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과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 송계영 목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이수연 상임이사가 샌프란시스코 방문 당시 미주 항일독립운동의 근거지였던 상항한인연합감리교회를 찾아 송계영 목사에게 문양목 평전을 전달하고 있다.
김동이
선양사업에 잠시 불이 붙었다가 다시 답보상태에 빠져 있던 그때 <태안신문>의 미국 현지 기획취재 보도를 접하고 우운 선생 선양사업에 뛰어든 이가 있었다. 우운 선생의 유해가 고국으로의 봉환 승인이 나기까지 그 누구보다 노심초사했던 이수연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 상임이사다.
그는 <태안신문>의 기고글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문양목 선생의 집안인 남평문씨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태안신문의 보도를 보고 깊은 울림을 받았다"고 밝힌 이 상임이사는 충남도청 근무 시 '유관순상'을 정책 제안해 이를 제정하게 한 공직자 출신으로, 6.25참전용사인 그의 부친의 영향도 컸다고 회상한다.
특히 최재학 소설가의 헌신적인 노력과 땀의 결실인 '독립운동가 문양목 평전'을 읽고 선생의 생애와 독립정신에 큰 감동을 받았다는 이 상임이사는 우운 선생의 본부인 김해김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외동딸이 얼마나 눈에 밟혔을까를 생각하며 머나먼 이국땅에 85년이 넘도록 외롭게 잠들어 계신 우운 선생의 유해를 조국의 품에 안겨드려야겠다는 사명이 일념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상임이사의 행보는 남달랐다. 우운 선생이 잠든 파크뷰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한인회와 네트워크를 형성했고, 캘리포니아 보훈국 산하 참전용사 돌봄센터에 근무하는 며느리의 도움을 받아 70여 명이 넘는 우운 선생 후손들의 유해봉환 동의를 이끌어냈다. 특히, 의형제를 맺은 최홍일 변호사와의 인연은 현행 캘리포니아 주법상(Ca.Health and Saf.Code7526) 묘지 이장 신청 권한은 망자의 생존하는 부모, 배우자, 형제자매로 제한한다는 유권 해석도 걸림돌이 되지 못했다.
(관련기사 :
해외 항일독립지사 문양목·문찬성 부부, '유해봉환' 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유해봉환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유족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 상임이사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만나고 또 만났다. 만나지 못하면 온라인의 힘을 빌어 접촉하고 또 접촉했다. 심지어 우운 선생의 손자이자 윌리엄 문의 차남인 브라이언 문과는 잦은 접촉 끝에 인연이 돼 의형제까지 맺으며 교감하고 설득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우운 선생 유족들의 동의는 물론 미 법원의 청원에서 승인 명령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됐다. 이 모든 것이 우운 선생의 국내 유해봉환을 향한 이수연 상임이사의 헌신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광복80주년을 맞은 역사적인 2025년 을사년에 그토록 바라던 우운 선생의 유해봉환이 현실화된 지금 이 상임이사는 이제 국가보훈정책의 방향에 대해 이렇게 바라본다. 그는 "해외에서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수많은 애국지사의 이름을 찾아내고, 자료를 모으고, 후손을 찾는 일이야말로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체계적인 조사 연구가 선행되어야 하고, 특히 해외에서 묵묵히 헌신한 무명의 영웅들을 역사 속에 되살리려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본다. 이제는 정부와 국민이 해외에 숨겨진 애국지사들을 직접 찾아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의제를 던지고 있다.
그리고, 다시 10년 만의 미국행

▲파크뷰 공동묘지에 함께 안장돼 있는 문양목 지사와 문찬성 여사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2016년 6월 촬영한 것으로, 원안에 문찬성 여사의 유해가 묻혀 있다. 파크뷰 공동묘지 관리인이 취재팀에서 설명하고 있는 모습.
김동이
이제 <태안신문>은 지난 2016년 미국 현지 취재 이후 10년 만인 광복 80주년 앞둔 8월 4일에 우운 선생의 유해가 묻힌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멘티카의 '파크뷰공동묘지'로 다시 발걸음에 나선다. 이번에는 우운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게 아닌 우운 선생을 고국으로 모시는 그 현장에 다시 서기 위해서다.
미 캘리포니아의 주법상 위생문제로 인해 비록 우운 선생 유해 파묘현장에서 그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지만 파크뷰 묘지 측의 임시 안치소에 보관된 우운 선생의 유해를 마주할 수는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리고, 광복 80주년을 앞둔 8월 13일 우운 선생의 유해가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와 서울현충원에서의 유해봉환식을 마치고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는 순간까지 그 곁을 함께 할 예정이다.
그리고 이번 미국 취재기간 동안에는 그동안 우운 선생 유해봉환이 최종 결정되기까지 미국 법원과의 치열한 법리싸움을 벌여 최종 승인명령을 이끌어내기까지 헌신한 최홍일 변호사를 만나 법정싸움 과정에서의 어려웠던 점과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이었는지를 직접 들어보고, 측면에서 우운 선생 묘소 참배를 비롯해 법정다툼에 힘을 실어 준 조현포 새크라멘토 한인회장을 비롯한 한인회원들, 그리고 임정택 주 샌프란시스코총영사관도 관심을 보인 바 있는 리들리 독립운동 거리도 찾아 우운 선생 비석 건립에 대한 가능성도 타진해 볼 예정이다. 이에 더해 리들리에서 열리는 광복 80주년 기념행사에도 참석해 한인들의 뜨거운 조국애도 몸소 느껴볼 참이다.

▲문양목 지사와 문양목평전 미국 멘티카의 파크뷰 공동묘지에 잠들어 있는 우운 문양목 지사의 유해가 고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광복 80주년을 맞은 을사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사진은 지난 2016년 6월 <태안신문> 취재팀이 우운 선생 묘소를 찾아 문양목 평전을 바쳤다.
김동이
특히, 국내 유해봉환에 앞서 샌프란시스코 한인회가 주관하는 추모의례와 샌프란시스코 공항까지의 퍼레이드에도 참여해 독립운동에 일생을 바쳤던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120년 만에 그리운 고국으로 향하는 우운 선생을 추모하고 배웅한 뒤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다시 마주하면서 고국에서의 영원한 안식을 마음 속 깊이 기원해 줄 생각이다.
우운 선생의 국내 유해봉환에 발맞춰 태안군에서도 (사)우운문양목선생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독립지사 우운 문양목 선생 유해 귀국 환영식'이 12일 전야제와 13일 서울현충원 추모식에 이은 고향 태안군 남면 몽산리의 선생 생가지에서 추모제를 갖고 국립대전현충원의 유해 안장식까지 함께 하며 예우를 다할 예정이다.
남은 과제는
<태안신문>의 미국 현지취재 이후 10년간의 지속적인 보도와 관심, 그리고 이후 이수연 상임이사의 10년간의 미국과 태안을 오가는 헌신적인 발품이 이루어낸 우운 문양목 선생의 120년 만의 역사적인 고국으로의 귀환.
이제부터는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모셔 온 이상 후세를 위한, 그리고 고향 태안의 자랑스런 애국지사로서의 선양사업에 민·관이 힘을 모아야 할 때다. 필요하다면 '유관순상' 처럼 '옥파상'이나 '우운상'을 제정해 태안군민의 정체성을 드높이는 기회로 삼는 것도 충절의 고장 태안의 후손들이 해야 할 역사적인 사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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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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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80주년 맞아 120년만에 고국으로... 우운 문양목 지사 13일 국립묘지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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