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wish-museum 유대인박물관-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년 만에,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 독일 연방정부가 건립했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시각적으로 제도화한 상징적 행동이었다.
Levi_7 (pixabay)
기억, 다짐, 사죄
베트남 하미 마을, 빈호아 마을, 퐁넛 마을의 민간인 희생자에게 사죄하는 상징물이 한국에는 아직 없다. 얼마나 서러우면, 빈호아에는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가 기억하리라"라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을 정도다. 2019년, 영국의 한 시민단체가 런던에 '라이 따이한' 문제를 고발하는 상징물을 세우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공적 무관심은 기억을 지우려는 무책임한 만용이다.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은 베트남 유가족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한국 법원 최초의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인정' 판례가 되었다. 그 유족의 마음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답답해하는 심정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기억'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에 인색했다.
국가는 애도의 형식을 설계할 책임이 있음에도, 종종 슬픔을 통제하려 들고, 책임을 비껴가며, 고통의 주체를 비가시화하려 든다. 고통이 기록되지 않는 사회는 더 큰 비극을 잉태한다. 기억이 구조화되지 않으면, 공적 애도는 흩어진 눈물로 사라진다.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국가가 침묵으로 폭력을 봉인하는 것이 된다.
국가는 역사적 오류를 기억해야 하고, 시민은 묵시적 자각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베를린 추모비가 가진 의미다. '기억하기는 회피할 수 없는 의무다. 그 의무는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시작이다'라고 여전히 일어나는 폭력에 관해 이 추모비는 일침을 가한다. 기억은 상대방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성립한다. 독일이 '타인을 향한 사과'의 구조를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은 '우리의 슬픔'에만 집중해왔다.
일본이 조선 침탈을 반성하지 않을 때, 우리 영토를 부정할 때, 징용피해자 배상을 외면할 때, 정치인이 신사를 참배할 때, 우리는 늘 분노한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에는 여전히 우리가 베트남전 희생자를 기억하려는 단 하나의 표식조차 없다. 우리가 타인에게 가한 고통을 반성하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과받을 일과 사과할 일이 겹친 채, 해방 80년과 베트남 종전 50년이 지났다. 우리는 무엇을 반성했고, 무엇을 후세에 가르치고 있는가. 슬픔을 공적 상징으로 세우지 않으면, 국가 윤리는 덕목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우리가 먼저 피해자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도덕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것이 국가다움의 출발이며, 기억의 정치가 성숙해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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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중부일보 [주용수 칼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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