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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 12개 기술자, 성실하고 솜씨 좋아 당했다... 잔혹한 사람장사

[그날, 김충현을 집어삼킨 건 무엇이었나 ①] 김충현을 비껴간 힘, 김충현을 누른 힘

등록 2025.08.08 10:10수정 2025.08.08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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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발전소 노동자였던 김충현을 살게 만들 수 있었던 힘이 김충현을 비껴갔던 이유, 또 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인 김충현을 누르는 힘이 무엇이었는지 그 힘은 어디서 온 것인지 질문하는 글이다.[기자말]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지난달 6일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유족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지난달 6일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진행됐다. 고인의 유족이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소중한

[김충현을 누른 힘] 그의 유별난 노력과 기술

석탄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은 새벽 6시면 출근길에 올랐다. 몇 해 전 홀로 계신 어머니와 함께 살기 위해 충남 보령으로 거처를 옮긴 뒤로, 발전소까지 출근하는 데 족히 1시간이 넘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찍 출근한 곳은 태안화력발전소에 위치한 공작설비동 건물. 건물 안에는 여섯 대의 선반기계류들이 널려있고, 그사이에 작은 책상이 놓여있다. 김충현은 그곳에 앉아 하루의 업무가 시작되기 전에 작업 계획을 세우고, 어제 못다 읽은 책의 페이지부터 독서하고, 자격증 시험공부를 했다.

그가 생전에 딴 12개의 자격증은 무엇을 위한 노력이었을까. 발전소의 가장 끝단 2차 하청의 지위에서 벗어나고 싶은 악착같은 생의 의지였을까. 발전소 폐쇄를 앞둔 고용불안을 어떻게든 이겨내기 위한 김충현 개인의 노력이었을까.

실제 그는 발전소 폐쇄의 불안을 가지고 있었고, 2차 하청으로서 겪는 원청의 갑질과 부당한 노무비 착복에 한편으로는 순응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세게 반발했다. 친하게 지내는 한전KPS 반장들에게 자신의 부당한 처지에 대해 호소하고,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소구했고, 새로운 하청업체 사장이 임금을 깎자 이에 반발해 해고되기도 했다. 그럴 때도 그는 자격증을 악착같이 따냈다.

그러나 그의 오랜 고향친구들과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는 어렸을 때부터 기계 만지는 걸 좋아했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고향 친구 앞에서는 크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지만 내심 죽은 자에 대한 미화된 회고이려니 했었다.

그의 휴대폰의 통화내역을 포렌식한 자료를 받고, 수십만 건의 카카오톡과 문자내용을 살펴보고야 알았다. 기계 조각을 이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카카오톡 대화내역에는 어떤 기계에 대한 끊임없는 대화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어느 기계대회에 대한 흥분된 그의 참관기, 자격증을 따냈을 때의 성취감, 주변인들은 그에게 생활에 필요한 기계제작을 종종 의뢰했고, 그는 그걸 마다하지 않았다.


그에게 발전소 2차 하청과 발전소 노동자는 매우 다른 정체성이었다. 공작실은 그의 세계다. 어린 시절부터 기계부품을 만져왔던 꿈이 실현되는 곳. 근대자본주의가 성립한 이윤과 착취의 원천인 '임금노동'이 아닌, 공작인(homo faber)으로서 김충현이 그곳에 있었음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반면 공작실은 서부발전이 소유하고, 한전KPS가 형식적으로 '임대'해 사용한 소유주와 사용자가 분리된 곳이다. 그곳에서 김충현이 지닌 '공작인'으로서의 성실함과 기술력은 과잉착취의 좋은 토양이 됐다.


선반기계류는 보통 '1인 1선반'이 기준이다. 한전KPS 측에서 우원식 국무총리가 사고 현장을 방문했을 때 '2인1조가 어려운 작업'이라고 말한 것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공작실에는 6대의 선반기계류가 있었고, 한전KPS 측의 말대로 하자면 여섯 명의 인력이 배치돼야 했다. 그렇지만 공작실엔 김충현 혼자 근무했다. 다른 제조업체의 '공작설비실' 현황을 알아보았다. 다른 사업장에는 11대의 선반기계류가 있었고 투입인력은 13명이었다. 1인 1선반이 가능하도록 2명의 여유인력이 더 배치되고 있는 셈이다.

김충현은 그의 고급 기술들에 가둬졌다. 단 하나, 4년제 대학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로 그의 기술력은 가치절하됐고 그는 그럴수록 더 많은 자격증을 따려고 했는지 모른다. 그의 성실함과 기술력을 이용한 원청은 그에게 더 많은 무리한 작업을 하게 했다. 원-하청의 수직적인 위계는 '솜씨 좋은' 김충현을 더 세게 눌렀다. 과도노동은 그를 항시적인 위험에 빠트렸을 것이지만 2025년 6월 2일은 억세게 운이 나빴다.

[김충현을 비껴간 힘] 근로기준법과 김용균 특조위 권고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지난 6월 6일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진행됐다. 6년 전 태안화력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단상 위 고인의 영정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추모문화제가 지난 6월 6일 오후 3시 서울역 12번 출구 앞에서 진행됐다. 6년 전 태안화력에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이 단상 위 고인의 영정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소중한

근로기준법 제9조는 중간착취를 금지하고 있다.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 사람장사를 법으로 금지한 법률은 신자유주의 하에서 사람장사를 허용하는 법적 근거가 됐다.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이라는 조항은 "법률에 따르면" 중간착취를 가능하도록 해, 파견법에 따른 중간착취가 합법화됐다(2021년 10월 13일 민주노총 '중간착취 근절을 위한 법제도 방안 공동토론회'). 나아가 공공부문은 '외주화'(outsouring)를 전면화하며, 민간위탁, 용역계약 등으로 중간착취를 새로운 규범으로 정착시켜왔다.

IMF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법은 노동자에게 등을 돌렸다. 이제는 더 노골적인 언사로 법이 동원되었다. "법치"는 법으로 법을 허물어 중간착취를 허용하고 과잉착취를 합법화한다는 것에 다름아니었다. 법의 언어가 그 본질부터 뒤틀리는 동안, 정부는 행정명령, 지침 등을 동원해 '공공부문 효율화'라는 명목으로 공공부문을 민간에 팔아넘겼다.

한전KPS는 이러한 법과 정부정책으로 억압받은 채 키워진 기형적 공기업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발전소 경상정비 산업의 민간개방으로 한전KPS는 발전정비분야의 독점적 지위를 상실한다. 2017년 현재 발전 정비업무에서 한전KPS의 점유율은 47%로 하락했다. 그러나 민간개방으로 한전KPS가 피해만 본 것은 아니다. 한전KPS는 여전히 발전정비분야의 유일한 공기업이다. 이 지위는 발전정비분야의 지배력과 영향력을 유지하게 만든다. 한전KPS는 자신의 기술력을 민간에 전수하고 민간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정부 방침을 활용해 소규모 영세한 업체들을 중심으로 재하도급 구조를 완성함으로써 자신들의 지배력과 초과이윤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한전KPS의 임·직원들은 퇴직 후 하청업체의 사장이 되거나 영세업체들이 입찰에 응할 수 있는 기술력이 되면서 한전KPS를 중심으로 한 영속적인 지배력의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김충현이 속한 한국파워O&M 부사장 역시 한전KPS 출신이다.

원청의 지배력이 강한 만큼, 원·하청으로 내려가는 절차는 증식되고, 이러한 절차는 현실에서 종종 무시된다. 과도한 서류 중심의 안전관리는 안전 자체의 중요성, 위험에 대한 경고를 무력화하는데, 안전을 강조할수록 안전이 도외시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나는 이유다.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발전소 원·하청 구조의 가장 아래, 2차 하청노동자들에게는 '소문'처럼 '왔다 간' 사건에 불과했다. '김용균이 사망한 후에 서류만 많아졌다'거나 '김용균 이후 정규직화되는 줄 알았는데, 한번 회의하고 말더라'라거나. 그렇게 요란스럽던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김용균 특조위)'의 권고는 이들에게 미치지 못했다. 김용균 특조위는 "안전을 위한 권고로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권고했다. 이것이 사회적으로만 유통된 말들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김충현의 죽음으로 드러났다.

그러는 사이 김충현의 작업은 형식적인 TBM 문서(작업 전 안전회의 일지)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수행됐다. 한전KPS 관리자들은 카카오톡으로, 문자로, 전화로 김충현에게 작업지시를 내렸다. 김충현은 작업 후에 TBM 문서 서명란에 원청의 사인을 받으러 다녔다. 무너진 절차 속에 위험한 작업방식이 검토되거나 걸러지지 않았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재해 당일 작성한 TBM(작업 전 안전일지) 문서. 작업 전 TBM 회의도, 실제 작업도 그는 항상 '홀로' 수행했다.
고 김충현 노동자가 재해 당일 작성한 TBM(작업 전 안전일지) 문서. 작업 전 TBM 회의도, 실제 작업도 그는 항상 '홀로' 수행했다. 김충현 대책위

중층적 원·하청 구조에서 '관리'란 무엇인가

한편에서는 관리절차의 증식과 관리인력의 과잉을 지적한다. 실제 '김용균 보고서'에는 발전5사로 분할한 뒤 현업에 필요한 인력은 부족하고 관리인력만 늘어난 기형적인 구조를 지적한 바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관리의 공백이라는 현실이 나타난다. 효율성의 추구이든, 안전한 작업의 추구이든, 이를 위한 일상적 관리가 작동되지 않는다. 아니 원·하청 구조의 어디쯤에서 이러한 작동이 단절된다. 그래서 그야말로 '관리'는 과잉되지만, 정작 안전이 필요한 곳에서 관리는 부재하다.

이쯤에서 '원·하청 구조'라는 말의 습관적 사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구조란 무엇일까. 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끊임없는 관계들이다. 원청과 하청의 관계, 하청과 하청 간의 관계, 하청업체와 하청노동자의 관계. 그런데 이러한 관계들은 '연결'돼 있지 않다. 단절과 공백을 특징으로 하는 무수한 연결들의 구조. 따라서 원청과 하청의 다층적 구조를 포괄하는 안전시스템이란 허상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혹은 포괄적 안전시스템이란 이러한 단절적인 원·하청 구조의 본질을 가리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김용균과 김충현의 사고유형인 '끼임'. 거대한 힘과 힘이 그들의 뼈와 살, 삶과 노동을 눌렀다. 이들의 사고를 '재래형 사고'라고 부르는 것에 반대한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노동법의 공백은 김용균 특조위의 권고가 메우기에는 너무나 큰 것이었다. 그 커다란 구멍을 메울 만한 '안전시스템'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그러는 한에서 하청노동자의 '끼임'은 새로운 위험이자, 해결 불가능한 위험인 셈이다.

핵발전소의 위험이나 기후위기로 인한 재앙만큼 김충현의 죽음에 대해 우리에게는 별다른 해법이 없다. 그렇다면, 위험사회학자들의 제안대로 그 위험의 생산 자체를 막는 수밖에 없다. '위험의 외주화'를 가능케 한 모든 법의 힘을 중단시켜야 하는 이유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정부는 근본 대책 마련하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금화PSC지부, 한국발전기술지부,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 발전HPS지부, 일진파워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대표자들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발전비정규직연대 입장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정부는 근본 대책 마련하라! 공공운수노조 발전비정규직연대(금화PSC지부, 한국발전기술지부, 한전산업개발발전지부, 발전HPS지부, 일진파워노조, 한전KPS비정규직지회) 대표자들이 지난달 9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발전비정규직연대 입장 및 투쟁계획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정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 8월호에도 게재됩니다. 이 글을 쓴 전주희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으로, '태안화력 고 김충현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에서 활동중입니다.
#김충현대책위 #태안석탄화력발전소 #위험의외주화 #다단계하도급구조 #한전K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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