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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조차 '믿을 건 등급뿐'... 생기부 불신 키우는 챗지피티?

[아이들은 나의 스승] 세특 작성부터 시험 문항까지 AI에 맡기는 시대, '교사 무용론'이 두려운 까닭

등록 2025.08.04 11:03수정 2025.08.0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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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제 고등학교 학교생활기록부(생기부)의 기재는 인공지능(AI)의 몫이 됐다. 대학 입시를 대비해야 하는 고등학교 교사라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교과 세부능력 특기사항(교과 세특) 등을 쓸 때, 모니터에 챗지피티(오픈AI가 개발한 거대언어모델) 등의 AI를 동시에 띄워놓고 작업을 한다.

단언컨대, 아무리 글을 잘 쓰는 교사라도 생기부를 AI만큼 명료하게 작성하진 못한다. 생기부 기재 요령을 정확히 숙지하고, 전국 각 대학 대입 전형의 특징과 차이까지 완벽하게 이해한 뒤 반영하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AI 없인 생기부도 없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하다.

'고3 담임에 따라 대입이 달라진다'는 불문율, 챗지피티가 깨부수다

 7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학년도 수시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7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학년도 수시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입장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껏 '고3 담임교사가 누구냐에 따라 대입의 결과가 정해진다'는 게 불문율이었다. 이는 교사에게 교과 수업과 생활지도 역량보다 생기부 기재 능력이 더 중요한 자질이라는 뜻이다. 대입에서 생기부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덩달아 교사들의 '생기부 마사지'도 보편화했다.

생기부를 써야 하는 학기 말이면 교사들이 진통제와 비타민을 가방 속에 챙겨 다닌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생기부 마사지'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정작 수업 활동보다 활동 내용을 각자의 고유한 역량이 드러나도록 글로 옮기는 일이 백배는 더 고된 일이다.

이제 그런 고민을 하는 교사는 사라졌다. AI가 완벽하게 다 해주기 때문이다. 각자의 수업 활동만 열거한 뒤 내용을 분석해 학업 역량을 추론해 달라고 하면, 불과 몇 초 만에 더할 나위 없는 답변을 건넨다. 심지어 대학과 지원 학과에 맞춤한 내용으로 편집해 주기도 한다.

AI를 통해 아이들은 인문학적 감수성과 과학적 탐구 역량을 두루 갖춘 '최고의 인재'로 거듭나게 된다. 생기부만 보면, 대한민국에서 과학 부문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않은 게 되레 의아하게 느껴질 정도다. 문맥은 물론, 글자 수까지 맞춰줘 교사는 그저 '복붙'(복사+붙여넣기)만 하면 된다.


설마 하며 고개를 갸웃거릴 분들을 위해 실제 사례를 잠깐 소개한다.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 한 아이의 교과 세특을 작성해 보았다. 챗지피티의 프롬프트에 개조식으로 수업 활동 내용을 나열한 뒤, 그의 학업 역량을 추론해서 글자 수에 맞춰 요약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질문]


-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지역 내 사적지를 조사하고 모둠원과 함께 답사 계획서를 작성했다.
- 근현대사에 관심이 많아 교과서 외 다양한 자료를 탐색해 소략한 교과서 내용을 벌충해 발표했다.
- 갑신정변을 일으킨 급진 개화파들의 이력을 추적해 그들의 입장에 서서 당시의 정치 상황을 분석했다.
- 교과서에 언급되지 않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행태를 찾아 설명했다.

이와 같은 학습 활동을 한 학생이 ○○대학의 이공계열 학과로 진학할 때 요구되는 학업 역량을 중심으로 분석하고 추론해 1500바이트 내외로 요약 정리해 줘.

[챗지피티의 답변]

이 학생은 근현대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바탕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학습을 진행하며 뛰어난 학업 역량을 보여줬다. 동학농민운동을 주제로 지역 내 사적지 조사 및 답사 계획서를 작성한 활동은 현장 조사와 자료 분석을 통해 실질적 문제 해결 능력과 체계적 사고를 기른 예시이다. 또한, 갑신정변을 주도한 급진 개화파들의 이력을 추적하고 정치 상황을 분석한 과정은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분석 능력을 함양한 활동으로, 복잡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여러 시각에서 사건을 해석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

교과서 외 다양한 자료를 탐색하여 교과서 내용을 보충하고 발표한 점은 자발적 학습 태도와 정보 처리 능력을 드러낸 것으로, 특히 이공계 학문에서 필수적인 자료 분석 능력과 자기 주도적 문제 해결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교과서에 수록되지 않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행태를 찾아 설명하려는 노력은 남다른 인문학적 감수성을 엿보게 하며 탐구적 자세와 사실 기반 분석 능력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역사 인식과 다층적 탐구 역량을 증명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학습 활동을 통해 자료를 효율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며, 이를 바탕으로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학업 역량을 키웠다. 뛰어난 인문학적 소양과 더불어 문제 해결 능력과 창의적이고 비판적인 사고를 갖춘 학생으로, 협업을 통한 소통 역량과 계획적이고 치밀한 문제 해결 능력이 돋보인다. 따라서 이 학생은 전공 계열과 상관없이 기술적 문제 해결 능력, 분석적 사고, 창의적 접근 방식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된다.

한국사 수업 시간에 진행한 네 가지 활동을 기반으로 추론한 여러 학업 역량을 단락으로 나눠 정리해줬다. 여기서 불필요한 주어와 접속사 등을 삭제하고, 문장의 맨 뒤 서술어를 명사형 어미로 바꾸면 나름 그럴듯한 교과 세특이 완성된다. 챗지피티 무료 버전이 이 정도다.

서술이 다소 산만하고 중언부언하는 느낌이 없진 않지만, 이는 약간의 돈만 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유료인 챗지피티의 상위 버전을 활용하면 된다. 현재 전국의 학교마다 별도로 예산을 책정해 챗지피티 유료 버전을 교과별·학년별로 공동구매 후 사용하고 있다.

교사는 AI가 대체하기 어렵다? 모르는 소리

 챗GPT(자료사진)
챗GPT(자료사진) AP=연합뉴스'

모든 교사가 AI로 생기부를 작성하고, 대학에서도 이를 모르지 않는 현실에서 스스로 되묻게 된다. 이럴 거면 굳이 생기부를 쓰느라 교사가 애면글면할 필요가 있을까. 개별적인 수업 활동만 기록하고 나머지는 대학이 심층 면접 등을 통해 알아서 판단하도록 하면 되지 않을까.

정작 우려되는 건, 생기부 작성을 AI에 더 많이 의존할수록 대입에서 내신 성적 등 계량화한 지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는 점이다. 동아리 활동이나 진로 탐색 활동 등의 비교과 활동마저 '마사지'가 횡행한다. AI는 교사의 생기부 작성 부담을 덜어줬지만, 동시에 생기부의 신뢰도를 추락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결국 생기부를 쓰는 교사들조차 믿을 수 있는 건, 교과별 등급과 백분위 석차라며 토로한다. 누구라도 내신 성적이 눈에 띄어야만 다음 장의 교과 세특에 눈이 가게 된다는 거다. 솔직해지자면, 지방대의 경우 정원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과 세특은 소수의 상위권 아이에게만 의미 있는 자료다.

생기부의 서술식 정성 평가는 AI가 도맡고, 정량 평가, 곧 지필시험만 남게 된 형국이다. 대학에선 정성 평가를 대폭 반영하겠다고 강조하지만, AI에 의해 '마사지'된 교과 세특, 비교과 활동 등은 변별 자료로써 신뢰를 담보하기 힘들다. 대학의 선발 자율성만 높여줄 뿐이다.

어느덧 지필시험의 문항조차 AI의 도움을 받아 출제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성취 기준과 교육과정의 진도, 기출 문제 등을 제시하면, 새로운 내용의 지필시험을 완성해 준다. 교과서 안에서만 출제해야 하는 까닭에 지문과 삽화를 수정해야 하는 약간의 번거로움만 있을 뿐이다.

AI가 출제하고, AI가 채점하며, AI가 아이들의 학업 역량을 판단하고, AI가 그들의 생기부를 완성한다. AI로 수업 교재를 만들고, AI로 기안문과 보고서를 작성하며, AI로 가정통신문을 써서 학부모와 소통한다. 학교의 행정 업무가 AI의 손에 맡겨진 건 이미 오래전 일이다.

AI가 대체하기 가장 어려운 직업이 교사라고들 하지만, 요즘 학교의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온존한 학벌 구조와 대입에 목매단 공교육의 현실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교육과정에 따른 수업과 평가, 생기부 작성이 학기 단위로 반복되는 학사일정은 AI에 맞춤한 환경이다.

이러다 '교사 무용론'까지 등장할까 두렵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AI의 보편화로 기존의 교사 역할을 달라질 거라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인지 교과는 AI가 담당하고, 교사에겐 돌봄 역할이 강조될 거라는 게 대체적인 예측이지만, 그마저 머지않아 AI의 몫이 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초임 교사 시절 반 아이들과 함께 봤던 영화 <매트릭스> 속 허황한 현실이 채 30년도 안 돼 실제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AI에 길들어져 AI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인류'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럭무럭 커가고 있다. 공교육이 AI에 장악될 날도 머지않았다.
#인공지능 #챗지피티 #학교생활기록부 #교과세부능력특기사항 #대학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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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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