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7월 7일 편백나무 군락지
안호용
나는 연자골을 뒤로하고 숲길을 따라 한라산 방향으로 무거운 발을 옮겼다. 구분담으로 보이는 오래된 돌담이 길 방향을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무엇을 구분하기 위한 담일까 하고 생각하며 계속 걸었다. 땀이 흘렀다. 해발이 높아지자 길은 등산로처럼 조금 험해지다가 널찍한 사거리와 만났다. 왼쪽으로 가면 치유의 숲으로 가는 길이다. 하산할 때 그 길로 갈 계획이다. 하지만 길을 보니 무언가 범상치 않았다.
임도처럼 넓은 길을 20여 분 오르니 드디어 한라산 둘레길과 만났고 오늘의 휴식처인 편백 숲이 나를 반겼다. 삼나무와 닮은 편백은 군락을 이루며 하늘로 치솟아 있고, 그 아래에는 여러 개의 평상이 놓여있다. 길가 평상 옆에 캠핑용 접이식 의자를 배낭에서 꺼내 조립을 하고 앉았다. 먼저 자리를 잡고 있던 부부로 보이는 두 사람으로부터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가 들려왔다. 후반부였다. 그리고 잠시 후 나를 쫓아오던 몇 명의 중년 여성들이 건너편 평상에 자리를 잡고 싸 온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각자 싸 온 도시락 품평회를 하면서 조곤조곤 떠들고 있었다. 그 소리들을 한쪽 귀로 흘러 보내며 싸 온 김밥을 상하기 전에 입에 욱여넣었다. 이제 김밥도 지겨웠다.
잠시 후,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부부도 떠나고, 중년 여성들도 점심을 먹은 후 곧바로 자리를 떴다. 갑자기 혼자가 되었다. 이제 이 편백 숲은 나의 독차지가 되었다. 나는 맥주 한 캔을 마신 후 의자 깊숙이 몸을 숨겼다. 투명한 하늘이 편백 가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지만 시야가 거슬리지는 않았다. 여전히 바람 한 점도 없었고, 습한 기운도 내 주위를 떠나지 않았다.
하지만 처음엔 피톤치드가 쏟아지는 이 공간을 마음껏 즐기려고 작정했다. 그럼에도 나는 이곳의 습한 공기에 적응하지 못했다. 사실 습한 공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나는 듣던 레드 제플린의 곡을 도중에 끊고 자리를 정리했다. 이런 여유로운 시간은 사치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른다.
인적 없는 길을 걷다 만난 시대의 아픔
가벼워진 배낭을 메고 올라온 길이 아닌 한라산 둘레길을 따라 걸었다. 지난해 걸었던 트레일이었다. 일제 강점기 때 식재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삼나무 군락지를 지난 후 삼거리에서 하산했다.
10여 분 후, 올라올 때 거쳤던 사거리가 나왔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향해 의심의 시선을 보냈다. 치유의 숲으로 난 길이 분명한데, 인적이 없어 보였다. 임도처럼 길은 넓었지만 방치된 길이 분명했다. 당초 이 루트를 계획했기 때문에 불안함에도 나는 어둠에 싸인 그 길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괜찮을 것이다. 지도에는 분명하게 길이 나 있으니까 말이다. 폐길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길은 한순간 완전히 없어지지 않는다. 가다 보면 치유의 숲과 만날 게다.
웃자란 무성한 수풀이 길을 덮고 있었다. 제멋대로 뻗친 나뭇가지들이 빼곡하게 하늘을 덮고 때론 길을 막기도 했다. 나는 숨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길을 밟았다. 숲 스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멧돼지들이 한바탕 광란을 축제를 벌인 듯 땅이 파헤쳐 있었다. 그 자국은 꽤 길게 이어졌다. 이곳이 그들의 놀이터인 것 같았다. 얼마쯤 갔을까, 호박돌 크기의 검은 돌이 박혀 있는 길이 앞에 나타났다. 두꺼운 이끼가 그 위에 덮혀 있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이 아니었다. 의도적으로 도로들 낸 게 분명했다.
바로 하치마키 도로이다. 하치마키는 일본어로 머리띠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때 표고버섯 재배를 비롯한 각종 임축산물을 운반하기 위해 일본인들이 만든 임도이다. 일본인들은 이런 길을 중산간 지역에 층층이 만들어 체계적으로 임축산물을 관리하였다. 좀 전에 걸었던 둘레길도 이런 임도의 일부이다. 일본인들은 차고 넘치는 돌을 활용해 바닥에 깔고 다져 견고하게 도로를 구축하였는데 이 모두 제주민들의 노동 착취가 있기에 가능했다.
처음엔 거의 민간에서 이 도로를 관리햇지만, 1937년 제주총독부는 제주개발사업계획 10개년 계획을 확립하고 본격적으로 중산간에 도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일본은 만주사변 이후 중일전쟁을 일으키며 노골적으로 동북아 패권에 야욕을 드러낼 때였다. 제주 개발도 군비증강의 차원에서 추진되었는데 하치마키 도로 확장공사도 그에 따른 일환이었던 것이다.

▲ 2025년 7월 7일 하치마키 도로
안호용
하치마키 도로의 본래 명칭은 환상선이다. 그러니까 한라산 중허리 순환도로인 셈이다. 나중에 한라산을 머리띠처럼 둘러싼다고 해서 하치마키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까지 제주도에 남아있는 기록을 보면, 전체 길이 110km, 폭 10m, 석재포장 3등급 도로, 해안지대와 중산간과 연결하는 14개의 나들목 설치 등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고 실제로 시행되었다.
그러다가 일본이 태평양전쟁까지 일으키면서 제주는 그들의 전략적 군사 요충지로 활용되었다. 순환도로는 현재 지명으로 어승생, 한밝교, 영실, 법정악, 성판악, 수악, 관음사로 이어졌다. 현재 성판악을 지나는 516도로도 이 하치마키 도로를 확장해서 건설한 것이다. 일본군 7만 명이 제주에 주둔하였다. 제주는 오키나와에 이어 본토를 방어하는 마지막 저지선이었다. 그들은 자연적인 방어 진지인 오름을 비롯해 수많은 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물자를 운송할 때도 이 도로를 활용하였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들어설 때는 일본군은 제주를 마지노선으로 삼아 수많은 군 시설을 구축하였던 것이다. 그런 토목공사에 제주민이 동원된 것은 당연했다. 제주에서의 토목공사는 육지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노역을 필요로 했다.
생태계 재생이 진행되는 공간은 예측을 할 수 없어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길을 잘 찾아 치유의 숲에 당도하였다. 삼나무 힐링 마당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꽤 많은 사람들이 숲을 즐기고 있었다.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굴곡진 긴 나무의자에 누워 자신만의 명상에 몰입하는 사람도 많았다. 누구도 그들을 제어하지 않았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일상 풍경이었다.
치유의 숲을 빠져나온 나는 산록남로를 건너 소로를 따라 서귀포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이상 이 길을 따라 가면 중산간 도로와 만난다. 한때 제주에 숲길 붐이 일었던 당시 누군가 많은 돈을 써서 조성한 길이 이제는 퇴락한 공간으로 남아 을씨년스럽게 눈에 치이고 있었다. 수풀로 뒤덮인 나대지를 지나면서 해발이 낮아지고 소규모 귤 과수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사이로 농막과 창고들이 불규칙하게 자리 잡고 있다. 태양은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본연의 임무를 다하고 있다. 저 멀리 바다와 서귀포 시내 풍경이 보였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이 길은 하치마키 도로와 연결하던 수탈의 간선도로이며, 토벌대의 총칼에 살해된 주검들이 마을로 실려가던 절망의 길이었다. 태양은 그 공간을 짓누르고 있다. 당시 여름에도 그랬는지 모른다. 사람도 없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없다. 그 많던 바람도 없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무언가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뜨거운 허공을 가로지르며 사라질 듯하다 겨우 살아남은 음파가 고막을 흔들었다. 분명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지울 수 없는 먼 시간의 소리였는지 모른다. 살아있는 자는 그들의 발길이 각인되어 있는 길을 따라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움직였다.

▲ 2025년 7월 7일 산록 내림길에서 본 서귀포 시가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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