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80년, 이재명 정부가 기억해야 할 일

해방 80년과 베트남 종전 50년... 우리가 반성해야 하는 것

등록 2025.08.04 09:46수정 2025.08.0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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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해방

미국(1776), 인도(1947), 필리핀(1946), 베트남(1945)의 경우처럼, 독립은 스스로 정치적 자유를 쟁취함으로써 인정받는 지위다. 반면에 해방은, 지배국의 자멸로 인해 어두운 시기에서 풀려났다는 소극적 의미를 띤다고 볼 수도 있다. 해방의 타율성은 우리 사회의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구조적 영향을 끼쳤다. 자강보다 의존에, 진실보다 침묵에 익숙해져, 자율성 결핍과 자기반성의 미숙함을 드러낸 것은 아닐까.

역사의 무덤은 죽인 자보다, 잊은 자의 것이다. 망각은 윤리를 부식하는 가장 저열한 범죄다. 무엇을 위해 국가가 침묵하는가. 기억은 누구의 것인가. 유족의 슬픔인가, 국가의 성찰인가, 아니면 공동체의 다짐인가.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픈 과거는 언제나 고통스럽다. 그래서 권력은 종종 그것을 지우려 들거나, 서랍 속 깊숙이 봉인한다.

국가는 '기억'을 보존할 책임이 있다. 사과만으로는 부족하며, 제도와 상징으로 그 책임을 증명해야 한다. 희생자를 향한 추모는 과거에 대한 감상이 아니라, 오늘의 '인간'됨을 묻는 실존적 질문이다. 반성 없는 기념은 공허하고, 의미 없는 책임은 소멸한다. 국가가 그 책임을 외면할 때, 시민이 깨어나 그 회피를 무겁게 질타해야 한다.

많은 국가가 여전히 과거의 오류에 침묵하거나, 선택적으로 기억한다. 투명해야 할 사죄가 때로는 연극이 되고, 상징은 각성이 아니라 망각의 구조물이 된다. 기억은 기록을 넘어 형식 속에 담은 양심의 표현이다. 그 양심이 상징적 형태가 될 때, 우리는 비로소 공동체의 도덕을 마주하게 된다.

기억을 감추는 권력은 미래를 회피하는 권력이다. 그 회피는 언젠가 더 잔혹한 얼굴로 되돌아온다. 이념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라, 기억으로부터의 독립이 꼭 필요하다. 그 독립은 우리가 어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제도화하는가에 달려 있다.

berlin 베를린 추모비는 형태 없는 죽음을 추념하며, 지워진 생명의 흔적을 감지하게 한다. 표식 없는 기념비는 익명성과 추상성으로 더 깊은 보편적 성찰을 유도한다.
▲berlin 베를린 추모비는 형태 없는 죽음을 추념하며, 지워진 생명의 흔적을 감지하게 한다. 표식 없는 기념비는 익명성과 추상성으로 더 깊은 보편적 성찰을 유도한다. Kyrios Kyriakos(pixabay)

희생자 추모비


베를린 중심부 '유럽 유대인 학살 희생자 추모비'는 역사적 책임, 집단 기억, 미학적 실존을 아우르는 상징적 공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년 만에,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 독일 연방정부가 건립했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시각적으로 제도화한 상징적 행동이었다.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설계한 2711개의 직육면체 콘크리트 기둥은 격자 형태로 광장에 배치되었다. 기둥의 크기는 일정하지 않으며, 높이와 기울기도 서로 다르다. 관람자는 내부에 들어가 기하학적 혼돈과 고립, 방향 감각 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이곳은 몸으로 기억을 통과하게 하는 체험 공간이다. 감정은 차갑게 변하고, 깊은 침묵 속에서 관람자의 내면이 흔들리게 된다. 기둥 사이를 걸을수록 햇빛이 차단되며, 위압감을 더 느끼고, 발걸음이 느려지도록 설계했다.


베를린 추모비는 형태 없는 죽음을 추념하며, 지워진 생명의 흔적을 감지하게 한다. 표식 없는 기념비는 익명성과 추상성으로 더 깊은 보편적 성찰을 유도한다. '누가 죽었는지, 왜 죽었는지, 어디서 죽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관람자 스스로 갖게 한다. 공원의 지하 공간에는 학살의 역사, 피해자의 증언을 전시하여, 기념과 기록, 사유와 교육을 연결한다.

jewish-museum 유대인박물관-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년 만에,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 독일 연방정부가 건립했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시각적으로 제도화한 상징적 행동이었다.
▲jewish-museum 유대인박물관-제2차 세계대전 종전 60년 만에, 유대인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2005년 독일 연방정부가 건립했다. 국가의 역사적 책임을 시각적으로 제도화한 상징적 행동이었다. Levi_7 (pixabay)

기억, 다짐, 사죄

베트남 하미 마을, 빈호아 마을, 퐁넛 마을의 민간인 희생자에게 사죄하는 상징물이 한국에는 아직 없다. 얼마나 서러우면, 빈호아에는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가 기억하리라"라는 한국군 증오비가 있을 정도다. 2019년, 영국의 한 시민단체가 런던에 '라이 따이한' 문제를 고발하는 상징물을 세우는 동안, 우리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공적 무관심은 기억을 지우려는 무책임한 만용이다.

한국군에게 가족을 잃은 베트남 유가족이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서울중앙지법은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다. 한국 법원 최초의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인정' 판례가 되었다. 그 유족의 마음은, 우리가 일본에 대해 답답해하는 심정과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기억'의 자리에 올려놓는 일에 인색했다.

국가는 애도의 형식을 설계할 책임이 있음에도, 종종 슬픔을 통제하려 들고, 책임을 비껴가며, 고통의 주체를 비가시화하려 든다. 고통이 기록되지 않는 사회는 더 큰 비극을 잉태한다. 기억이 구조화되지 않으면, 공적 애도는 흩어진 눈물로 사라진다. 유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국가가 침묵으로 폭력을 봉인하는 것이 된다.

국가는 역사적 오류를 기억해야 하고, 시민은 묵시적 자각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 베를린 추모비가 가진 의미다. '기억하기는 회피할 수 없는 의무다. 그 의무는 인간다움을 되찾기 위한 시작이다'라고 여전히 일어나는 폭력에 관해 이 추모비는 일침을 가한다. 기억은 상대방의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성립한다. 독일이 '타인을 향한 사과'의 구조를 만들었다면, 대한민국은 '우리의 슬픔'에만 집중해왔다.

일본이 조선 침탈을 반성하지 않을 때, 우리 영토를 부정할 때, 징용피해자 배상을 외면할 때, 정치인이 신사를 참배할 때, 우리는 늘 분노한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에는 여전히 우리가 베트남전 희생자를 기억하려는 단 하나의 표식조차 없다. 우리가 타인에게 가한 고통을 반성하는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사과받을 일과 사과할 일이 겹친 채, 해방 80년과 베트남 종전 50년이 지났다. 우리는 무엇을 반성했고, 무엇을 후세에 가르치고 있는가. 슬픔을 공적 상징으로 세우지 않으면, 국가 윤리는 덕목의 가장자리로 밀려난다. 우리가 먼저 피해자 앞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면, 누구에게도 도덕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 그것이 국가다움의 출발이며, 기억의 정치가 성숙해지는 길이다.
#유대인박물관 #추모비 #베트남전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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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국립대학교 명예교수 -중부일보 [주용수 칼럼] 오피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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