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상하이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학회에서 발표하는 고태은 연구자.
고태은 제공
- 연구활동도 노동운동과 관련을 지어서 하고 계시죠. 소개 부탁드려요.
"석사는 쌍용자동차 해고 가족 경험 연구를 했어요. 20대 초반에 해고노동자들의 가정이 무너지고 자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팀에서 잠시 활동했는데, 마무리를 잘 못하고 나온 게 부채감으로 남아 있었어요. 대학원에 가게 되면서 이런 고민들을 다시 풀어내게 된 거죠. 그렇게 해고노동자 연구를 하겠다고 대학원에 들어갔다가 아까 말한 상근을 하게 됐어요. 그걸 하면서 해고노동자 당사자보다는 아내의 경험 연구를 해야겠다는 걸 느꼈죠. 그 이후에도 산재 가족 경험 연구, 트랜스젠더, 장애인 노동 경험 연구 같은 걸 주로 했고 지금은 좀 더 제도적인 논의에 집중하는 중이에요."
-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동을 연구하기도 하잖아요. 운동과 연구의 언어가 서로 보완이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저한테는 그 둘을 나눠서 한 경험을 다른 경험에 끌어 쓰는 개념은 아니에요. 저는 공부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운동적인 목적이 없으면 연구를 하지 않고요, 사회적 의미가 없는 학습을 하는 것 자체를 좋아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활동연구자가 아니라 연구활동가잖아요. 저는 제가 활동가 정체성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 여러 활동을 하게 하는 동력이 있나요? 운동도 공부도 꾸준히 할 수 있게 만드는.
"10년 가까이 운동을 해오다 보니까, 제가 이유와 전망을 찾을 수 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는 나름의 원칙이 세워졌어요. 저는 20대 초반부터 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내 운동'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어요.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군지 명확히 알고, 내가 뭘 원하는지,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됐죠. 그게 저를 살아남게 했던 것 같아요.
이건 제가 학교 밖 청소년이 되면서 불가피하게 거치게 된 과정인 것 같기도 해요. 언제나 어딘가에 온전히 속해 있지 않은 경계인으로 살아오면서 모든 걸 내가 다 결정하고 내가 선택해야 했거든요. 저는 학교를 관둔 지 6개월 이내에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사실조차 몰랐어요(웃음). 그렇게 1년 뒤에 검정고시를 보고 나서 대학 진학부터 늦춰지는 경험을 하면서 내가 다 책임져야 하면서도 내 조건 안에서 내가 최선의 선택을 했으면 된 거구나 하는 마음가짐이 생겼죠."
- 4개월간의 탄핵 광장에서 인상에 많이 남았던 장면을 하나 꼽는다면.
"아무래도 남태령이죠. 1차 남태령 때는 현장에 있지 못했는데, 사람들한테 계속 외면당하지만 거리에서 싸워야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우리는 박근혜 탄핵 때 이미 경험을 해봤잖아요. 남태령 이전에도 저는 사람들한테 광장 이후에 대해 얘기하고, 지금의 광장을 넘어서 현장으로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계속 했었어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했던 사람들이 특히 넘어올 때 느끼는 해방감과 시너지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거죠. 그런데 남태령을 지켜보면서 그게 실제로 가능한 일이라는 걸 알게 돼서 감동적이었어요."
- 다양한 현장에 연대하는 과정에서 소위 '말벌 시민'들과도 함께하는 경험이 더 늘어나고 있을 것 같아요. 활동가 고태은은 말벌 시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도 궁금해요.
"사회적으로 억압받고 차별받으면서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광장은 운동의 공간을 만나게 해주는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믿는 가치를 바깥으로 외치면서 바꿔나가는 경험을 함께 해나간다는 게 얼마나 해방감을 주는지 저는 잘 알거든요. 말벌 동지들도 그랬으면 했어요. 남태령 이후에 있었던 행사에서 '투쟁 현장에 가서 만나는 이들은 당신들이 어려움을 겪었을 때 가장 잘 싸워주고 방법을 같이 찾아줄 사람들이다'라는 얘기를 했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저는 새로운 연대자들을 받아들일 준비를 함께하자고 현장의 동지들에게도 말했던 거고요. 그렇게 해서 평등수칙 등 다양한 것들이 새롭게 마련됐죠."

▲ 무지개조선소의 평등수칙을 읽고 있는 고태은 활동가
고태은 제공
- 실제로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거통고) 조선하청지회가 열었던 한화오션 투쟁 문화제에서 성중립 숙소의 중요성을 호소하셨던 것도 태은님이었잖아요.
(관련 기사) 그게 트위터에서 꽤 화제가 됐었죠.
"거제에서 싸우고 있는 거통고 동지들이 남태령의 말벌 동지들을 초대하고 싶어 했어요. 당시 트위터로 홍보를 해서 그곳에 왔던 분들 중에 퀴어가 많아 보이는 거예요. 처음에는 노숙할 생각을 했는데 그날 한파가 너무 심해서 숙소 고민을 하게 된 거였는데요, 숙소도 마침 3개니 각각 여성과 남성이 쓰고, 나머지 하나를 성중립 숙소로 마련하라고 말했죠. 거통고지회의 이김춘택 동지가 굉장히 감수성이 좋은 분이라, 깊게 고민할 거 없이 그렇게 결정이 바로 됐죠."
- 새 정부 들어서서 대통령의 노동 행보가 화제가 되고 있잖아요. 이재명 정부와 노동운동이 관계 맺는 방식은 어때야 할까요?
"정치적으로 보이는 대통령의 행보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계급적인 문제라고 생각해요. 노조법 2,3조 개정운동도 결국 개정은 되겠지만 너무 아쉬운 점이 많거든요. 그 법을 가지고 현장에서 어떻게 싸워 나가야 할지도 고민이 많고요. 물론, 지금 600일 가까이 고공에 박정혜 동지가 있고, 고진수 동지도 폭염에 고생하고 있는 이 시점에 이런 문제들을 최대한 빨리 해결하는 건 너무 필요하죠. 이런 곳에는 조금의 변화도 아쉬운 게 사실이지만, 타협적인 운동을 계속 고민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힘이 없으면 투쟁을 해도 타협이 되고 대화를 해도 타협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저임금위원회만 봐도 사회적 대화를 통해 합의한다고는 하지만 실제 노동자들이 원하는 만큼 오르진 않잖아요. 우리가 힘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들어가서 대화를 하면 타협밖에 안 되는 거예요. 결국, 현장 단위에서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게 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상황이고요."
- 마지막 질문입니다. 연구활동가 고태은이 지금 주목하고 있는 연대의 현장을 소개해주세요.
"크게 세 가지 현장을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제가 지금 활동하고 있는 쿠팡 대책위, 이주노동자 차별철폐네트워크, A학교 공대위 이렇게 셋이요. 쿠팡은 기술적으로 노동자들을 많이 통제하고 있는 어려움이 있지만, 물류센터의 현장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고 투쟁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데 많은 관심이 필요해요. 이주노동자들 역시 어떻게 민주노조운동 안에서 그들을 조직해내고 함께 투쟁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A학교 공대위는 학내 성폭력 사안을 제보 받고 함께 대응하던 지혜복 교사가 부당전보되고 해직까지 된 사안이에요. 공대위는 규모가 작지만 많은 이들과 연대하면서 원칙적인 투쟁을 하고 있어요. 학교폭력과 성폭력을 당하고 부당함을 겪은 수많은 이들과 함께 옳은 길을 가는 투쟁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 가지 모두 저에겐 중요한 문제여서, 제 고민을 계속 녹여가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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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은 보험이나 자판기 용도의 조직만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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