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시민참여형 구술 <참전군인을 만나러 갑니다>의 현장 아카이브평화기억의 회원들이 참전군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아카이브평화기억
국가는 전쟁 동원을 위하여 무엇을 했나
한국은 해방 후인 1949년 병역법을 제정하여 징병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한국전쟁 시기부터 본격적인 징병제를 시행하였다. 베트남전쟁 파병이 시작된 시기(1964년, 전투부대 파병은 1965년)는 한국전쟁이 끝난 지 10여 년이 된 시점이며, 전후 복구가 한창인 때였다. 징집 인원 세 명 중 한 명만이 군대에 가던 그 시절에 한 해 최대 5만 명의 병력을 베트남에 주둔시키기 위한 전쟁 동원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참전국 병력 현황 한국 1966년 45,065명/1967년 48,839명/1968년 49,869명/1969년 49,755명/1970년 48,512명/1971년 45,663명/1972년 37,438명 <파월한국군전사10> 528쪽 각종 통계) 어디에도 동원된 숫자만 남아있을 뿐 그들이 어떤 과정 속에서 전장에 갔는지 알 수 없다.
참전군인과 만나며 전쟁터로 가는 과정을 확인하였다. '왜 전쟁터에 가게 되었습니까?', 전쟁터로 가게 된 배경을 질문했을 때 돌아오는 답변에는 명령에 의한 강제 '차출'과 자발적 '지원'이라는 두 단어가 갖는 원래의 의미로만 해석할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자발성을 모호하게 만드는 국가적인 선전 선동과 전쟁 동원에 따르는 인센티브(돈, 진급과 가산점, 기회)가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 전 국가적인 전쟁 동원 체제 속에 청년들은 전장으로 갔다. 분단 상황과 미군 부대 철수, 휴전선 일대 남과 북의 충돌로 인한 안보 불안은 월남 소식과 함께 대한늬우스와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이념전쟁'이라는 인식 속에 공산주의에 저항하는 자유의 십자군으로서 국군을 표상하고, 대대적인 국민적 동원 에 의한 화려한 환송식과 환영식은 프로파간다의 대미를 장식했다. 그 시절 한국 사회에는 월남전에 대한 넘쳐나는 동원 체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춥고 배고픈 군대가 힘들어 차라리 월남이나 가지' 하는 마음으로 전쟁에 갔다는 이야기를 빈번하게 만난다. 사고치고 영창에 가지 않으려고 월남에 갔다는 이야기, 상관에게 밉보여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1965년 해병 제2여단(청룡부대)이 전체 차출로 월남에 간 사례를 제외한 대부분의 월남행은 '자발적' 형식을 띄거나, 군대의 '명령'에 따라 간 것으로 되어 있다. 실제로 진급하기 위해서 혹은 돈을 벌고자 지원을 했다는 이들도 만난다.
병사들이 월남에 가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자발'이라는 형식에 어떤 강제적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지 들여다봐야 한다. 사회와 군대의 여러 작용 속에 월남으로 가는 형식적 '지원'은 현재까지 참전군인에게 전쟁 동원에 대한 저항을 갖지 않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을 것도 같다. 사회적 반대 여론을 잠재우는 역할도 했을 것이다. 때문에 이 시기 수많은 병사를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어떤 강제와 부조리가 작동했는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강제로 전장에 간 사례를 비롯해 파병을 거부해 벌어진 사건, 사고 등 베트남 전쟁과 관련한 다양한 사례도 확인해 보아야 한다. 베트남 전쟁 시기 국내외 군대에서 일어난 중요사건보고서 등 헌병대 수사 기록, 군 재판 기록, 군형법에 의한 처벌 사례 등을 토대로 군대에서 일어난 베트남 전쟁 파병, 귀환 등과 연결된 사망, 사고, 부조리 등을 조사해야 한다.
<파월한국군전사10>에 따르면, 재판 사건 형기별 처리 현황 사형 42명, 무기 11명 등 총 1,380건 / 징계처리 현황 중징계 154건 경징계 11,922건(영창, 근신, 견책) 영창이 6.716건 등 무수히 많은 사건처리 현황이 확인되고 있으나, 해당 사건은 죄명만 기재하고 있어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다. 향후 위원회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이에 대한 관심과 규명이 필요하다. 베트남전쟁에 특화된 진상조사위원회가 반드시 운영되고 규명해야 할 여러 과제가 존재한다.

▲파월한국군전사 10권 참전국 병력 현황
국방부
전장의 죽음과 실종자들
참전군인이 말하는 전장의 상황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기도 하다. 늘 총과 무기를 다루다 보니 사고도 잦다. 고국으로 귀환하며 조금이나마 돈을 벌려는 욕심에 목숨을 잃는 허망한 일도 있다. 훈련을 받다가, 전투와 작전이 아닌 상황에서도 죽음은 늘 곁에 있었다. 한국군 포로와 실종자에 대한 의혹은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정부의 문제해결과 입장 표명 없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귀환하지 못한 이들에 대한 의혹도 진상규명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또한 50년 전 치른 전쟁이 청년들의 삶에 어떠한 비극으로 자리하고 있는지 바라봐야 한다.
이 법안은 베트남 전쟁 시기 대한민국 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및 파병군인에 대한 인권침해 실태를 규명하기 위한 조사 기구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진실 규명과 평화적 미래를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위원회를 통해 이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등 수많은 피해와 파병군인에 대한 위법, 현저히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 또는 국가보호의무 불이행으로 발생한 베트남 전쟁과 관련된 자살·자해·정신질환, 전쟁후유증 등 그 밖의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해 나가도록 하고 있다.
1940년대에 태어난 참전군인은 현재 80대 전후의 나이로, 국가보훈부 통계에 의하면 총 17만여 명(국가보훈부 참전유공자 등록 현황, 2024년 4월 기준 172,385명/6.25와 월남 참전 중복 인원 제외)이 생존해 있다. 이 숫자는 해마다 5천여 명씩 줄어들고 있으며, 그 규모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더 늦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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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현장에서 평화운동을 하며 베트남전쟁에 연루되어온 활동가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평화박물관, 한베평화재단 등에서 일했다. 아카이브평화기억을 만들었고 베트남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연구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책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 공저 <전쟁에 동원된 남자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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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은 왜 먼 나라에 가서 총을 들고 싸워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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