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미숙 외 5명의 〈나이듦수업〉 책겉그림
서해문집
지금이 100세 시대라고 하죠. 100세를 4등분하면 봄·여름·가을·겨울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요? 1∼25세까지는 인생의 봄날, 26∼50세까지는 인생의 여름, 51∼75세는 인생의 가을, 그리고 76∼100세까지는 인생의 겨울로 말이죠.
100세 인생의 사계절
인생의 봄날은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인의 삶을 준비하는 때입니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하고, 인생에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지요. 물론 부모의 바람과 자기 자신의 방향이 어긋나 갈등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여름은 푸른 산천과 뜨거운 태양 아래서 땀을 흘리는 시간입니다. 본격적으로 자기 삶을 구축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열정과 넘치는 에너지로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는 역동적인 때입니다.
인생의 가을은 열매를 맺고 단풍이 드는 시기입니다. 여름날의 열기를 식히며 차분히 자기 자신과 삶의 의미를 찾는 시기이기도 하죠. 직장과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점검하고, 젊은 시절과는 다른 모습으로 곳곳에서 헌신과 봉사를 합니다.
인생의 겨울은 앙상한 나무처럼 이파리가 하나둘 떨어지는 때입니다. 마지막 잎새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점차 존재감이 사라지는 시기이지요. 하지만 겨울이 봄을 잉태하듯, 인생의 겨울은 자라나는 세대에 바통을 넘겨주는 때이기도 합니다. 그들의 열정과 패기를 응원하며 묵묵히 밑거름이 되는 시기입니다.
풍요로운 말년의 조건
그런 인생의 사계를 잘 살아왔다면 말년 역시 풍요롭지 않을까요? 뭔가 이루고 성취해서 풍요로운 게 아니라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삶의 의미를 성찰해 왔다는 뜻에서요. 그런 말년을 맞이했다면 누구에게라도 이해할 만한 조언을 해줄 수 있는 스승이 될 수 있겠지요.
"현대인은 완전히 양적으로 계산합니다. 그래서 100세 산다고 하면 '지금 내가 50대야. 50년이나 남았네?'하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럼 남는 시간에 뭘 합니까? 술을 마시죠. 육식을 하고 성욕을 채웁니다. 다 이렇게 살고 있죠."(21쪽)
책 <나이듦수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은퇴 후에도 50년이나 남은 인생을 고민하지 않으면,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려 살게 된다는 것이죠. 자연의 흐름처럼 인생의 봄·여름·가을·겨울을 지혜롭게 헤쳐 나온 사람만이 100년을 살아도 보람찬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년을 맞이한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귀한 멘토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카터 전 대통령도 그중 하나입니다. 그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환경운동에 매진했고, 90대에 접어들어 종양이 몸에 번졌다는 소식을 듣고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가졌습니다. 그 종양을 '치병(治病)'이 아니라 '친병(親病)'처럼 받아들였다는 거죠. 봄·여름·가을·겨울의 인생을 지혜롭게 마무리한 노년의 모습입니다.
물론 말년이 돼도 그렇지 못한 이들도 참 많습니다. 봄에서 여름을 거쳤으면 가을로 가야 하는데, 계속 여름에만 머물려 하는 경우입니다. 청춘을 흉내 내며 성형까지 하면서 나이듦을 부정하기도 합니다. 젊은 세대의 밑거름이 되기보다 매번 참견하니 '꼰대' 소리를 듣고요. 그러니 몸도, 정신도 아파 현재의 가을은 물론 노년의 겨울조차 받아들이지 못하게 됩니다. 죽음을 맞이해야 할 말년이 스스로 생각해도 끔찍해지는 것이지요.
<나이듦수업>은 고령사회 속에서 나이듦에 대해 고민하고 어떻게 나이가 드는 게 지혜로운지 여섯 명의 명강사 강의를 한 데 묶어 놓은 책입니다.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라는 부제를 달고 있어서 인생의 겨울과 말년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에요.
욥의 말년이 주는 교훈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욥42:12)
성경 욥기서 말씀입니다. '말년'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하리트(אַחֲרִית)'는 후일, 나중, 끝날 등을 뜻합니다. 인생의 가을을 지나 종착역을 향하는 시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말년에 처음보다 더 복을 주셨다고 하니, 사람들의 관심은 소유물에 쏠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욥이 누린 복은 거기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욥의 봄과 여름은 모든 것이 풍족했습니다. 하지만 가을에는 자기 생일까지 저주할 정도로 모든 것을 잃고, 온몸에 악창이 들끓었습니다. 그때 친구들이 찾아와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 '괜히 하나님께서 네게 벌을 주는 것이겠냐' 하면서 비난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욥은 자기 의로움을 강변하다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졌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도 자기 의를 내세웠습니다. 물론 마지막에는 모든 관계가 회복되었고, 소유물까지 누리게 되었습니다.
즉, 욥이 말년에 누린 복은 재산보다 사람과의 관계 회복이었습니다. 인생의 가을날 큰 실패를 겪었을 때, 친구들의 비난과 조롱 속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그는 알게 되었지요. 신앙인이라면 힘든 시기를 지날 때 어떻게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지도요. 그런 과정을 통과한 말년이었기에, 욥은 젊은이들에게 꼰대가 아니라 참된 스승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닫힌 눈과 귀, 말년을 망치
이 책을 보면 노인이 꼰대 소리를 듣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인생의 겨울이 되면 눈과 귀가 닫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집불통이 되는 이유입니다. 더욱이 한국의 노인 중 10명 가운데 3~4명이 우울증을 앓는다고 합니다. 노인 고독사가 늘어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인생의 겨울이 가까워질수록,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고 사는 게 얼마나 행복한 말년을 만드는지 알 수 있을 겁니다.
나이듦 수업 - 중년 이후, 존엄한 인생 2막을 위하여
고미숙 외 지음,
서해문집,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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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확한 기억력보다 흐릿한 잉크가 오래 남는 법이죠. 일상에 살아가는 이야기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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