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 06. 05. 태안화력 고 김충현 노동자의 중대재해 관련 속보
고용노동부 중대재해 알림e
막을 수 있었던 죽음
선반 공작기계는 고장이 나야만 위험한 게 아니라 작동구조상 위험이 상존할 수밖에 없는 기계·설비다. 즉 작업자 개인이 안전수칙을 철저히 지킨다고 해서 재해위험이 곧장 사라지진 않는다. 그래서 선반을 비롯한 기계·설비의 위험부에 작업자의 접근을 막는 방호장치를 하거나, 수리, 정비, 청소 등 일상적이지 않은 작업 중 가동을 정지하는 것이 끼임 재해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비기술 경력 10년이 넘는 베테랑 노동자, 김충현씨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직접적인 원인'도 미흡한 방호조치에 있었다. 김충현 노동자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곳은 선반 공작기계인 '범용 선반' 작업대 위였다. 선반 공작기계는 공작물을 주축에 고정해 고속으로 회전시키는 동안 공구를 사용해 가공하는 기계다. 그는 평소에도 태안 화력발전소 안 9·10호기 기계공작실에서 범용 선반과 CNC 선반 등 총 6대의 공작기계를 혼자서 다뤄왔다. 끼임 재해가 일어난 그날도 충현씨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 발전설비 제어장비의 밸브를 여닫는 손잡이 부품을 깎는 작업을 하던 중 참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당시 범용 선반의 회전체는 1분에 780번을 돌았다고 한다. 가공 공정을 컴퓨터로 제어하는 CNC 선반은 공작물이나 공구, 칩(쇳가루) 등이 튈 위험, 작업복이나 신체 일부가 공작기계에 끼일 위험 등에 대비해 기계 전체를 방벽(Guard)으로 감싼다. 반면, CNC보다 구식 장비인 범용 선반은 작업자와 회전체 사이를 막아줄 방호장치가 충분치 않았다. 해당 선반에는 칩이 비산하는 것을 막는 방호장치만 있었을 뿐, 정작 작업자가 기계에 말려들어갈 위험을 방지하는 안전장치는 없었다. 최소한 작업자와 기계의 접촉을 차단하는 아크릴판이나 울타리만이라도 있었더라면, 비상정지 버튼을 대신 눌러줄 동료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었더라면 충현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나 위험천만한 범용 선반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안전수칙은 하나같이 부족하고 협소한 대책뿐이었다. 실제로 산업안전보건공단이 발간한 '선반 작업안전' 가이드를 보면 △복장 단정(옷소매를 단정히 할 것), △정리 정돈, △회전 종료 후 가공물 제거 등 초보적인 안전수칙만이 제시돼 있다. 과연 이것만으로 끼임 재해가 예방 가능한지 의문이다. 방호장치(안전덮개)도 없이 돌아가는 회전체, 김용균 사망사고 이후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은 2인1조 작업수칙은 이렇게 대책 없이 넘어가도 되는 건가.
사람이 죽어서야 기계는 멈췄다
끼임 재해는 금속 제조업 현장에서만 흔히 나타나는 업무상 사고가 아니다. 식품제조공장에서는 믹서기(소스 배합기), 반죽기, 제면기, 분쇄기 등을 취급하거나 청소하는 과정에서, 식품을 나르는 컨베이어벨트의 노출부에서 끼임 재해가 주로 발생한다. 근래 들어 SPC그룹 계열사의 빵 공장에서도 연달아 끼임 재해가 일어났다. 2022년 10월 SPL 평택공장, 2023년 8월 샤니 성남공장에 이어 2025년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제빵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끼임 재해로 숨진 세 사람은 모두 여성노동자였다.
SPC그룹 계열사에서만 벌써 중대재해가 세 차례나 발생한 것이다. 세 번의 중대재해는 모두 기계가 멈추지 않아 노동자의 사망으로 이어졌다. 2022년의 샌드위치 소스 배합기 사고 당시에는 작업 효율을 이유로 재료를 혼합하는 작업을 할 때 뚜껑(덮개) 없이 일을 시켰다가 기계 안으로 20대 여성노동자가 빨려들어가 숨졌다. 이듬해 샤니 성남공장에서는 50대 여성노동자가 위험을 알려주는 경보장치가 고장난 반죽기에 끼여 숨졌다. 올들어 발생한 끼임 재해도 50대 여성노동자가 제품이 이동하는 냉각컨베이어에 끼여 숨졌다. 가동 중인 설비에 사람의 움직임이 감지되면 자동으로 멈추는 장치(인터록)가 설치돼 있어야 했지만, 끼임 재해가 일어난 공장에는 비상정지장치가 없었다. 사람의 출입을 막는 시설 또한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이렇듯 SPC 빵 공장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끼임 재해는 모두 기본적인 방호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결과였다. 늘어난 물량을 맞추기 위해 공장은 언제나 '풀가동'돼야 했고, 심지어 수리, 정비 시에도 기계의 가동을 멈출 수 없었다. 이번 SPC삼립 시화공장 중대재해도 갓 만든 뜨거운 빵을 식히는 과정에서 식품용 윤활유를 기계에 주입하던 작업자가 냉각컨베이어에 끼이면서 일어났다. 기계의 정비나 보수 작업 시에는 반드시 운전을 정지하도록 법에 규정돼 있지만 회사는 이를 버젓이 무시했다. 생산제일주의 관행 말고는 다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힘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였다.

▲ 2020.10.20. SPC그룹 본사 앞에서 'SPL 평택공장 산재사망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노동과세계
우연히 일어난 사고가 아니다
끼임 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안전덮개 설치와 작업자 이격 조치만 제대로 했더라면 빵 만드는 여성노동자의 죽음도, 공작기계를 다루는 발전소 2차 하청노동자의 죽음도 없었을 것이다. 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위험업무에 홀로 근무하도록 지시한 것 역시 중대재해를 일으킨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그럼에도 빵 공장에서든 발전소에서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본의 탐욕은 계속되고 있다. 기계·설비와 신체 일부가 맞물려 발생하는 끼임 재해는 어느 날 우연히 벼락처럼 우리를 엄습하지 않았다. 노동안전과 맞바꾼 자본의 비용절감 정책이 끼임 재해를 비롯한 업무상 사고를 부추긴 것이다. 그렇게 비용절감은 극단적인 성과 압박과 겹겹이 맞물려 위험을 더더욱 증폭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작업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쉽게 소진될 수밖에 없다.
끼임 재해의 발생 이유로 작업자 개인을 탓하기엔 자본의 억압과 통제는 이토록 전방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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