들 여기에 적힌 한일 시민들의 온정어린 성금으로 보화종루 개보수를 할 수 있었다.
오충공 감독, 관음사, (사)유라시아문화연대
잠시 정체되던 보화종루 개보수 작업은 다시 활기를 띠었다. 2024년 4월 29일 추진위원회에서는 (주)고령기와에서 무궁화 문양을 새겨 넣어 만든 보화종루 보수용 특수 내진 기와를 (주)한울한옥을 통해 일본 관음사로 보냈다. 그 뒤 일본 쪽으로부터 기와 설치 공법을 바꾸는 바람에 기와가 조금 더 필요하게 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12월 26일에 추가로 더 보냈다. 기와 교체 작업은 기존의 보화종루 기와를 걷어내고 목구조 개수공사를 마친 뒤에야 가능한 것으로 이 작업은 2024년 연말까지 이어졌으며 드디어 기와공사에 들어가 2025년 2월 말에 기와공사를 마쳤다.
3월 초부터는 한국의 단청 장인들이 현지에 가서 바로 단청공사를 시작해야 했으나, 단청 전문인력 확보에 다소 어려움을 겪다가, 4월 4일 한국 국가유산청에 등록된 단청명장 양영송(국가유산 수리기능자 화공 제579호), 양용선(국가유산 수리기술자 단청 제314호) 형제를 포함한 전문 단청팀(4명)과의 계약을 체결하고 4월 25일부터 공사를 시작해 예정했던 시기인 5월 11일에 무사히 단청공사를 끝냈다.

▲단청장인 등과 보화종루 현판 양영송 단청장인, 일본 사람 두 분, 기항권, 김영석 선생, 양용선 단청장인(왼쪽부터) 들이 '보화종루' 현판을 들고 있다.
오충공 감독, 관음사, (사)유라시아문화연대

▲보회종루 단청 보화종루의 산뜻한 단청 모습
오충공 감독, 관음사, (사)유라시아문화연대
이어 보화종루 개보수를 위해 성금을 보내준 분들의 이름을 새긴 '보화종루 개수 기념 명판'이 한국에서 제작되었고 이 명판은 2025년 6월 9일 일본 현지로 보내져 7월 24일 관음사 경내 보화종루 옆에 설치되었으니, 감격의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이 공사를 위해 모금을 해준 사람들은 한국의 시민들과 재일본한국인연합회 그리고 일본 관음사에 직접 기부한 사람들로 성금액은 모두 9250만 원이었다. 이리하여 보화종루 개보수를 위한 3년 3개월의 대장정은 막을 내렸다. 추진위원회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장인(匠人)들과 한일 간의 성금을 모아준 시민들이 아니었다면 일본 관음사 경내의 보화종루는 지금처럼 산뜻한 모습으로 거듭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어려운 여건임에도 앞장서서 보화종루의 재탄생 결실을 이룩한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100주기 일본 현지 위령의 종루 보수 추진위원회'에 시민의 한 사람으로 고개 숙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끝으로 이번 치바현 관음사 조선인 위령 보화종루 개보수 일을 총괄한 추진위원회 총무 양윤석씨는 말했다.
"보화종루의 안전을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은 담보할 수 있도록 전면 해체 재조립 공사를 못했다는 점, 그리고 애초에 계획했던 추모문화제를 더 이상의 예산이 없어 치르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런데 2025년 7월 25일 일본 관음사 측에서 이번 8월 29일에 보화종루 개수 완공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라는 통보가 왔고 한국 측 추진위원회 4명의 항공료와 숙박비를 부담하겠다는 연락이 와서 7월 29일에 그 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일정은 좀 조정해야겠지만 가급적 참석해서, 추모문화제 대신 조촐한 살풀이춤이라도 한번 영령들에게 바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동안 도와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경술국치 100년째 되던 2010년 8월 15일, 광복 65주년이 되던 해, 조선인 6명이 잔학하게 학살된 그곳을 찾았던 기자는 그날 흰목련 나무 아래서 당시를 회상해 주던 오다케 할머니의 증언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때 기자가 쓴 시를 소개하며, 관음사가 있는 치바현뿐 아니라 일본 각 곳에서 희생된 '1923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로 삶을 마감한 선열들의 영령에 고개 숙여 명복을 빌어 마지않는다.

▲보화종루 앞에서 추모 모임 “경술국치 100년, 한일평화를 여는 역사기행” 답사단들이 관음사 경내 보화종루 앞에서 추모 모임을 갖고 있는 모습(2010년 8월 15일)
이윤옥
"흰 목련꽃 나무 아래 / 말없이 잠든 그대들 누구인가! / 고향땅 어머니 곁 떠나 / 어이타 황천길 들었는가! / 오다케 할머니는 힘주어 들려주셨지 / 목련꽃 나무뿌리 밑에 조선인 시신 6구가 뒤엉켜 있더라고 / 그때 / 매미는 고래고래 악을 썼고 / 목련꽃 나무 옆 주택가 하늘은 흐려있었지 / 꽃은 지고 또 피고 또 피고 또 지고 / 뉘 집 귀한 아들이었을까? / 학살된 젊은 조선인을 그리며 관음사로 돌아오는 길 / 팔월 무더위는 끝내 / 속적삼을 적시었지"
- 이윤옥 '그대들 누구인가? (치바현 나기하라 조선인 학살 현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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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박사. 시인.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교수, 일본 와세다대학 객원연구원, 국립국어원 국어순화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운영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냄
저서 《사쿠라 훈민정음》, 《오염된국어사전》, 여성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시집《서간도에 들꽃 피다 》전 10권,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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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치바현 관음사 조선인 위령 '보화종루' 새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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