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민재 작가의 손글씨 원고 황민재
- 작가님 소개와 수필집 <자이언트> 집필 동기를 말씀해주세요.
"저는 1930년대 전남의 섬마을에서 태어나 해방과 6·25전쟁까지 시대의 소용돌이를 다 겪었습니다. 1941년 가족이 장성으로 이사했고, 저는 광주 중학교에 유학 중이었어요. 6.25 전쟁 때 북한군이 전라도를 점령했다가 밀려나면서 저는 형님을 따라 순창 회암산 가막골로 들어갔고, 부모님은 영광으로 피신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한약방을 하면서 몽양 여운형 선생을 지지하는 단체에서 활동하셨고, 둘째 형님도 상당한 활동을 했어요. 북한군이 밀려난 후 가족 모두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혀 부모님과 형제를 잃고 어린 나이에 힘겹게 살았습니다. 영문도 모른 채 소년 빨치산이 되었다가 포로 수용소에 갇혔다 풀려난 후 신안에서 염부를 하다가 서울로 올라와 장사와 사업을 일구었어요.
제 인생에 세 분의 스승이 계신데, 한글을 가르쳐주신 아버지, 염전에서 신문을 보게 해주신 약사였던 염전 주인, 그리고 국어문화운동본부 남영신 선생님 덕분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이야기들을 기록으로 남겨 후세와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큰 집필 동기였습니다."
- 소년 빨치산 시절의 기억을 말씀해주세요.
"아버지와 둘째 형님이 해방 정국에서 좌익 활동을 하셨는데, 6.25 전쟁 중 북한군이 물러가고 나서 빨갱이로 낙인된 저희 가족은 모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8살 위인 둘째 형님을 따라서 회암산 가막골로 들어가 소년 빨치산이 되었어요. 갓 중학교에 들어간 나이였는데, 형님의 말을 거역할 수는 없었지요.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며 2년 정도의 혹독한 빨치산 삶을 살다가 국군에 붙들려 포로가 되어 광주로 이송되었습니다. 1953년 휴전협정에 맞춰 미성년 빨치산이라는 이유로 무죄 방면되어 빨치산 생활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 서울에서의 삶과 '자이언트'에 담긴 의미를 말씀해주세요.
"1956년 스무 살 남짓한 나이에 의지할 사람 하나 없이 서울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정말 사방에 믿을 구석 하나 없는 맨땅이더군요. 가진 돈은 방 한 칸 구하는 데 다 쓰고, 구두닦이, 막일, 심부름꾼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어요. 한여름에는 얼음과자 장사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렇게 악착같이 돈을 모아 몇 달 만에 '딸딸이 구루마'라고 불리던 작은 손수레 가게를 장만했어요. 낮에는 뚜껑을 열어 물건을 팔고 밤에는 그 안에서 잘 수도 있는 이동식 점포였습니다. 비록 허름한 손수레였지만 처음으로 제 힘으로 마련한 보금자리나 다름없었어요.
1957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 <자이언트>를 보러 갔는데, 주인공 제임스 딘이 넓은 땅을 손에 넣고 환희에 차오르는 모습이 마치 제 이야기 같더군요. 남들은 보잘것없는 손수레라 했지만, 제겐 세상을 향해 당당히 설 수 있게 해 준 첫 밑천이었거든요. 제게 '자이언트'란 비록 작은 수레 하나였지만 제 인생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순간을 상징합니다."
- 다시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버지 덕에 일찍 한글을 깨우치고, 초등학교 때는 전교에서 대표로 책 읽기를 해 우등상을 받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는 일을 하느라 오랫동안 글 쓰는 꿈을 접어두고 살았습니다. 2016년에 우연한 기회로 글쓰기 강좌를 듣게 되었는데, 거기서 만난 남영신 선생님이 제 세 번째 은사가 되어 주셨어요.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용기를 북돋아 주셨습니다. 그 글쓰기 교실에서 오랜만에 쓴 글이 20대 시절 영화 <자이언트>에 관한 글이었어요. 제가 직접 낭독하고 영화 주제가를 불러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 경험으로 자신감을 얻어 계속 글을 쓰게 되었고, 몇 년에 걸쳐 모은 원고들을 이번에 한 권으로 묶어내게 되었습니다."
-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저는 제가 살아온 이야기가 역사의 산 증언이 되길 바랍니다. 요즘 세대는 전쟁이나 이념 갈등을 직접 겪지 않았기에, 제가 겪은 고통과 시대의 상처를 조금이라도 느껴준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미움과 분열보다는 화해와 치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제 삶이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희망과 의지입니다. 제가 늘 가슴속에 새기고 살아온 좌우명이 '하겠다는 의지 앞에는 불가능이 없다'라는 말입니다.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버티면 반드시 길이 열린다는 것을 제 삶이 보여주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현재의 우리도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결코 낙심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황민재 작가 책 펴내는 일을 도와 준 서현정 세종국어문화원 책임연구원과 함께
김슬옹
자이언트
황민재 (지은이),
경진출판,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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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학과 세종학을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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