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쇄원 나무다리. 고향의 자연은 스승을 잃은 소년 양산보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임영열
설상가상 그해 겨울 조정에서는 피바람이 불었다. 이른바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개혁의 아이콘이었던 스승 조광조를 제거하기 위해 훈구파들과 국왕 중종이 합작해서 일으킨 '친위 쿠데타'였다.
하루아침에 역적이 된 조광조는 전라도 화순 능주로 유배의 길을 떠난다. 제자 양산보도 스승을 따라 낙향한다. 그리고 한 달 후 중종으로부터 사약이 내려온다. 조광조는 한 편의 절명시를 남기고 38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다.
양산보는 눈물을 삼키며 7촌 당숙이며 조광조의 절친인 양팽손과 함께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스승의 시신을 거뒀다. 그런 다음 지실마을로 돌아와 세상 모든 일과 인연을 끊고 '자연의 낙원'을 건설한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양산보의 낙원 건설은 40대에 이르러 원림의 모습을 갖춘다. 성산에서 내려와 오곡문 담장 밑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은 작은 폭포가 되어 연못으로 모인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봉황을 기다린다는 대봉대와 생활공간인 제월당, 사랑방 역할을 하는 광풍각을 앉혔다.
뜻대로 되지 않은 세상살이에 반해 고분고분한 고향의 자연은 양산보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소쇄처사 양산보는 55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지옥과 같은 정치판은 거들떠보지 않고 이곳에서 처지가 비슷한 문사들과 교유하며 진짜 유토피아를 꿈꿨을 것이다.
② 욕망의 그림자가 쉬어 가는 곳 '식영정'

▲ 광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성산의 끝자락 언덕에 그림자가 쉬어 간다는 식영정이 다소곳하게 앉아 있다. 식영정은 서하당 김성원이 장인 석척 임억령을 위해 지은 정자다
임영열

▲ 식영정 현판
임영열
조광조가 억울하게 죽고 26년이 지난 1545년 을사년. 조정에서는 또 피바람이 분다. 을사사화가 터졌다. 조선 12대 왕 인종이 왕위에 오른 지 8개월 만에 갑자기 승하했다. 문정왕후의 아들 경원대군이 11살의 나이로 대권을 잡는다. 그가 조선 13대 왕 명종이다.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던 문정왕후는 친동생 윤원형에게 밀지를 내린다. 전임 왕이었던 인종의 외삼촌 "윤임 일당을 깡그리 제거하라"는 명이었다. 윤임과 윤원형은 피 터지게 싸웠지만 두 사람 다 경기도 파평을 본관으로 한 파평 윤씨들이다. 윤임 일파를 '대윤' 윤원형 일파를 '소윤'이라 칭했다.
윤원형은 대윤파 윤임을 따르던 기라성 같은 호남 선비들을 죽이거나 귀양 보낸다. 이를 피해 또 한 사람의 선비가 낙향한다. 충청도 금산에서 군수로 재직하던 석천 임억령이다. 이때 윤원형의 오른팔 노릇을 했던 호조판서 임백령은 임억령의 친동생이다.

▲ 서하당이 장인을 위해 식영정을 지을 때 자신의 호를 따 서하당과 부용당을 함께 지었다. ‘서하당은 노을이 머무는 집’이라는 뜻으로 석천이 사위 김성원에게 지어준 호다
임영열
임백령은 소윤 윤원형의 주구가 되어 대윤 윤임 일파 선비들을 무참히 숙청한다. 또한 임억령에게 윤원형의 소윤파에 설 것을 권유한다. 형 억령은 동생 백령에게 "제발 피바람을 일으키지 말라"라고 당부하지만 권력에 눈먼 백령은 형의 말을 듣지 않는다.
이에 형 억령은 "잘 있거라 한강수야 평온하게 흘러 파도 일으키지 마라"라는 시조 한 수를 남기고 담양 성산 계곡으로 들어와 은거하며 후학들을 양성한다. 이때 운명의 제자 김성원(1525~1597)을 만난다. 임억령은 김성원에게 '서하(棲霞, 노을이 머무는 곳)'라는 아름다운 호를 지어주고 딸과 결혼시켜 사위로 삼는다.
김성원은 장인을 위해 정자를 짓고 장인은 정자 이름을 짓는다. 그림자가 쉬는 곳이라는 뜻으로 '식영정'이라 하고 <장자>의 '제물편'에 등장하는 '그림자를 두려워하는 사람'의 우화에서 유래했다고 기록해 놓는다. 나무 그늘로 들어가면 사라질 그림자를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다 쓰러진 바보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림자는 '세속적 욕망'의 다른 이름이다.

▲ 정철은 이곳 식영정에서 <성산별곡>을 지었다, 식영정 뒤편에 있는 성산별곡 시비
임영열
석천은 이곳 성산 근처의 풍경을 묘사한 <식영정 이십영>을 지었다. 제자 김성원과 고경명, 정철이 차운하여 80여 편의 연작시가 탄생한다. 송강 정철은 식영정 이십영을 모티브로 가사문학의 백미 <성산별곡>을 짓는다.
가사문학관과 붙어있는 성산의 나지막한 언덕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식영정(息影亭)에서 임억령은 지옥과도 같은 세속적 욕망의 그림자를 내려놓고 진정한 '유토피아'를 누렸을 것이다.
③ 송강 정철이 10년 간 '열공'한 광주 환벽당

▲ 담양과 광주를 가르는 충효교를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환벽당이 서로 마주하고 있다. 환벽당은 사촌 김윤제가 낙향하여 지은 정자로 ‘푸르름에 둘러 싸인집’이라는 뜻이다. 송강 정철은 이곳에서 10년 동안 열공해서 과거에 급제했다
임영열
가사문학관에서 충효교 다리를 건너면 광주 환벽당이 있다. 광주호 상류를 이루는 증암천을 사이에 두고 식영정과 마주하고 있다. 환벽당은 '푸르름으로 둘러 싸인 집'이라는 뜻으로 광주 충효리에서 태어난 사촌 김윤제(1501∼1572)가 고향으로 낙향해 지은 정자다.
사촌은 호남 의병장으로 유명한 김덕령 장군의 증조부다. 나주 목사와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던 중 을사사화가 터지자 관직을 버리고 낙향, 식영정이 마주 보이는 언덕에 환벽당을 짓고 후학을 양성한다.
식영정의 주인 석천 임억령에게 제자 김성원이 있다면 환벽당 주인 김윤제에게는 송강 정철이 있다. 사촌과 송강의 만남 또한 드라마틱하다. 환벽당으로 가는 창계천을 따라 걷다 보면 한쌍의 늙은 소나무와 물에 잠겨있는 바위를 만난다. <성산별곡>에서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조대 쌍송'이다.

▲ 푸르름으로 둘러 싸인 집 환벽당
임영열

▲ 현판은 우암 송시열의 글씨다
임영열

▲ 정자 마루에서 내려다본 환벽당 원림의 풍경
임영열
이곳에서 사촌과 송강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다. 송강은 서울 명문가 집안의 '금수저'로 자랐으나 을사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 10대 시절 아버지의 유배지를 따라다니며 불우한 시기를 보낸다. 그러던 중 아버지의 사면이 이뤄져 할아버지의 묘소가 있는 담양 창평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었다.
요즘처럼 무더운 어느 여름날 16살 송강은 이곳 조대 용소에서 멱을 감고 있었다. 이때 환벽당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사촌의 꿈에 용소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용 한 마리가 보였다. 꿈에서 깬 사촌이 용소에 가보니 비범하게 생긴 소년이 물속에 있었다.
사촌은 송강의 영특함을 알아차리고 제자로 삼았다. 16살에 들어와 27살에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갈 때까지 11년 동안 환벽당에 머무르며 공부했다. 송강은 이곳에서 임억령, 김인후, 기대승, 송순 등 기라성 같은 스승들을 만나 학문과 시를 익혔다. 사촌은 송강을 외손녀 사위로 삼았다.

▲ 사촌과 송강이 운명적으로 만난 조대 용소. 470여 년 전 지금처럼 무더운 어느 여름날 이곳에서 멱을 감고 있던 소년 정철과 사촌이 만났다
임영열
훗날 정치판에 뛰어든 송강은 정여립 모반사건 일명 '기축옥사'의 수사본부장이 되어 수많은 호남 선비들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다. 이 사건은 조선 최대 미스터리 정치 공작으로 호남인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연일 지옥 같은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송림 우거진 무등산 자락의 정자에서 잠시 쉬면서 옛사람들의 풍류와 함께 진짜 유토피아를 꿈꿔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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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문화재단 문화재 돌봄사업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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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간 조선시대 선비들이 지옥에서 만들어낸 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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