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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은' 정책도 '나쁜' 현실 반영하지 못하면 필패

[주장] '고교학점제 악마화, 이제는 멈춰야 할때' 기사에 대한 반론

등록 2025.08.12 09:23수정 2025.08.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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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학점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고교학점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싣습니다.[편집자말]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7일 고교학점제와 관련 서울 관악구 당곡고등학교를 찾아 발언하고 있다. 2025.3.30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27일 고교학점제와 관련 서울 관악구 당곡고등학교를 찾아 발언하고 있다. 2025.3.30 연합뉴스

[관련기사] 고교학점제 악마화, 이제는 멈춰야 할 때 (https://omn.kr/2evl4)

교육 정책을 연구하고 계시는 백승진 선생님께 올립니다.

선생님께서 비판한 기사를 쓴 장본인으로서, 외람되이 반론 삼아 답장을 보냅니다. 우선, 풀어야 할 오해가 있어 지적하고 넘어가렵니다. 저는 고교학점제를 '악마화'했다는 비난을 받을 만큼 맹목적으로 왜곡하거나 폄훼하지 않았습니다. 취지에는 십분 공감하지만,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을 따름입니다. 애써 '보류'라는 표현을 끼워 넣은 까닭입니다.

아이들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춰 배울 과목을 선택하고, 성취 기준에 따른 학점을 이수해 졸업하는 고교학점제는 교육적으로 일점일획 수정할 게 없습니다. 이를 학교 현장에 안착시킬 정교한 지원책 마련을 고민해야 한다는 말씀에 십분 동의합니다. '우리 교육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관문'이라는 선생님의 지적에도 공감합니다.

정부는 고교학점제를 시대의 변화에 발맞춘 미래형 교육 체제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누구는 불과 한두 해만 지나도 쓸모없어질 지식을 아이들의 머릿속에 욱여넣는 학교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고 했고, 다른 누구는 다양한 적성을 지닌 아이들에게 인공지능이 보편화한 시대에 현행 교육 제도는 폭력이라는 이야기까지 서슴지 않았습니다. 고교학점제가 그 변화의 신호탄이라고들 들떠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 역시 고교학점제가 온 국민이 염원하는 공교육 개혁의 마중물이 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교육과정의 설계와 운영에서부터 수업과 평가 방식 등이 완전히 달라지고, 대입 전형의 다양화로 학벌 구조가 혁파되며, 교사의 수급 및 학교의 시설에 이르기까지 공교육의 혁명적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했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게 가장 문제


그러나 늘 그래왔듯 교육개혁에 대한 정부의 호언은 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아시다시피, 현재 우리 공교육은 어디서부터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야 할지 모를 만큼 난맥상입니다. 한낱 고교학점제로 얽히고설킨 매듭을 풀어낼 수 없다는 걸 정부가 모를 리 없건만, 고교학점제만 일선 학교에 툭 던져놓고 나머진 나 몰라라 뒷짐만 지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문제는 고교학점제가 교육개혁을 위한 '끌차'로 여겨져선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선생님과 저의 인식차는 여기서 비롯됩니다. 외람됩니다만, 변화와 개혁이라는 이름 앞에 전가의 보도처럼 붙이는 '과도기'라는 말을 저는 가장 싫어합니다. 일단 시도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그때그때 보완하자는 식의 다소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적어도 교육의 영역에서 '과도기'를 염두에 둔 제도의 개혁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제도든 도입 초기에는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지만, 일찌감치 거기에 '과도기'라는 말을 끌어다 붙이는 건 자기합리화를 위한 변명일 뿐입니다. 아이들이 '실험용 쥐'가 아닐진대, 교육개혁은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는 신중함과 치밀함이 요구됩니다. 수십 번의 공청회와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만시지탄이지만, 고교학점제는 다른 분야의 개혁과 동시에 시행되어야 하는, 이른바 '줄탁동시'의 과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대입 전형과 학벌 구조, 교사 수급 문제 등이 순차적으로 해결될 거라고 여긴 게 패착입니다. 비유컨대, 사회는 아무런 변화도 없는데, 학교 울타리 안에서의 개혁이 제대로 될 리 만무합니다.

선생님께서 즐겨 쓰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표현도 적이 난감합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저는 선생님과 고교학점제의 취지를 두고 옳고 그름을 따지려는 게 아닙니다. 지금의 현실에 부합하지 않다 보니, 종국엔 형식화하여 '서류로 증명되는' 제도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는 겁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설득력'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지요.

고교학점제와 현행 대입 제도가 상극이라는 지적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선생님께선 '프레임'으로 규정하셨습니다. 저는 모든 학교와 학년에서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 자연스럽게 대입 전형도 거기에 맞춰 변할 거라는 인식 자체에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대입에 철저히 종속된 현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고교학점제라고 다를 리 없습니다.

멀리 갈 것 없이, 교실 수업을 혁명적으로 개선할 걸로 기대를 모았던 학생부종합전형이 온갖 부작용만 양산하며 파행을 빚고 있는 현실은 고교학점제의 머지않은 미래일지도 모릅니다. 자신의 진로와 적성이 과목 선택의 기준이 되지 못하고, 당장 대입에서 유불리부터 따지는 아이들을 고교학점제가 바룰 수 있을까요. 동료 교사들은 하나같이 기대난망이라고 말합니다.

또, 선생님께서는 최소 성취 수준 보장제(최성보)가 실효성이 없고 교사의 업무량만 늘린다는 지적을 두고 사실과 다르다고 무지르셨습니다. 적이 당황스러운 건, 선생님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 논문 자료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교학점제의 취지는 나무랄 데 없다고 골백번 말씀드렸으니, 논문의 가치를 두고 왈가왈부하지는 않겠습니다.

연구 논문의 결론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으니, 부박한 현실을 논문의 결론에 맞춰야 한다는 말씀처럼 들리는 건 제 삐딱한 심성 탓일까요. 이마저 부정하시진 않겠지만, 최성보에 따라 보충 지도를 아무리 해도 성취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고등학교의 성취 수준을 초등학교의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현실을 도외시한 채 아이들 모두가 과목별 성취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학교가 책임져야 한다는 언뜻 '당연해 보이는' 지침에 대다수의 교사가 분노하는 겁니다. 아이들의 기초 학력 부족은 학교만의 책임이 아닌, 가정과 우리 사회가 함께 짊어져야 할 숙제입니다. 누군가는 경제적 양극화로 인한 공동체 붕괴의 징후적 현상으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홀로 독야청청하는 '좋은' 제도

선생님의 반론을 읽다가 당혹감을 느낀 구절이 있습니다. '소규모 학교에서 교사의 담당 과목이 늘고 전공 외 수업을 맡는 현상을 고교학점제의 결과로만 보기는 어렵다'며 되레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 수업 등 다양한 지원책을 통해 소규모 학교에 대한 지원과 보완이 더욱 강화되었다'고 강조하신 부분 말입니다.

이른바 '학생 선택 중심 교육과정'으로 인해 그러잖아도 늘어난 교사의 수업 부담을 고교학점제가 더욱 악화시켰다는 게 더 정확한 분석 아닐는지요. 더욱이 공동교육과정과 온라인 수업 등은 교육적 효과가 의심될 만큼 형식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팽배해 있는데, 이를 사뭇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계셔서, 순간 선생님께서 근무하시는 학교의 환경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기우일지 모르겠지만, 제 글에 대한 선생님의 반론이 우리 교사들에 대한 여론의 비난을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까 두렵습니다. 정책은 완벽한데 학교 현장에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제도의 변화를 거부하는 교사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하게 될 것 같아섭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나쁜'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안착할 수 없다는 건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또, 그 어떤 정책도 일거에 모든 문제를 해소하는 '도깨비방망이'가 될 순 없습니다. 방향과 취지를 공유하는 여러 제도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라야 비로소 개혁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백 보 양보해서, 지금 고교학점제는 '나쁜' 현실과 전혀 조응하지 못하고 홀로 독야청청하는 '좋은' 제도입니다.

사족. 이왕 외람된 글을 쓴 김에 한마디만 더 보태겠습니다. 선생님은 반론을 펼칠 때마다 해외의 사례를 근거로 제시하고 계십니다. 이른바 '교육 선진국'의 사례를 참고할 순 있을지언정 그걸 우리 교육개혁의 지표로 삼아선 곤란합니다. 많은 이들이 대한민국의 비루한 교육 현실을 꼬집을 때,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자조합니다. '탱자'가 된 제도가 이미 차고도 넘치는 현실에서 고교학점제의 미래가 자못 궁금합니다.
#고교학점제 #교육개혁 #최소성취수준보장제 #과도기 #학생부종합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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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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