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25.08.09 17:05수정 2025.08.0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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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건강검진 날. 40대 중반, 위암 검진 대상자인지라 수면 내시경도 받는다. 안전한 귀가를 돕기 위해 검사 끝날 시간에 맞춰 차를 몰고 병원에 왔다. 여기에 차를 몰고 오는 건 처음이다. 병원은 오래된 상가 오피스텔에 있었다. 주차장은 지하. 요즘 지어진 건물들에 비하면 주차 자리가 많지 않다. 그나마도 빈자리가 없었다.
지하 맨 아래층까지 내려갔다 올라왔다를 반복하기를 여러 번. 간신히 주차 자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주차 구획도 무척 작다. 내 차는 그리 크지 않은 소형 SUV임에도 오락가락을 꽤 여러 번 했다. 운전대를 잡은 지 10년이 넘었고 무사고다. 그래도 낯선 곳에서의 주차는 여전히 긴장된다. 간신히 주차를 마치고 병원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리니 아내가 나왔다.
아직 잠이 덜 깼는지 아내는 평소보다 기운이 없어 보인다. 확실히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검사 결과는 며칠 기다려야 하는데, 일단 위내시경 상으로 역류성 식도염이라고 했단다. 다행히 경미한 수준이라 특별히 약은 먹지 않아도 된다.
아내를 잘 부축해 지하 주차장에 내려왔다. 인정사정없는 열기가 우리를 맞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차가 있는 곳까지 고작 몇 발짝 걷는데 땀이 줄줄 흘렀다. 차에 타자마자 에어컨을 파워 냉방으로 틀었다. 주차장으로 들어오는 차와 나가려는 차들이 뒤엉켜 바로 출발하지 못하고 있었다. 10분 정도 지나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지하 2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올라가는데 계속 차들이 내려온다. 이리저리 피하고 잠시 멈춰 기다리기도 하면서 잔뜩 긴장하며 천천히 지상을 향해 나아갔다. 마의 구간인 커브도 무사히 통과. 저 멀리 건물 밖으로 하늘이 보인다. 이제 쭉 직진으로 올라가 차단기만 통과하면 된다. 그런데 조수석 쪽에서 들려온 긁히는 소리. 드르륵!
"앗! 뭐야?"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식은땀이 나면서 가슴이 철렁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주차하기 무섭게 차에서 내려 떨리는 발걸음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소리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났기 때문에 어디 한 군데 충격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발!' 하는 마음으로 조수석 쪽 외관을 이리저리 살폈다.
범퍼 이상 무, 타이어 휠 이상 무, 문짝 이상 무였다. 꼼꼼히 여러 번 보았지만 차량 오른편 어디에도 긁힌 자국이 없다. 내가 환청을 들었나? 완전 럭키비키잖아? 하고 돌아서는 찰나, 접혀 있던 사이드미러의 낯선 색깔이 눈에 들어온다.
내 차 사이드미러는 분명 검은색인데, 있지 말아야 할 색깔이 덧입혀져 있었다. 대차게 일직선으로 그어져 있는 노란 형광색. 이제 2년 차인 새 차다. 그동안 행여 조금이라도 흠집 날까 나보다 차를 더 아끼며 타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급하게 물티슈를 꺼내 페인트부터 지운다. 다행히 형광색은 사라졌지만, 깊게 파인 긁힌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 정도면 티 많이 안 나니 괜찮다며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심호흡까지 곁들이면서.
신기하다. 그럴수록 흠집은 더 크게 보였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자책감이 심하게 들었다. 어려운 커브길 다 잘 통과해 놓고 직진하는 구간에서 차를 긁다니. 급격히 어두워진 내 표정을 본 아내가 길이 다른 곳보다 좁았나 보다고 위로해 주었다. 티도 별로 안 나니 괜찮다고. 당연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남의 눈에는 잘 안 보일지 몰라도 내 눈에는 너무 잘 보인다. 차에 처음으로 흠집이 나니 무척이나 속이 상한다. 딴생각을 한 것도 아닌데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뭐에 홀렸나? 심지어 수면 내시경은 아내가 했지, 내가 한 것도 아닌데.
이미 생긴 흠집은 되돌릴 수 없다. 물론, 돈을 들여 수리하면 감쪽같아질 테지만, 갈아내고 때워 같은 색상을 칠한다 해도 원래의 새것이 되는 건 아니니까. 물론 아예 새것으로 교체하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머피의 법칙처럼 기껏 비싼 돈을 들여 바꿨는데 또 흠집이라도 난다면? 더 속상할 게 분명하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반드시 상처 입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어있다.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고 그게 오늘이었을 뿐이라고 마음먹어 본다. 자국을 볼 때마다 당분간 내 마음도 쓰리겠지만 만족하는 연습을 해봐야겠다.
내 차에 생긴 작은 흠집 하나, 어쩌면 내 마음은 그 흠집을 통해 불완전함을 껴안는 법을 배우는 중인지도 모른다. 엄밀히 말하면 긁힌 건, 차가 아니라 내 마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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