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광복 80주년 맞아 120년만에 고국으로... 우운 문양목 지사 13일 국립묘지 묻힌다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회까지 협업이 이루어낸 값진 성과… "향후 선양사업에 민-관이 힘 모아 속도 내야"

등록 2025.08.02 13:46수정 2025.08.02 13:46
0
원고료로 응원
우운 문양목 지사와 가족들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우운 선생의 직계혈족 윌리엄문을 만났을 당시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건넸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양목 지사, 바로 옆이 부인 문찬성 여사. 이번에 함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다.
▲우운 문양목 지사와 가족들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우운 선생의 직계혈족 윌리엄문을 만났을 당시 가족이 함께 찍은 사진을 건넸다. 앞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문양목 지사, 바로 옆이 부인 문찬성 여사. 이번에 함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된다. 김동이

충남 태안군의 대표적인 해외 항일애국지사인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마침내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온다. 실로 감격스럽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특히, 지난 2016년 우운 선생의 선양사업이 답보상태에 놓인 무렵 우운 선생의 항일독립운동 본거지였던 미국 샌프란시스코와 선생이 묻힌 파크뷰 공동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선생의 마지막 혈족이었던 윌리엄 문(2020년 8월 타계)을 만나 생존 인터뷰를 통해 선생의 살아생전 발자취를 되짚어 봤던 <태안신문>으로서는 감동, 환희, 기쁨 그 어떤 말로도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 오른다.


우운 선생이 어떤 분인가? 봉건체제 개혁과 항일무장투쟁 등 나라를 바꾸고 국권을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선 동학농민혁명에 가담하면서 비록 도망자의 몸이 되었지만 하와이로 피신해 사탕수수 농장에서 와신상담하면서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 결국에는 대동보국회를 결성, 국권 회복의 길을 걷는다. 우운 선생이 고국을 떠나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개혁과 항일투쟁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을 실천한 것이다.

장인환·전명운 열사의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더럼W.스티븐스 처단사건이 우운 선생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결정적인 사건이었지만 우운 선생은 대동공보를 간행하는 한편 한인소년병학교 사관양성을 통한 항일무장투쟁 지원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총회장으로 활동하면서 군인 양성운동과 지방총회 설립 활동을 펼치는 등 1940년 12월 25일 71세를 일기로 순국 할 때까지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도 길이 남을 빛나는 발자취를 남겼지만 정작 우운 선생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에서의 선양사업은 그리 활발하지 못했다. 심지어 고향 태안사람들조차 우운 선생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할 정도로 그의 행적은 조명을 받지 못했다.

문양목평전 저자 최재학 작가 최재학 작가가 우운 선생 추모제에서 선생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문양목평전 저자 최재학 작가 최재학 작가가 우운 선생 추모제에서 선생의 행적을 소개하고 있다. 김동이

"어찌 이럴 수 있을까" 통탄해했다. 다행히 우운 선생의 고향 남면 출신인 최재학 작가가 '문양목 평전'을 저술해 우운의 일대기를 그려냈고,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가 결성되면서 우운 선생을 추모하고 기려왔지만 민족대표 33인이면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출신 옥파 이종일 선생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물론 공헌의 무게를 따져 옥파 선생은 1등급인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우운 선생은 2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기에 선양사업의 무게도 다르겠지만 추모공간인 사당(현재는 우운 선생 생가지에 '충운사'가 세워져 있음)조차 없었으니 선양사업에 있어서는 그 첫 걸음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태안신문>의 미국행이 갖는 의미


이에 <태안신문>은 지난 2016년 6월 우운 선생의 발자취를 더듬고 그의 마지막 남은 혈족을 만나기 위해 미국행에 몸을 실었다. 여력이 닿는 한 답보상태에 놓여 있는 우운 선생의 선양사업에 활기를 불어넣어보자는 취지였다. 무엇보다 연재를 통해 우운 선생의 존재감을 태안군민에게 알리기 위한 바람도 컸다.

스티븐스를 처단한 샌프란시스코의 페리빌딩 페리빌딩은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장인환, 전명운 열사가 처단한 역사적인 장소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모습.
▲스티븐스를 처단한 샌프란시스코의 페리빌딩 페리빌딩은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를 장인환, 전명운 열사가 처단한 역사적인 장소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방문했을 당시 촬영한 모습. 김동이

목적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친일 외교고문이었던 스티븐스가 처단됐던 페리부두가 위치해 있는 곳이다. 특히, 우운 선생과 도산 안창호를 비롯한 애국지사들이 독립운동과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는 본거지로 사용했던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며 그 명맥을 잇고 있는 곳이다. 실로 샌프란시스코는 미주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비행기로 10시간 이상을 날아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태안신문>은 쉴 틈도 없이 우운 선생의 마지막 남은 직계혈족인 막내아들 윌리엄 문을 만나기 위해 승용차로 4시간여 거리의 레딩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고대했던 윌리엄 문(2020년 8월 타계)을 만난 <태안신문>은 우선 아버지 우운 선생의 모든 기록이 담긴 '문양목 평전'을 건네고, 고향 태안에서 부친의 선양사업이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했다.

문양목 지사의 마지막 직계혈족이었던 윌리엄문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윌리엄문을 만나 문양목 평전을 전했다.
▲문양목 지사의 마지막 직계혈족이었던 윌리엄문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윌리엄문을 만나 문양목 평전을 전했다. 김동이

"That's Great!"를 연호하며 엄지손가락을 추켜 든 윌리엄 문으로부터 우운 선생이 서거하기 전까지의 살아생전 어려웠던 삶의 괘적을 직접 마주했던 취재는 아직까지도 여운이 깊이 여운이 남아있을 정도로 뜻깊었다.

특히, 취재 당시 향후 우운 선생의 묘소를 국립묘지로의 이장을 추진할 경우 의사를 묻는 질문에 윌리엄 문으로부터 "생각해보겠습니다"라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인터뷰가 담긴 동영상은 캘리포니아 주 산호퀸카운티 지방법원의 '양목문의 유해발굴 청원 승인 명령'(사건번호 STK-CV-UCP-2024-0005084) 재판 과정에서 증거자료로 제출된 점도 <태안신문>의 미국 현지 기획취재의 의미 있는 성과로 남아 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은 있다. 취재 이후 4년 여 뒤에 윌리엄 문이 타계해 <태안신문>의 현지 취재 이후 곧바로 태안군에서 대표단을 보내 우운선생의 유품을 인수받지 못한 점은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한가지 의미 있는 성과는 미주 독립운동의 본거지였던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를 찾아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마주하고,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의 100년사가 집대성된 '샌프란시스코의 한인과 교회'(2003년, 상항한국인연합감리교회 100년사 편찬위원회) 책자를 교회로부터 직접 선물을 받았는데, 100년사의 행간에서 우운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를 되짚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100년사 속 우운 선생은 교회 신도이면서 주일 한글학교 교사, 그리고 미주에서 발행된 한인 최초의 한글잡지이자 기독교 문서였을 뿐만 아니라 20세기 한인 이민사회를 이끌어간 지도자들의 신앙과 사상의 기초를 닦은 정신적인 초석이었던 <대도>에서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담은 글을 발표하는 등 <대도>의 발간으로 기독교를 통한 민족의 희망과 활로를 찾는 글을 싣기도 했다. 이 책자는 향후 우운 선생 기념관이 건립된다면 윌리엄 문의 살아생전 인터뷰 영상과 함께 기념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이처럼 <태안신문>의 2016년 6월 미국 현지 취재는 태안지역에서 우운 선생의 선양사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마중물이 됐고, <태안신문>의 보도를 접한 태안군민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 기획취재로 남아 있다.

유해봉환에 결정적 역할한 애국지사 '문양목'에 매료된 이수연 전 태안부군수의 남다른 행보

이수연과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 송계영 목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이수연 상임이사가 샌프란시스코 방문 당시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를 찾아 송계영 목사에게 문양목 평전을 전달하고 있다.
▲이수연과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 송계영 목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이수연 상임이사가 샌프란시스코 방문 당시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를 찾아 송계영 목사에게 문양목 평전을 전달하고 있다. 김동이

선양사업에 잠시 불이 붙었다가 다시 답보상태에 빠져 있던 그때 <태안신문>의 미국 현지 기획취재 보도를 접하고 우운 선생 선양사업에 뛰어든 이가 있었다. 우운 선생의 유해가 고국으로의 봉환 승인이 나기까지 그 누구보다 노심초사했던 이수연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 상임이사다.

그는 <태안신문>의 기고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문양목 선생의 집안인 남평문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태안신문의 보도를 보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밝힌 이 상임이사는 충남도청 근무 시 '유관순상'을 정책 제안해 이를 제정하게 한 공직자 출신으로, 6.25참전용사인 그의 부친의 영향도 컸다고 회상한다.

특히 최재학 소설가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의 결실인 '독립운동가 문양목 평전'을 읽고 선생의 생애와 독립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이 상임이사는 우운 선생의 본부인 김해김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외동딸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를 생각하며 머나먼 이국땅에 85년이 넘도록 외롭게 잠들어 계신 우운 선생의 유해를 조국의 품에 안겨드려야겠다는 사명이 일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상임이사의 행보는 남달랐다. 우운 선생이 잠든 파크뷰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한인회와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캘리포니아 보훈국 산하 참전용사 돌봄센터에 근무하는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70여 명이 넘는 우운 선생 후손들의 유해봉환 동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의형제를 맺은 최홍일 변호사와의 인연은 현행 캘리포니아 주법상(Ca.Health and Saf.Code7526) 묘지 이장 신청 권한은 망자의 생존하는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로 제한한다는 유권 해석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관련기사 : 해외 항일독립지사 문양목·문찬성 부부, '유해봉환'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유해봉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유족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 상임이사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만나고 또 만났다. 만나지 못하면 온라인의 힘을 빌어 접촉하고 또 접촉했다. 심지어 우운 선생의 손자이자 윌리엄 문의 차남인 브라이언 문과는 잦은 접촉 끝에 인연이 돼 의형제까지 맺으며 교감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우운 선생 유족들의 동의는 물론 미 법원의 청원에서 승인 명령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이 모든 것이 우운 선생의 국내 유해봉환을 향한 이수연 상임이사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광복8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2025년 을사년에 그토록 바라던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이 현실화된 지금 이 상임이사는 이제 국가보훈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바라본다. 그는 "해외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애국지사의 이름을 찾아내고, 자료를 모으고, 후손을 찾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체계적인 조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특히 해외에서 묵묵히 헌신한 무명의 영웅들을 역사 속에 되살리려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해외에 숨겨진 애국지사들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의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0년 만의 미국행

파크뷰 공동묘지에 함께 안장돼 있는 문양목 지사와 문찬성 여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2016년 6월 촬영한 것으로, 원안에 문찬성 여사의 유해가 묻혀 있다. 파크뷰 공동묘지 관리인이 취재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파크뷰 공동묘지에 함께 안장돼 있는 문양목 지사와 문찬성 여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2016년 6월 촬영한 것으로, 원안에 문찬성 여사의 유해가 묻혀 있다. 파크뷰 공동묘지 관리인이 취재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동이

이제 <태안신문>은 지난 2016년 미국 현지 취재 이후 10년 만인 광복 80주년 앞둔 8월 4일에 우운 선생의 유해가 묻힌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멘티카의 '파크뷰공동묘지'로 다시 발걸음에 나선다. 이번에는 우운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아닌 우운 선생을 고국으로 모시는 그 현장에 다시 서기 위해서다.

미 캘리포니아의 주법상 위생문제로 인해 비록 우운 선생 유해 파묘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지만 파크뷰 묘지 측의 임시 안치소에 보관된 우운 선생의 유해를 마주할 수는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광복 80주년을 앞둔 8월 13일 우운 선생의 유해가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현충원에서의 유해봉환식을 마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순간까지 그 곁을 함께 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미국 취재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우운 선생 유해봉환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미국 법원과의 치열한 법리싸움을 벌여 최종 승인명령을 이끌어내기까지 헌신한 최홍일 변호사를 만나 법정싸움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는지를 직접 들어보고, 측면에서 우운 선생 묘소 참배를 비롯해 법정다툼에 힘을 실어 준 조현포 새크라멘토 한인회장을 비롯한 한인회원들, 그리고 임정택 주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도 관심을 보인 바 있는 리들리 독립운동 거리도 찾아 우운 선생 비석 건립에 대한 가능성도 타진해 볼 예정이다. 이에 더해 리들리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해 한인들의 뜨거운 조국애도 몸소 느껴볼 참이다.

문양목 지사와 문양목평전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우운 선생 묘소를 찾아 문양목 평전을 바쳤다.
▲문양목 지사와 문양목평전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우운 선생 묘소를 찾아 문양목 평전을 바쳤다. 김동이

특히, 국내 유해봉환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가 주관하는 추모의례와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의 퍼레이드에도 참여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20년 만에 그리운 고국으로 향하는 우운 선생을 추모하고 배웅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다시 마주하면서 고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마음 속 깊이 기원해 줄 생각이다.

우운 선생의 국내 유해봉환에 발맞춰 태안군에서도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독립지사 우운 문양목 선생 유해 귀국 환영식'이 12일 전야제와 13일 서울현충원 추모식에 이은 고향 태안군 남면 몽산리의 선생 생가지에서 추모제를 갖고 국립대전현충원의 유해 안장식까지 함께 하며 예우를 다할 예정이다.

남은 과제는

<태안신문>의 미국 현지취재 이후 10년간의 지속적인 보도와 관심, 그리고 이후 이수연 상임이사의 10년간의 미국과 태안을 오가는 헌신적인 발품이 이루어낸 우운 문양목 선생의 120년 만의 역사적인 고국으로의 귀환.

이제부터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셔 온 이상 후세를 위한, 그리고 고향 태안의 자랑스런 애국지사로서의 선양사업에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유관순상' 처럼 '옥파상'이나 '우운상'을 제정해 태안군민의 정체성을 드높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충절의 고장 태안의 후손들이 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운문양목지사 #유해봉환 #국립대전현충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톡톡 60초

AD

AD

AD

인기기사

  1. 1 "고3 조카가 툭 던진 다섯 글자, 책 제목이 될 줄은 몰랐죠"  "고3 조카가 툭 던진 다섯 글자, 책 제목이 될 줄은 몰랐죠"
  2. 2 [영상] 조현욱 위원장 "투표용지 부족 사태, 참정권 침해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 [영상] 조현욱 위원장 "투표용지 부족 사태, 참정권 침해한 헌정질서 위기 사안"
  3. 3 "드라마 '참교육' 바라보는 심정 씁쓸하다" 교장 통신문 화제 "드라마 '참교육' 바라보는 심정 씁쓸하다" 교장 통신문 화제
  4. 4 거실 누비는 로봇 청소기의 실체,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거실 누비는 로봇 청소기의 실체, 당신은 괜찮으신가요?
  5. 5 삼전·하이닉스 '호남 반도체 공장'의 실체...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삼전·하이닉스 '호남 반도체 공장'의 실체... 마냥 기뻐할 수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